‘박효신, 아이유…’의 그 아이유를 좋아합니다

국민 가수의 팬으로 산다는 것

by 최윤주

취향에 관한 유명한 밈이 있다.


“가수 누구 좋아해?”
“음… 박효신, 아이유…? 그리고 nct127.”


마이너한 취향을 가진 사정을 숨기기 위해 몹시 대중적인 가수들을 읊은 뒤, 은근슬쩍 본진을 덧붙이는 밈이다. 한 커뮤니티의 유저가 생활의 팁이라며 알려줬지만 당연하게도 너무 티가 나서 웃음만 자아냈고, 오히려 최애를 밝히는 농담으로 사용되며 마침내 밈으로 정착했다.


생활의 팁으로선 완전히 실패했지만, 진짜 취향을 숨기기 위해 모두의 취향을 언급하는 것은 확실히 유효한 전술이다. 마치 몸을 숨기기 위해 군중 속으로 숨어드는 것과 같달까. 비슷한 맥락으로 지인이 소개팅에 나가 적당한 음악 취향으로 아이유를 언급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무난하게 누구나 좋아할 법한 선택지로 소개팅의 위험 부담을 줄이는 전략인 것이다. 괜한 취향을 밝혀 어색해지는 것보다야 너무 솔직해지지 않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 (소개팅을 해본 적이 없어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그럼에도 오타쿠의 언어인 밈과 소개팅 언어가 공통으로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 것 같다. 두 언어 모두 아이유의 ‘공공성’을 전제하고 있다. 일단 말하면 대충 먹히겠지 하는 안일한 기대가 깔려 있는 것이다. 마치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아이유나 BTS라면 일단 언급하고 보는 기사들처럼. 누구에게나 무난한 국민적 스타의 존재감이란 이렇게나 크고 강력하며, 넓고 모호하다. 새삼 그의 대중성에 놀란다.


그러고보니, 그 막대한 대중성 때문에 벌어진 억울한 일이 있다. 2019년(드라마 <호텔 델루나>와 앨범 <Love poem>이 대박이 난 직후), 막 친해지던 사람과 이런 저런 대화를 주고받던 차에 그에게 ‘아이유를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내 딴엔 용기를 낸 고백이었는데, 허무하게 반문이 돌아왔다. “음, 근데 아이유를 좋아하는 게 취향을 설명해주나요?”


그러니까 밈이 되고 소개팅에 호출되고 기사의 클릭 버튼으로 쓰이고, 밈이 만들어진 2017년보다 드라마가 대박난 2019년보다 지금이 더 잘 나가는 기이할 정도로 거대한 체급의 스타를 최애로 두면 이런 수모를 당한다. 가슴의 중심부를 꺼내 보여도 진정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그저그런 취향을 가진 뭉툭한 존재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것은 오타쿠에게 어쩐지 너무도 모멸적인 경험이어서 무심한 그의 질문은 내게 상당한 타격을 주었다. 당황스러운 동시에 분해져서, 뭐라도 증명하기 위해 내가 덕질을 위해 무슨 짓까지 했는지 따위를 횡설수설 늘어놓았다. “아니 저는 팬미팅도 가고요, 아이유로 수기도 써서 잡지에 실린 적도 있고요…” 하다하다 이렇게 책도 쓰고 있고요, 아무튼 진심이거든요? 믿어주세요…


그러나 그 뒤에도 아이유는 점점 체급을 불렸고, 나는 훗날 5만 명의 관객으로 가득찬 상암월드컵 경기장의 꼭대기에 앉아 짙은 열패감 속에서 마지못해 인정해야 했다. 콘서트에서 빠질 수 없을 만큼 메가 히트곡이 된 (나는 싫어하는) <Blueming>과 <Celebrity>를 들으며, 인의전술을 연상케 하는 대규모 합창단의 코러스와 어쩐지 테무를 떠오르게 하는 무지개빛 응원봉 연출을 괴로운 마음으로 감상하며, 그 모든 공연을 행복한 표정으로 즐기는 관객들 속에서 한없는 외로움을 느끼며, 인정했다. ‘당신 말이 맞네요. 아이유를 좋아하는 게 제게 중요한 뭔가를 설명해주지는 않네요. 이제는… 그렇네요.’


사실은 꼭 그 상암 공연 때문만이 아니라, 그냥 언젠가부터 아이유를 좋아한다는 말을 하지 않게 됐다. 입덕기과 덕질 절정기에 내가 매료됐던 그녀와 지금의 그녀가 너무 다르고, 예각화될 수 없을 만큼 거대히 성장해버린 그에 대한 마음을 드러낼수록 진심과는 멀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솔직한 게 뭐라고 굳이 취향을 고백하나 싶을 때도 있었고, 솔직하고 싶어 말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이렇게 글을 쓰게 됐으니 한 번 외쳐본다.


저기요! 여기에도 사람이 살고 있어요! 유재석, BTS, 그리고 아이유가 최애인 세상이 있어요!!! 거기 음지에도 가련하고 질척한 덕후가 살아가고 있어요!!!!! 야!!!!!!!!! 호!!!!!!!!!


후. 그러니 우연히 보더라도 너무 놀라지 않기를. 누구나 좋아하는 사람들 속에서 ‘누구나'에 머물 수 없는, 그러고 싶지 않아 갈 곳 잃은 사람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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