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경제활동의 결과물, 고액요양비제도, 실버패스
"일본은 역사상 가장 잘 작동하는 사회주의 국가다"
윌리엄 페세크 블룸버그뉴스 아시아 담당 이사의 말이다. 경제 대국이고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일본이지만, "일본이 그동안 취해온 경제정책과 성장 모델은 자본주의 원칙을 벗어난 사회주의적인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다른 서양학자들도 "일본은 지구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사회주의 국가"라고 말하기도 한다. 일본 전문가 김현구 교수도 "일본은 사회주의 국가 못지않게 끈으로 연결돼 질서 있게 움직이는 사회이고, 그 끈은 바로 일본인들의 집단의식"이다라고 평하기도 한다. 공감이 된다. 일본에서 살아보면 일본은 부의 불균형을 완화하려고 하고 있고, 우리나라 보다 더 평등한 사회임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돈이란 경제활동의 단순한 결과물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은 돈이란 '단순한 결과물[結果金, 겟가킹, 결과금]'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경제적인 활동 뒤에는 당연히 돈이 따른다고 생각한다. '무사는 먹지 않아도 이를 쑤신다(武士は食わねど高楊枝, 무사의 청빈과 체면을 중시하는 기풍을 표현하는 말)'는 말이 있듯이 사무라이 정신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국가 분위기에는 돈을 모으는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엄청난 부를 축적해도 칭송받지 못한다. 물론 돈을 모으는 것 자체가 목적인 사람들이 없지는 않지만, 그런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존경받지 못한다. 사회평등주의적인 분위기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돈을 많이 벌게 되더라도 '어쩌다 보니 조금 벌게 되었다'면서 겸손해 하는 것이 사무라이다운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배금주의(拝金主義)를 멀리하려고 노력한다. 부자인 회장이 이렇듯 돈을 결과물로 생각하고, 청렴하니 직원들도 그 회장을 본받아 청렴하게 산다. 엄청난 부자들도 숨길 것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매스컴에 얼굴을 보여주기도 한다.
고액요양비제도
天仁은 병원에 입원한 후 '고액요양비제도(高額療養費制度)'라는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응급으로 후송되어 입원하여 치료를 받고 있는데 치료만 해줄뿐 그 누구도 "치료비를 내라"라고 하거나 "치료비가 얼마"라고 하는 등의 치료비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그러다가 퇴원 날짜가 가까워지자 병원의 행정실 직원이 명함을 들고 병실로 天仁을 찾아왔다. 회사에 연락해서 '고액요양비 등급확인서'를 발급받아 달라(주. 2년이 지난 지금은 병원의 전산에서 바로 확인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고액요양비 확인서'가 뭐지? 의료보험료를 납부하고 있으니 총진료비의 30%를 본인이 부담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건강보험료 뿐만 아니라 입원 진료비의 본인 부담금도 전년도 소득금액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고액 요양비제도는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고액의 의료비에 대해서 소득에 따라 환자의 치료비에 차등을 두어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는 제도'이다. 예들 들면 최고 등급인 연간 소득이 1,160만 엔 이상인 경우 1개월간 부담해야 할 입원 치료비는 '252,000엔+(의료비 - 842,000엔) ×1%'이다. 이 또한 3개월 이상 입원하게 되면 월 정액 140,100엔이 된다. 연간 소득이 370만 엔 이하인 경우에는 1개월 치료비는 57,600엔, 주민세 비과세 대상자는 35,400엔이 되고, 3개월 이상 입원 시에는 각각 57,600엔, 25,400엔으로 줄어든다. 물론 의료보험료를 소득에 따라 차등 부담하지만, 입원하는 등 치료비가 많이 발생할 때는 또 한 번 더 차등을 두어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다. 친구들끼리 식사를 하더라도 경제적 여유가 있는 친구가 밥 한 끼 더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고액요양비 제도는 더불어 살아가야 할 세상에 얼마나 합리적인 제도인가.
소득에 따라 부담금이 다른 실버패스
天仁이 살고 있는 도쿄의 '실버패스'도 매우 좋은 예다. 실버 패스는 '도쿄도(東京都, 도쿄 시내 23구와 위성도시)에 주민등록이 있는 70세 이상의 도민'이면 이용할 수 있는 '경로우대 패스'다. 그러나, 이 실버 패스는 완전 무료는 아니다. 실버패스는 소득에 따라 부담금액이 달라진다. '전년도 주민세가 '비과세'인 사람, 전년도 합계소득금액이 135만 엔(한화 약 1천3백만 원) 이하인 사람'은 1년간 사용료가 1,000엔(한화 약 9천4백 원)이다. 이에 비해 '전년도 소득 135만 엔 이상인 사람'은 연간 이용료 20,510(한화 약 2만 원) 엔을 내야 한다. 이 실버패스로는 도쿄도가 운영하는 모든 버스, 도에이 지하철(都営地下鉄, 도에이 아사쿠사센(都営浅草線), 도에이미타센(都営三田線), 도에이신주쿠센(都営新宿線), 도에이오에도센(都営大江戸線) 등), 닛포리·도네인 라이너(日暮里・舎人ライナー) 등의 전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도에이 지하철 기본요금이 180(한화 약 1천7백 원) 엔, 시내버스를 한번 타는 요금이 210엔(한화 약 2천 원)인 것을 감안하며 연간 이용료로 2만 엔을 내더라도 거의 무료에 가까운 저렴한 비용이다.
우리 실정에 맞는 시스템 구축을
우리나라에서는 연예인 중에 화춘화 씨, 션 정혜영부부, 장나라 씨 등이 기부를 많이 하신다고 들었다. 기부 금액도 수백 억 씩 된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분들이다. 최근에는 이대호 선수가 창단 후 처음으로 대통령 배 고교야구대회에서 우승한 모교 경남고 야구선수들에게 1천3백만 원 정도의 식사를 대접했다고 한다. '조선의 4번 타자' 답게 이대호 선수가 돈을 멋있게 썼구나 싶다. 돈이 많아도 써야 할 곳에, 써야 할 때 올바르게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개인적으로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면 더 많이 기부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기부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우리 실정에 맞도록 시스템을 보완하여 더불어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