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자연, DMZ 군복무의 추억
오랜만에 도쿄시내에 눈이 쌓였다. 새벽 명상을 마치고 창밖으로 고요히 내리는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군 복무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백마고지에서의 시간은 아주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DMZ(비무장지대)라는 공간은 흔히 긴장과 경계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이 고스란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겨울이면 철책 안 비무장지대에는 하얀 눈이 고요히 내려앉고, 그 위를 노루가 조용히, 그러나 힘 있게 가로질러 달려가곤 했다. 영하 30도의 차갑고 적막한 공기 속에서 마주한 그 생명의 움직임은, 마치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한 경이로움을 주었다.
밤이 되면 철책 안에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바람을 타고 보안등 아래로 흩날리는 눈발은 형광 빛을 머금어 은빛 먼지처럼 흔들리며 보석처럼 반짝반짝 춤을 춘다. 그 순간만큼은 경계 근무라는 긴장감도 잠시 잊은 채, 자연이 빚어낸 아름다움에 마음을 통째로 빼앗기곤 했다.
부산에서 자라서 눈과 혹독한 겨울을 제대로 겪어보지 못했던 天仁이 그곳에 서면 늘 이런 생각이 들곤 했다. “철책 앞에 서 있으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끝없이 이어지는 고요, 바람 소리,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야생의 기척까지, 그 모든 것이 마음속 깊은 곳을 흔들어 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차오르던 그 풍경은 시간이 흘렀어도 선명한 잔상으로 남았다.
DMZ는 분단의 아픔이 서린 곳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손발이 닿지 못해 자연이 가장 순수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곳이기도 하다. 오늘 도쿄에 내린 눈은 나에게 다시금 묻는다. 우리에게 자연이란, 그리고 평화로운 고요란 어떤 의미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