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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안천인 Jun 30. 2023

일본의 보도는 차도보다 2cm 높습니다.

휠체어가 가는 길에 막힘이 없고, 일본 거리가 깨끗한 이유

한국을 좋아해서 한국을 자주 여행하는 일본인이 ‘비위생적인 화장실’ 다음으로 고쳤으면 하는 것은 ‘평탄하지 않은 보도(* 주 1)와 일부 깨끗하지 않은 거리’다. “한국은 보도에 보도블록이 잘 설치되어 있고, 거리도 깨끗한데 무슨 이야기야?”라고 반문하시겠지만 일본과 비교하면 그렇지도 않다는 뜻이다. 간혹 초등학교 밴드에 도쿄(東京) 시내 모습, 天仁의 집 주변 공원의 꽃밭 사진을 포스팅하면, 친구들은 “일본의 거리는 참 깨끗하다”고들 한다. 특히 일본을 여행했던 경험이 있는 친구들은 보도블록이 안전하게 시공된 것은 잘 인지하지 못하지만, 거리가 깨끗하다는 데는 한결같이 동의한다. 처음 방문하는 여행객 대부분은 일본이 매우 깨끗해서 좋다는 인상을 가진다.


계단 주변에 반드시 설치하는 슬로프


옆 집 히마리가 서울로 이주하기 전인 지난 2월에서 3월, 유모차에 히마리를 태우고 우에노(上野)의 민단 사무실에 한글 공부를 하러 다닌 적이 있다. 그때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첫째는 ‘도쿄(東京) 시내 보도블록이 매우 튼튼하게 잘 깔려 있고, 도로 어디에도 굴곡이 없이 평탄하다’는 것과, ‘계단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유모차나 휠체어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경사면 슬로프나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유모차를 밀고 다녀도 막힘이나 불편함이 없었다. 지하철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승하차에 불편함이 없도록 지원하는 역무원은 모습은 자주 보지만, 도로도 휠체어나 유모차가 다니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데 적잖게 놀랐다.


서울의 거리를 걷다가 보도블록이 평탄하지 않거나, 패인 곳이 있어 넘어질 뻔한 경우가 몇 번이나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해 “부실한 시공, 전문성 없는 현장 작업자가 원인이다”라고 분석한 신문 기사를 읽었던 적이 있다. 뿐만 아니라 그 기사에서는 “겨울철(11~2월) 공사는 부실시공이나 사고 우려가 크기 때문에, 11월 이후에는 재해나 사고 등으로 인한 긴급 공사나 생활에 불가결한 소규모 공사를 제외한 모든 보도 공사를 하지 않겠다는 ‘클로징 11’을 선언해 놓고 스스로 만든 규정조차 지키지 않는 발주 당국의 문제 등 복합적 요인이 겹친 탓”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주 2)


보도블록 두께 6cm,
그 아래 다져지는 지반은 50cm

얼마 전에 일본인 친구 나카노(中野) 군과 맥주를 한 잔 하면서 나카노 군의 중고대학 동기생인 하라다(原田) 군과 합석할 기회가 있었다. 나카노 군과 하라다 군은 작년에 명을 달리 한 아베 신조 전 수상의 중고대학 후배들이다. 하라다 군이 보도블록을 제조, 시공하는 업체에 근무하고 있어서  도로 공사, 보도블록에 대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술자리의 화젯거리가 되었다. 그날 天仁이 처음 알았던 것은, 실제 보도블록의 두께는 6cm밖에 되지 않지만, 그 보도블록을 안전하게 지탱해 주기 위해 보도블록 아래 지반을 50cm 이상 몇 단계로 튼튼하게 다져주는 시공이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 친구 회사의 제품은 보도블록에는 투수성(透水性)이 있어 비가 내리더라도 물이 잘 빠지고, 그 아래에는 투수성 시트를 깔아 보도블록이 밀리는 것을 막아준다고 한다. 또 그 아래에는 지반을 다져주는 채석(採石)을 설치하고, 여름철에도 지열을 막아주는 모래를 깐다. 다른 회사들의 제품이나 시공방법도 다를 수는 있지만, 보도블록이 뒤틀어지거나 평탄하지 않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그러니 3개월 만에 보도블록을 다시 깔 이유도 당연히 없다. 술자리의 대화였지만 일본의 보도가 튼튼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늘 튼튼하고 안전하게 시공한다."는 마음가짐에서 자부심과 ‘장인정신’이 느껴진다.


그런데, 히마리를 유모차로 데리고 다니면서 인도와 차도가 높이에 차이가 있어 불편했더라는 경험담도 이야기를 했더니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각 지자체는 인도와 차도의 높이 차이를 2cm로 시공하도록 지자체 조례에 정하고 있는데, 이유는 시각장애인이 보도와 차도의 경계를 인식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휠체어나 유모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다소 불편하더라도, 시각 장애인을 위해 일부러 보도와 차도의 단차를 둔다는 것이다.


일부 지자체는 휠체어 이용자와 고령자의 불편도 해소하기 위해 단차를 2cm 둔 곳과 단차를 없앤 도로를 함께 설치하기도 한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불편 없이 더불어 살도록 하겠다는 배려다. 나중에 언뜻 생각이 나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더니, 天仁이 전에 살았던 시나가와구(品川区)도 그런 도로 시공 정책을 시행 중이었다. 그러고 나서 도로를 다니다 보니 인도가 끝나고 도로, 신호가 시작되는 곳에는 반드시 시각장애인용 점자 블록이 설치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간격이 촘촘한 하수구 뚜껑을 사용해 휠체어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하거나, 공공장소의 수도꼭지 아래까지 휠체어기 들어갈 수 있도록 하여 장애인을 배려하고 있어 깜짝 놀랐다.


