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 헤어, 있는 그대로 내면의 나를 보여주는 것
오랫동안 해 오던 흰머리 염색을 그만두었다.
늘 생각만 하고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었는데, 코로나가 그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재택이 늘어난 데다 대면 미팅, 회식도 없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레이 헤어(Grey hair)를 시도해 볼만한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가족력 때문인지, 멜라닌 생성 조절 장애가 있었던지 天仁에게는 일찍부터 새치가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주위에서 흰머리가 멋지다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뽑기 어려운 수로 늘어나면서부터는 염색으로 그 흰머리를 감추기 시작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열심히 염색을 해야 했던 것은 딱딱한 조직문화 탓이었다. 더운 여름날에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긴 팔 셔츠를 입어야 하는 조직 문화 속에서 지냈다. 그러니 연세 느긋하신 고위 임원들에게 노화의 상징, 자기 관리의 부실로 여겨지는 흰머리를 보인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승만 대통령 이후 어느 대통령도 국민들에게 흰머리를 보여주는 분이 없는 것만 봐도 한국에서 흰머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은 용납되기 어려운 문화인 듯싶다.
그런데, 3개월 전부터 염색을 그만두었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일여 년 전부터 빠른 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했던 탈모가 멈추고, 그 자리에 새로 머리가 자라나기 시작한 것이다. 좋다고 하는 발모제, 육모제를 써 보기도 하고, 육모 사롱에 까지 다녔는데도 별 효과가 없더니 정말 신기한 일이다. 다른 조치를 취한 것이 없으니 독한 염색약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 탈모가 멈춘 주원인임에 틀림이 없다.
사실, 천연 염색제로는 염색이 잘 되지 않아 오랫동안 화학 염색약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독한 화학 성분이 늘 꺼림칙했었다. 염색제의 주요 성분 중의 하나인 파라페닐렌디아민은 염색약이 모발에 잘 침투되고, 발색의 효과가 있는 성분이다. 그러나, 습진, 두드러기, 탈모, 신장기능 저하 등의 부작용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암모니아는 모발을 부풀어 오르게 하여 염색약의 화학성분이 잘 스며들게 하는 역할을 하지만, 눈의 각막에 손상을 입히고 폐를 손상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학 약품으로 만든 염색약은 빠른 시간에 원하는 색상의 헤어 칼라를 연출해 낸다. 그러나, 과학 문명의 역설, 역시 편리하고 좋은 것이 몸에는 해롭기 마련이다.
염색을 하지 않으니 또 하나 좋은 점은 시간, 비용의 낭비와 스트레스에서 벗어난 것이다. 한 달에 한 번씩 뿌리 염색을 하고 나서도 2주에 한 번씩 자라난 부분만 다시 염색해야 하는 것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최근 일본에서는 여성들이 흰머리 염색을 하지 않는 것이 유행이다. 영어로 흰머리를 뜻하는 ‘그레이 헤어(Grey hair)’가 2018년 ‘올해의 신어·유행어 대상’ 후보로 뽑힌 것을 보면 그 트렌드가 대단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사실, 일본의 많은 남성들은 염색을 하지 않지만, 50대 이후의 여성들 중에서 흰머리를 찾기는 매우 어려웠다. 염색의 기술이 발전하면서 염색 전문 사롱이 속속 생겨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런 와중에 많은 여성들이 염색 중단을 선언하고, 고잉 그레이(going grey)를 외치며 흰머리라는 자연스러운 변화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급격히 진행되는 일본의 저출산 초고령 (少子女超高齡) 화도 하나의 원인일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염색약 시장규모는 줄어들 것 같지만, 업계에서는 오히려 염색약 시장은 앞으로도 계속 성장해 나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 모양이다. 흰머리 염색시장이 줄어드는 대신 검은 머리를 탈색하거나 다른 컬러로 염색하는 시장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염색도 탈색도 머릿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화학적 반응은 같다. 염색을 하면 모발 내부에서 알칼리의 힘으로 큐티클을 열고, 틈새로 산화 염료와 과산화수소가 모발 내부로 침투한다. 그리고 과산화수소가 멜라닌을 탈색하고 동시에 산화 염료를 산화하여 염모 한다. 결국 두 가지는 탈색 작용이 강한지 염색 작용이 강한지가 큰 차이인 것이다. 한쪽에서는 노화를 숨기기 위해 검게 염색을 하고, 검은 머리의 젊은이들은 멋지게 보이기 위해 희게 탈색을 시키고 있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한 일이다.
일본의 여성 잡지사가 발행한 ‘고잉 그레이’에서는 흰머리 염색을 하지 않는 이유를 워트 휘트먼의 시, ‘아름다운 여인들’로 비유하고 있다. ‘젊은이는 아름답지만, 나이 든 이는 비할 수 없이 아름답네’라는 책의 구절처럼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내면에서 우러나는 것인 만큼, 매일의 삶 속에서 기뻐하거나 슬퍼하거나 혹은 화를 내면서 마음의 결을 조금씩 쌓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염색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나를 보여주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첫걸음이 아닐까.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염색약의 건강 부작용과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서 그레이 헤어, 흰머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었으면 한다.
주) 그레이 헤어(Grey hair)란?
‘그레이 헤어’란 백발을 염색하지 않고 백발이 섞인 머리 색깔과 모발을 활용한 헤어스타일을 말한다. 또는 흰머리를 완전히 가려버리는 흰머리 염색약은 사용하지 않고, 아주 옅은 색으로 살짝 염색하는 스타일을 지칭하기도 한다. (출처; 일본 위키디피아)
グレイヘアとは、白髪を染めず、白髪交じりの髪色や髪質を活かしたヘアスタイルのことを指す。または、白髪を完全に隠してしまう白髪染めは使用しないものの、うっすらと色を載せた程度のヘアカラーを使ったスタイルを指すこともある。
天仁네 동네의 염색 전문점 ‘퀵 칼라 큐’. 염색 전문가가 40분에, 2,980엔(한화 약 3만 3천 원)의 싼 가격으로 예쁘게 염색해 준다고 광고하고 있다. 전국 216개 체인점에 매월 17만 명의 고객이 이용하고 있다고.
또 다른 흰머리 염색 전문점 ‘그레 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