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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슬로우 Nov 08. 2020

[부록]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북홀릭

매일 스타트업과 브런치. 127 day


1914년에 출간한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은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마치 우리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인간의 소상한 마음의 일렁임을 이렇게나 큰 파도가 휘몰아치게 끌고 갈 수 있다니.. 작가 소세키의 구성력에 놀라움을 느끼며, 책 리뷰를 시작~  



일로 바뻐진 가운데 책 읽을 시간이 많지 않았는데 자기계발서 말고, 적어도 한 달에 한 권의 소설책은 읽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다. '고전'이라고 불리는 스테디 소설들은 정말 보석같기 때문에 읽고 나면, 굳어진 머리와 마음이 도끼(책은 도끼여야한다는 카프카의 말처럼)로 깨부셔지고 스파크가 일면서 심장이 두근두근, 전두엽이 반짝한다.


새로운 시대적 배경에 가닿아 보고,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의 결도 알게 되며,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선과 새로운 시대의 가능성 등을 책을 통해 얻는다. 지금의 나를 변화시키기도 하고, 앞으로의 나의 삶에도 새로운 경험의 레이어가 덧씌워질 것이다. 그래서 참 사람들이 고전~ 고전 하나보다~      



recipe 198. 나쓰메 소세키 '마음'

이 소설은 처음부터 나를 무장해제시켰다. 첫 등장하는 소설 속 배경에 나도 같이 동화되어 내가 마치 가마쿠라 해변에 누워있는 듯이 사람을 서정적으로 편안하게 만들어주었으니까. (*가마쿠라는 내가 좋아하는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배경이 되는 곳이라, 언젠가 한번 꼭 찾아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 이 책을 펼치며 가마쿠라가 배경으로 등장해 너무 흡족했다.)


휴양지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선생님과 나. 늘 같은 시간에 초연히 해수욕하러 왔다가 초연히 사라지는 선생님은 늘 혼자였다. 선생님을 만난 첫날 주인공(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은 사실 서양인이었는데, 그 서양인와 함께 해수욕을 하고 있던 사람이 선생님. 그래서 어떤 존재감이 생긴 것이다. 선생님은 그 때 이후론 늘 혼자였다. 그 부분도 주인공(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그렇게 피서지에서 만나게 된 나 & 선생님.


그 이후로 도쿄로 돌아온 나는, 선생님과 꽤 친해졌다고 생각하고 연락을 했으나, 선생님의 쌀쌀맞거나 실망스러운 대답에 의기소침해졌다. 하지만 돌아가신 후에나 알게 된다.


가엾은 선생님은 자신에게 다가오려는 사람에게 가까이 할만한 사람이 아니니 그만두라는 경고를 보냈던 것. 남이 반가워하는 것에 응하지 않는 선생님은 남을 경멸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경멸한 것.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 그러면서도 자신의 품으로 들어오려는 사람을 손을 벌려 안아줄 수 없는 사람, 그가 바로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늘 조용했고, 차분했다. 너무 조용해서 쓸쓸할 정도. 다가가지 않을 수 없는 신비감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때론 이상한 그늘이 얼굴에 드리워져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 그늘진 얼굴을 처음 본 곳은 조시가야묘. 무언가 희미한 불안..이 그의 얼굴에 스치는 것을 보았다. "난 외로운 사람이라네"라고 말하는 선생님은 사실 사모님과의 아름다운 연애 뒤에 무서운 비극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출처: http://blog.daum.net/moonye_books/397 


비극으로 치닫는 후반의 줄거리는 거의 스포에 가까운데, 이 책을 읽으며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도 떠올랐다. 이 책장을 덮었을 때는 인간 내면 속의 들키고 싶지 않은 어떤 모순된 단면을 본 것 같아 나도 이래저래 '마음'이 참 쓰라렸다.

   

나는 책 초반의 분위기에 좀 매료되었는데, 초반의 선생님과 사모님의 캐릭터들이 구가하는 삶의 태도가 어딘지 절제되어 있어, 그 절제미가 주는 일본 특유의 차분함이 좋았고, 선생님네 집안 풍경을 묘사하는 장면에서도 어딘지 모르게 젠스타일의 미학이 느껴지기도 했다. 또한 그 시대 우리나라보다 먼저 개화하여 어설픈 자본주의적 서양문화가 도입되기 시작한 일본 메이지 시대의 배경도 흥미로웠다.  


하권으로 절정의 이야기가 치닫기 전까지는 어떤 그런 차분한 전개가 독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하권에서의 반전 스토리로 인해 앞부분의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뀌는데..    


선생님이라고 불리우는 사람에 대한 주인공과 독자인 내가 느꼈던 어떤 존경심이라는 것이 하권에서는 완전히 무너진다. 나이 지긋한 존경받을 만한 어른으로 인식되었던(세상에 초연한 듯한 학식가로, 점잖으면서도 한편 개인주의적이고 쿨한 멋이 있던 노신사에 가까웠던) 선생님은 편지 하나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선생님의 고백체로 쓰여진 편지 속 젊은 시절의 그는, 아직 세상이 무언지 잘 모르던 치기어린 이십대 청춘의 미숙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 부분이 우선 한번 깬다고 해야하나?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사모님의 캐릭터도 마찬가지이다. 앞부분의 존경하는 선생님에게 걸맞는 품위를 지닌 아내이자 사모님으로 묘사될 때의 모습과 달리, 후반의 하숙집 아가씨로 등장할 때 느껴지는 캐릭터에 대한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고나 할까.  


서정적인 소설인 줄 알고 시작했다가, 언뜻 언뜻 비치는 미스터리한 복선이 흥미를 유발시키며 하권으로 접어들며부터는 본격 사이킥 스릴러로 무섭게 치닫는데..  독자를 무섭게 빠져들게 만드는 구성이다.    


누군가를 '선생님'이라고 높혀 부르며 흠모와 존경, 그것을 넘어선 한 인간에 대한 깊은 호기심 어린 시선이 이 책 전체를 끌고 나가는 힘으로 보여졌다.


갓 사회에 던저져 인생의 롤모델을 찾아나서게 되는 시기의 주인공에게는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꼭 필요했던 것으로, 선생님을 통해 세상의 뼈아픈 현실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인간의 마음이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 처절하게 탐구하게 되며, 그 주인공이 아버지와 선생님 등 삶에서 큰 존재감을 가진 누군가를 잃어야하는 상실의 아픈 경험을 하게 되었을 때에는, 항상 그 순간들을 견뎌야만 하는 상황들이 우리 인간사에서는 해가 뜨고 지는 일처럼 숙명적이고 당연한 일이라서 나도 같이 슬픔이 일었다.  


책을 덮고 나니 나의 대학시절도 어렴풋이 떠오르고 그 시절에 느꼈던 마음의 일렁임이 되살아나는 기분도 들었다. 서울로 유학온 대학생이었던 때가 도쿄로 유학온 주인공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선생님의 하숙생 시절도 나의 오래전 그 대학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비록 자유를 얻었지만, 홀로 서야하고, 세상 속에서 독립을 해야했으며, 자아를 확립하고, 사랑과 우정 그리고 아픔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고, 그렇게 그러면서 마음과 몸이 들끓고 방황하던 미숙한 어른의 첫 단계인 '청춘'! 소설 속 대학시절의 선생님이나 주인공의 모습이 그 옛날 나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표일: 127/365 days

리서치: 198/524 recip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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