일본 거리가 깨끗한 이유는
교육과 관리


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 이겠지만, 길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본에도 길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지만, 당연히 쓰레기나 담배꽁초도 떨어져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일본 거리가 깨끗한 이유는 이런 쓰레기를 잘 치우고, 청소하기 때문이다. 거리를 깨끗하게 유지하려면 교육을 통해 시민들의 의식 수준을 높아야 하고, 행정 관리도 뒤따라야 한다.


일본의 공립학교는 초등학교부터 고교까지 학교 내 교실, 화장실까지 아이들에게 직접 청소하도록 시킨다. ‘내가 사용하는 것은 내가 청결하게 관리한다’는 도덕심과 의무감을 심어주는 것이다. 일본 거리에서는 아이들이 길에서 음식을 먹으며 걷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초등학생들은 용돈이 없어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중등학교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많은 중등학교에서 하교 시 교복을 입은 상태로는 음식점은 물론 편의점에도 들리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교육,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길에 음식을 먹지 않으니 길에 과자 봉지 등 쓰레기를 버리지 않게 되고, 이 습관은 성인이 되어도 이어진다.


또, 어른이 되면 일본 특유의 집단의식이 발동해 다른 길에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 지난 월드컵 축구가 열렸을 때 경기가 끝난 후 장내 쓰레기를 줍기 위해 남아 있는 일본 팬들의 모습과 선수들 역시 자신의 탈의실을 깨끗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자리를 떠나지 않는 모습이 TV를 통해 방영되며 다른 나라들의 칭찬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일본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야구장이나 축구장에서 경기가 끝난 후 자기의 쓰레기는 직접 치우고, 챙겨 가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다.


쓰레기 봉지가 찢어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보호네트


일본인들이 한국을 방문하여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주택가에 내놓은 쓰레기 봉지가 오랫동안 방치되고 있는 것과 찢어져 쓰레기가 흩날리고 있는 광경’이다 이는 미관을 해칠 뿐만 아니라 악취도 풍겨 상당한 불쾌감을 준다.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의 반상회에 해당하는 주민 자치회를 통해 이 문제들을 관리해 나간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정해진 규칙을 잘 지킨다. 그러나, 혹시 이를 지키지 않으면 자치회에서 분리수거 규정을 지키도록 선도하기도 하고, 순번을 정해 쓰레기 수거장을 청소하여 청결을 유지한다. 특별한 활동을 하지는 않지만, 天仁도 우리 구의 쓰레기 불법투기 감시 요원이다. 이럴 정도로 지자체도 행정 자원을 투여한다.


일본의 일반주택 쓰레기 배출 관리 방법이 우리나라와 한 가지 다른 점은, 길에 내놓은 쓰레기 봉지 더미에는 반드시 보호 네트를 씌우는 것이다. 보호망, 네트를 씌우는 것은 까마귀가 쓰레기 봉지가 찢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니 도로에 쓰레기 봉지가 뜯어져 흩날리는 모습을 볼 수가 없이 깨끗하다. 매일 아침 6시 30분 마을 공원에 모여 라디오 체조를 마친 후 주민들이 동네를 청소하는 모습, 음식점이나 가게를 운용하는 점주들이 아침에 주변 거리를 청소하는 모습은 일본의 어디서나 매일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지자체나 기업이 주관이 되어 청소 봉사를 하는 모습도 21세기 일본에서 자주 본다.


일본의 청결 문화는 덥고 습한 기후 환경과도 관계가 있어 보인다. 덥고 습하면 음식이 쉽게 상하기 때문에  일본에서의 위생은 건강과 직결되어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청결을 중요시해 왔다. 일본이 깨끗한 이유를 역사적으로는 6세기경 유입된 불교와 연관을 짓기도 한다. 선종에서는 음식을 먹거나 공간을 청소하는 등 모든 일과를 명상, 수행의 과정으로 보고, 더러운 것을 씻어내는 행위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불교를 숭상했던 일본인들이 수행을 위해 깨끗하게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음식물도 분리수거하는데 비해 일본에서는 음식물은 일반 쓰레기로 버린다. 분리수거 방법은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오히려 더 엄격하고 친환경적이다. 天仁 생각에는 일본의 거리가 깨끗한 것은 교육과 관리의 결과다. 조금만 더 신경을 쓰면 우리나라도 훨씬 좋은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참고글 : https://brunch.co.kr/@thesklee/262 일본 화장실에는 휴지통이 없습니다.


* 주)

1. 보도(歩道)는 차 등이 다니는 도로에 병설된 인도(人道)를 의미하는 말

2. 조선일보 '21.4.9자, '3개월 만에 또… 보도블록 왜 툭하면 다시 까나'


일본의 공공시설 계단 바로 옆에는 슬로프가 설치되어 휠체어나 유모차가 쉽게 오를 수 있도록 배려한다.
https://www.city.shinagawa.tokyo.jp/PC/kenkou/kenkou-barrier_free/hpg000022715.html
(사진 위) 휠체어 사용자를 배려한 수도, 하수구 뚜껑. (사진 아래) 장애인과 휠체어를 함께 배려한 단차 2cm가 있는 보도와 단차가 없는 보도를 함께 설치한 도로(品川区)
투수성 보도블록 시공 개요도. 지형에 따라 보도블록 두께 6cm의 약 10배 두께까지 하부 지반을 다진다. 그러니, 보도가 튼튼하다.
상가 주변에서는 주변을 청소하는 업주분들을 매일 아침 볼 수 있다.


일반 주택가에도 쓰레기 집하장에 보호네트를 씌워 놓으니 쓰레기 봉지가 찢어져 도로에 흩날리는 일이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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