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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슬로우 Sep 28. 2020

[부록] 코로나 시대, 페스트를 읽고

일상 / 북홀릭

매일 스타트업과 브런치. 126 day


올 초부터 매일 1일 1글을 올리다시피하다가, 한동안 바쁘게 해야할 일이 생기고 좋은 의미로의 삶의 변화가 좀 생겨서 한 한달을 넘게 브런치를 손놓고 있었더니 오랜만에 다시 돌아온 브런치가 왠지 낯설다. 처음 잠시동안은 어색하게 글을 더듬더듬 적다가, 내 머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손으로(자판기로 두드리는) 글이 먼저 써지는 것을 보니, 아 다시 감을 찾았구나 싶다.   


이 악몽같은 코로나 시대로 인해, 며칠 후면 시작되는 이번 추석에는 "불효자는 '옵'니다"라던지, "올 추석, 찾아뵙지 않는 게 효, 모이지 않는 게 정, 이동하지 않는 게 답"이라는 식의 정부가 내건 표어가 계속 눈에 띈다. 이 시국에는 왠지 한가위 잘 보내라는 말도 좀 하기 그렇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도 이제는 옛말이 된 것처럼 그 말을 주고 받을 수도 없는 추석이 되어 버렸다.



우리가 이런 명절을 맞이하게 되리라고는 올 초만 해도 생각이나 했을까..? 전국민 이동 자제령이 내려진 것이나 다름이 없는, 가족간의 정을 나누라고 맹글어놓은 명절에 찾아뵙지 않는 게 진정한 효라는 시대.. 매년 명절마다 늘어나는 해외여행객 수도 문제였지만, 올해는 오히려 떳떳하게 강원도나 제주도 국내여행을 어느 때보다도 버젓하게 떠날 수 있는 명절이 된 것은 아닌지 좀 의문스럽다. 정부 시책은 시책이고 오히려 이러한 시책이 반갑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명절 아래 참.. 정부의 규제와 개인의 자유가 이렇게나 서로 모순되면서 공존하는 모습이.. 참 아이러니하고 모순적이게 느껴진다.


지금 우리는 이러한 코로나 민주공화국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recipe 197. 알베르 카뮈 '페스트'

카뮈의 페스트는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코로나 시대를 마치 예측이라도 한 듯이, 세밀하게 현재와 크게 다름이 없는 시대상을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이 보여주고 있다. 페스트 정국에 놓이면서 겪게 되는 개개인 하나 하나의 감정과 생각 그리고 집단 전체의 감정과 생각의 흐름까지도 어떻게 시시각각 변해가는지 낱낱이 전지적으로 그려내고 있으며, 이러한 시대에 가져야 할 인간으로서의 어떤 가치관에 대한 해답까지도 나름 제시해주면서 긴 호흡의 소설을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흥미롭게 끌고 나가서, 마치 이것은 코로나 시대의 인간 군상에 대한 교본과도 같다는 느낌이 든다.


새삼 카뮈의 통찰력에 감탄하면서.. 그는 논란의 여지 없이 위대한 소설가이지만, 이 소설은 '이방인' 못지 않게 놀랍도록 굉장한 소설이다. 건조하기 이를 데가 없는 드라이한 삶이 펼쳐지는 현대적 도시가 배경인 것은 이방인과 다를바가 없는데, 이 책을 다 덮고 나면 페스트라는 위기와, 삶과 죽음의 경계선 앞에서 인간이 가져야할 인간애, 즉 서로간의 애정과 우정과 사랑, 도움과 이해없이는 이 세상은 결코 살아갈 의미가 없다는 사뭇 따듯한 결론에 이르면서, 과연 삶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어쩌면 카뮈가 얘기하듯이 '우리 인생이 곧 페스트'라는 말이 어쩌면 가장 맞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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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끌고 나가는 사람은 리유라는 사람이다.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베르나르 리유가 쓴 연대기적 서술에 의한 보고서(타루의 수첩에서 차용하기도 한)와도 같은 형식의 이 책은, 194X년 프랑스의 '오랑'이라는 한 도시에서 발생한 '기이한 사건'에서부터 시작한다. 어느날 사람들 앞에서 쥐가 피를 토하며 픽픽 쓰러져 죽어나가는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골목길에 그렇게 팽겨쳐진 쥐가 점점 많이 목격이 되면서부터 온 쓰레기통과 도시가 쥐의 사체로 뒤덮히고, 쥐에게 바이러스가 감염된 인간들 사체마저 도시를 뒤덮는 상황이 서서히 발생이 되어된다.


그렇게 시작된 페스트는 의사 리유에게 도시를 위한 어떤 의견과 정책적 결정을 강요한다. 우선은 "이것이 페스트인가?" 에 대한 선언을 내려야 하는 것에서부터 갈등을 하게 되는데, 그는 보건위원회와 현청의 법률적 규정에 따른 조치를 다 떠나서 이것이 페스트가 아니더라도 도시 사람들을 위해서는 페스트가 발생했을 때에 취하는 예방 조취가 취해져야 한다고 결정을 내리기로 한다.


