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온도_33

by 슬로우

그는 회사에서 잘린 게 아니었다. 스스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나왔다. 이대로는 자신이 무너질 것 같아서… 그래서 다 버리고 나와 시작한 게 이 커피숍이었다.


커피를 싫어하던 자신이 커피숍을 창업한 건 모순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 안다. 자신이 싫었던 건 커피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커피에 묻어 있던 ‘억지로 버틴 기억’이라는 걸.


지금은 진짜 커피를 내린다. 억지로 마시는 것도, 억지로 웃는 것도 없이 일상처럼 스며들어 있는 커피를 내린다.


커피를 싫어하게 된 순간이, 어쩌면 ‘나’를 찾기 시작한 첫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회사를 그만둔 후, 처음엔 그냥 ‘쉼’을 갖고 싶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스스로에게 질문이 생겼다.


“그때 나를 버티게 해준 게 무엇이었을까.”


결국 그 답은 ‘커피’였다. 정확히 말하면 커피가 놓인 ‘공간’이었다. 그리고 자신도 그런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때 무너졌던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가 다시 하루를 버텨볼 수 있는, 아주 조용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더 슬로우'는 생겨났다.


빠르게 성공하거나, 번듯하게 운영하려는 가게는 아니었다.

한 사람, 하루, 한 잔의 커피, 그리고 그렇게 천천히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쌓이길 바랐다.


지금, 그의 바람은 천천히 이뤄지고 있는 중이었다.

작가의 이전글커피의 온도_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