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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안천인 Feb 19. 2021

이태석 신부님을 생각나게 하는 의사 선생님들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일본 병원의 의사

#. 1

오래전에 아내가 발등을 다쳐 병원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전에 살던 시나가와(品川) 고탄다(五反田)의 준종합병원이었는데, 과장이신 선생님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직접 발등을 소독하고 치료해 준다. 깜짝 놀랐다. 한국에서는 보지 못하던 광경이다. 어떻게 치료할 것인지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해 주고, 염증이 생기는 것만 주의하면 큰 문제가 없겠다는 말씀을 해 주니 안심이 된다.


#. 2

이마에 뾰루지가 생겼다. 샤워 중에 닿으니 따갑다. 수영장 수질에 문제가 있나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연고를 바르고 잤는데, 수그러들지 않고 낮에는 오히려 더 심해졌다. 오후 4시에 줌으로 미팅 예정이 있었지만, 급히 부근의 피부과를 찾았다. 예약을 하지 않아 50분을 기다린 끝에 40대 중반의 여선생님을 만났다. 天人의 설명과 환부를 보더니 대상포진인 것 같다며, 바이러스 검사를 해 보자고 한다. 그 사이에 참고 책자를 주며, 속사포로 설명을 시작한다. “빨리 병원에 와서 다행이다. 아기처럼 먹고 자기만을 반복하며 무조건 안정을 취해야 한다. 면역력이 약해져 있으니, 코로나 상황에서 외출은 절대 금물. 잘못 대응하면 종합병원에 장기간 입원, 치료해야 한다. 눈에 이상이 생기면 즉시 안과 전문의와 상의해야 한다”라고 위험성, 생길 수 있는 합병증에 대해서까지 10분 넘게 상세히 설명해 준다. 미팅 약속으로 마음은 바쁘지만, 그 정성이 고마워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들었다. 50분을 기다린 것이 짜증 나지 않는다.


#. 3

병원이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과 다른 쪽에 있고, 가정 주택처럼 보여서, 병원이 있는지도 최근에 알았다.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니시모토(西本) 선생님의 따스한 눈길, 손길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언제나 서두르지 않는다. 간호사가 있는데도 선생님이 직접 진료하고, 예방 접종 주사까지 놓아주신다. 편안하고, 안심이 되는 병원이다. 니시모토 선생께 진료를 받으면 선생의 생각이 당신이 아닌, 늘 환자를 향하고 있음을 바로 느낄 수 있다. 독서실 칸막이 같은 환자 진료실을 의사가 바삐 스쳐 지나가며, 공장의 컨베이어처럼 진찰하는 우리나라 대형 병원의 외래와 비교된다. 오래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된다.


#. 4

의료보험으로 격년에 한 번씩 위 내시경과 헬리코박터균 검사를 번갈아 받는다. 위 내시경을 받을 때면 야마자키(山崎) 내과 간호사의 따뜻한 손길에 감사한다. 코로 내시경을 삽입하는 경비내시경(経鼻内視鏡)으로 검사를 받는데, 수면내시경을 하지 않더라도 입으로 내시경을 삽입하는 경구내시경(径経口内視) 보다 훨씬 고통이 덜하다. 경구내시경은 직경이 8-9mm인데 비해 경비내시경은 5-6mm로 가늘고, 삽입 각도 상 목젖을 자극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역질, 불쾌감 등 큰 고통이 거의 없는데도, 등을 토닥토닥 다독여 주는 간호사의 손길이 닿으면 아기가 된 것처럼 마음이 평온 해 진다.


#. 5

금으로 덧씌웠던 윗니가 욱신욱신 아프다. 니혼바시(日本橋)의 사무실 옆에 다니던 치과가 있었는데, 재택 중이라 아파트 근처의 나카야먀(中山) 치과에 갔다. 예순 정도로 보이는 나카야마 선생님은 동네 아저씨 같은 인상으로 눈빛만 봐도 푸근함을 느낀다. 말씀에는 다정함이 뚝뚝 묻어난다. 씌웠던 금이 헐거워져 그 사이로 이물질이 들어가며 충치가 생겼다고 한다. 우선 충치를 치료했다. 그런데, 덧씌웠던 금은 헐거워져서 사용할 수 없으니 다시 씌워야 한다며, 선생은 플라스틱 레진 소재를 사용하는데 어떻겠냐고 물어본다. 값비싼 금으로 다시 씌워야 하나 했는데, 깜짝 놀랐다. 치료비는 의료보험 적용, 2천엔(한화 약 2만 2천 원)이다. 그 이후로 스케일링도 나카야마 치과에 다닌다. 양치 잘하고, 문제가 없으면 6개월에 한 번씩만 오라고 한다.


#. 6

자전거에서 넘어져 뇌신경과에서 MRI를 찍었던 적이 있었다. 큰 사고도 아니었지만 혹시나 싶어서였다. 꽤 깐깐하고, 조금은 불량스럽게 보이기도 하는 선생님인데, 결과를 설명하는 모습은 차분하고, 너무 정성스럽다. PC 대형 모니터의 사진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중요한 부분의 사진 몇 장은 A4 일반용지에 인쇄하여 메모까지 해 주며, 비전문가인 天人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상세히 설명해 준다. 오래전 처음 출장 왔을 때, 신주쿠(新宿) 거리에서 다소 불량해 보이는 청년에게 길을 물었는데, 너무 친절하게 길을 알려줘 놀랐던 때가 기억난다. 외모는 그 사람의 개성이다.


#.#

일본의 의사 선생님에게는 친절과 진정성을 느낄 수 있어 마음이 편안 해 진다. 증상, 염려되는 문제점은 물론 처방, 치료계획도 상세히 설명해 준다. 치료방법에 대해서도 환자의 의견을 존중한다. 환자의 당연한 권리일 터인데 늘 고맙게 느껴진다. 의사 선생님들의 따스한 눈길과 친절함에 아픈 곳이 자연스럽게 치유되는 것 같다.


하루 3백 명도 넘게, 밤 12시가 넘어 찾아오는 환자도 묵묵히 치료해 주셨다던 남수단의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님이 생각난다. 신부님을 아프리카 톤즈 사람들이 그토록 존경하는 이유는 '신부님 당신을 톤즈 사람들과 동일한 인간이란 자세로 임했기 때문'이 아닐까. 환자를 잘 치료하는 의술은 당연히 필요하고, 병원 경영도 근본적인 과제다. 그러나, 환자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진정성 있는 의사 선생님도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묵상

십자가 앞에 꿇어 주께 물었네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들
총부리 앞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이들을

당신은 보고만 있냐고
눈물을 흘리면서 주께 물었네
세상엔 죄인들과
닫힌 감옥이 있어야만 하고
인간은 고통 속에서
번민해야 하느냐고
조용한 침묵 속에서
주 말씀하셨지.
사랑
사랑
사랑 오직 서로 사랑하라고

(고 이태석 신부님이 중 3 때 작사·작곡한 성가 ‘묵상’ 중에서)
가정집 같이 편안한 느낌의 니시모토 의원.
나카야마 선생에게서는 늘 진정성을 느낀다.
경비내시경 안내 포스터.
늘 아이들이 뛰어놀아, 활기가 느껴지는 우리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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