그렇게 도시 폐쇄 명령이 내려지는 가운데 갑작스런 페스트로 인해, 오랑 시민들에게는 감정의 변화가 생긴다. 같은 시간에 같은 일을 겪으면서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각자 가지게 되는 입장들의 차이가 있고, 느끼는 감정의 결이 다 다르다. 또한 그 사태를 받아들이면서 가지게 되는 양가적인 감정과 태도가 존재한다. 그러한 사람들과 삶의 모습을 하나하나씩 그려내는 소설이다. 리유가 만난 타루, 그랑, 코타르, 랑베르, 파늘루 신부, 예심판사 오통, 해수병쟁이 노인 등등 까지..  


페스트로 인해 뜻하지 않은 생이별과 무질서한 혼란을 겪으며 사람들은 깨닫게 된다. 어쩌면 죽음의 공포보다 인간적 감정이 더 강하다는 것을. 미래가 없는 현재를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과거만 회고하는 인생이 되고만다는 것을. 연인은 사랑의 역사를 거슬러올라가 그것이 불완전했던 점을 실수를 깨닫기도 하고 어머니에게 무관심했던 아들도 후회를 떠올리며, 그렇게 추억과 과거 속에서.. 미래없이.. 산다기보다는 둥둥 떠다니는 삶을 살시 시작한다. 마치 우리가 한동안 코로나 블루를 겪었 듯. 억수같은 비가 내리던 오랑시와 같이 우리도 올 여름 억수같은 장마와 홍수까지 겪어 내었던 것도 이상하게 우연은 아닌 것 같다..  


랑베르라는 신문기자는 취재차 오랑시에 왔다가 페스트로 인해 이 도시에 갖히게 된 타지인이다. 파리에 두고 온 사랑하는 아내 생각에 온통 도시의 폐쇄망을 뚫고 돌아가기만을 위해 갖은 수를 다 쓰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불법적인 방법으로도 잘 해결이 안되던 가운데 그는 언젠가부터 스스로 이 페스트를 겪어내야만 하는 이 도시의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남기를 스스로 결정하게 된다. 리유(리유도 자기와 같이 부인과 다른 도시에 떨어져있다는 것을 알고나서는)와 함께 이 도시가 치뤄야 할 일과 업무를 도우면서.. 어쩌면 공공복지보다도 개인의 행복이 더 중요해야 마땅한 상황이고, 그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현재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스스로를 고민하게 된다.


파늘루라는 신부는 페스트를 곧 신에게 향한 인간의 사랑이 부족해서 내린 신의 재앙이라고 선포하며,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데도 신의 말을 전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연설을 해야 하는 것이 자신의 책무라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예심판사 오통의 아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실제로 보고 겪게 된 이후로, 굳건했던 그 믿음들이 조금씩 무너지면서 어느날부터인가 이상한 심경의 변화가 생기더니, 신부로서 진찰을 거부해야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견지해왔던 그는 결국 페스트도 아닌 병명 미상으로 허망한 죽음을 맞이한다.


그랑은 오랫동안 말단 시청의 서기에 머물며 고행에 가깝게 그저 안분지족으로 버티며 살아온 사람으로, 확고한 자기 주장도 없이 살며, 삶에서 자기만의 언어를 찾고 있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페스트를 이겨내기 위해 현청의 일을 묵묵히 해내는 수행자였고, 헤어진 자신의 아내 잔을 평생 그리워하며 살아왔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사랑이 없는 세상은 죽은 세계와 다를 바가 없다고 흐느끼던 그는 갑작스레 페스트에 걸려 죽어가기 직전, 그의 아내를 위한 단 하나의 명확한 문장과 언어를 찾게 되었다고 행복해한다. 결국 "아름다운 잔"이라는 자기만의 표현을 결국 찾게 된 그는 사실 줄곧 언젠가는 세상에 내어놓기위한 소설을 써왔었다. 아무리 써내려가도 별 내용이 없는 글들로, 글을 좀 이어나가려고 하면 멋진, 우아한 등의 수많은 형용사들 중에 정확히 무엇을 써야할지 몰라 제대로 글쓰는 것을 이어나갈 수가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거의 가망없이 죽어가다 기적적으로 회생하여 살아나는데, 그의 기적같은 일이 있은 후로 사람들의 병세가 점점 나아지고 페스트가 서서히 후퇴하기를 시작한다. 악몽의 끝을 알리는 신호 같은 것이 었다.           


그동안 리유는 직업 의사로서 사람들의 죽음을 계속 보아야만 했던 현실에, 페스트는 자신에게 끝없는 패배만을 안겨주는 것처럼 느껴왔다. 하지만, 타루와 랑베르와의 나눈 대화 속에서 자신이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어떤 영웅주의적인 일과는 상관이 없이 단지, 성실성의 문제라고 결론지으며 자신의 책무를 다해온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리유는 의사인 자기가 해야하는 일이 병을 고치고 사람을 살려주기 위한 일이 아니라, 선고를 내리고 격리를 명하는 일이라는 것에 대한 자각이 들때면 씁쓸해지기도 했다.


페스트의 후퇴로 도시에는 다시 활기가 살아나고 행복이 스며드는 가운데에도, 여전히 페스트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도 있었다. 타루는 리유와는 진한 우정을 나누고 확인한 사이로, 타루의 죽음은 리유에게 크나큰 상처를 남긴다. 리유는 이미 이 도시는 회복이 되었지만, 적어도 다시는 자기 자신에게 평화가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다시는 페스트 이전의 삶을 살아가지 못할 것을 안다. 바로 타루의 죽음을 곁에서 겪었기 때문이다.


타루는 언젠가 만성절을 앞두고 리유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적이 있다. 차장검사였던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어린 시절, 어느날 아버지의 법정변론을 목격하게 되면서 그는 아버지를 결사적으로 부정하게 된다. 그는 그 현장에서 아버지로부터 매정하게 사형선고를 받게 된 그 죄수의 눈빛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 집을 뛰쳐나와 소위 사회에서 행해지는 '사형선과'와도 같은 일에는 무조리 반대되는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일종의 사회운동과도 같은 일을 해왔다. 그는 오늘날과 같은 현실에서는 많이 죽이는 자가 결국 승리하는 모습에서 어쩌면 페스트가 그가 혐오하던 사형선고나 다름이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페스트와 싸우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타루는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 가슴에 뻥뚫린 그 구멍을. 사실 오늘날 누구나가 어느 정도는 페스트 환자이다. 사회라는 체제 속에서는 누구라도 병균을 퍼트리는 존재일 수 있다. 하지만 거의 누구에게도 병독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될 수 있는대로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결코 해이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라고 하며, 자신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성인이 될 수 있을까?" 라고 한다.


그러자 리유가 그에게 "마음의 평화에 도달하기 위해서 걸어야할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데, 그의 대답은 바로 ‘공감'이였다. 리유는 "나는 성인들보다는 패배자들에게 더 연대의식을 느낀다. 나는 아무래도 영웅주의자나 성자같은 것은 취미가 없고,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그저 '인간'이 되겠다는 것뿐이다"라는 등 서로의 속깊은 이야기들을 주고 받으며 그들은 그날밤 서로를 깊이 공감하게 된다. 함께 속이 후련해진 기분으로 해수욕을 하며 물에 떠있는 순간 리유는 알 수 없는 행복감에 젖는다. 그 순간 말 한마디 입밖에 내지 않아도 서로가 똑같은 심정을 느끼고 공감함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서술자 리유는 여기 등장하는 인물 모두와 어쩌면 '공감'을 행했다. 적어도 이해를 하고자 했다. 타루, 그랑, 파늘루, 오통, 랑베르, 코타르 등등 그 모두와 함께 그들의 상황을 공감하고 이해하면서 함께 살아가고자 했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그리고 그 페스트 시대와도 부정을 하기보다 '공감'을 나누려했다. 그러는 가운데 그와 공감을 나눈 많은 사람들 중 거의 대부분이 목숨을 잃고 말았지만, 살아남은 그에게는 그들과 함께한 추억이 있다. 함께 페스트를 겪었고 우정을 나누었고 애정이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고, 그렇게 그들과 함께한 시간에 대한 '추억'이란 것이 그에게는 남아있었다. 죽어간 그들이 페스트의 폐배자였다면, 리유가 페스트로부터의 승리자로서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그 '추억'을 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아쩌면 인간이 페스트나 인생의 노름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것에 대한 '인식'과 '추억' 뿐이라고.. 어떻게 보면 '페스트가 곧 인생'이고, 우리는 끊임없이 이 전쟁과도 같은 페스트라는 피할 수 없는 인생을 헤쳐나가야하는 존재일 뿐이라는 것.. 이다. 그러한 상황의 연속선상에서 인간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답게 사는 것뿐이라는? 당연스럽고도 당연하지 않은 결론을 내리게 된다.


Love is like an accident 라고 했나? 어느날 사고처럼 뜻하지 않게 사랑이 찾아오듯이 인생도 그렇다. 인생에도 때로는 뜻하지 않는 사고가 생기고 그것들을 묵묵히 해결해나가면서 우리가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처럼, 코로나를 살아가며 이것 또한 함께 지니고 가며 이것을 이겨내기 위한 인간다운 노력들(비인간적인 방법들이나 신적인 방법이 아닌)을 꼭 해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년 명절에는 결코 모이지 않는 게 정이 되는 세상이 아니길 바래보면서..        




목표일: 126/365 days

리서치: 197/524 recip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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