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토론,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빈곤과 숙의민주주의

世音小評 2025. 5. 21

by 완서담필

대통령 선거 TV토론이 진정한 ‘토론’이 아닌 지는 이미 오래다. 형식은 남았지만, 내용은 공허하다. 후보자들은 질문을 회피하고, 책임을 전가하며, 말꼬리를 잡는 데만 능숙하다. ‘정치적 언변’이라는 이름으로 무책임한 말 돌리기를 반복하고, 유권자에게 성실히 응답하려는 자세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당리당략으로 짜인 공약과 기획된 아젠다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깊은 병은 이들이 토론의 자리를 단지 전술적 기회로만 여긴다는 사실이다.


토론이 끝난 다음 날이면, 언론과 유튜브, SNS 공간은 다시 진영의 대변자들로 가득 찬다. 토론이 아니라, 정파적 말싸움의 2차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언론은 이를 중계하면서도 정작 구조적 문제를 직시하거나 해체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고 소비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한국 정치가 빠져 있는 이 반복적이고 피로한 악순환은, 숙의(熟議) 없는 민주주의가 초래한 구조적 병리의 단면이다.


그러나 이 현실이 절망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분명 존재한다.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것은 단순하면서도 근본적인 변화다. 전화위복(轉禍爲福). 바로 ‘숙의하는 시민’을 정치 과정에 제도적으로 참여시키는 일이다.


숙의(deliberation)는 승패를 가리는 말싸움이 아니다. 그것은 통계적으로 층화된 방식으로 무작위 선발된 시민들이, 충분한 정보와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심도 깊은 논의를 이어가는 공적 절차다. 시민패널은 전문가와 이해관계자의 설명을 경청한 뒤, 서로의 의견을 숙고하여 정책 제안이나 평가를 도출한다. 이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개인들이 갖고 있는 의견의 단순한 분포 결과가 아니라, ‘숙의된 민의’다. 그 민의는 정책 결정의 정당성과 품질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데 기여한다.


이 숙의 프로세스를 대통령 선거 토론에 접목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통계적으로 층화된 무작위 방식으로 선발된 20여 명의 시민패널이 사전 숙의를 통해 토론 아젠다를 도출하고, 각 후보는 이들이 제기한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토론을 진행한다. 이후 시민패널은 후보들의 응답이 문제의 본질을 얼마나 충실히 다루었는지를 다시 숙의하여 평가 보고서를 작성하고, 이를 언론과 유권자에게 공개한다. 유권자들은 이 숙의된 평가를 참고해 자신의 판단을 더욱 정제할 수 있게 된다. 이는 TV토론을 단순한 설전의 장에서, 정치적 책임성을 묻는 공론의 장으로 탈바꿈시키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이 반드시 큰 비용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무작위 선발, 숙식 제공, 회의 공간 확보, 전문가 섭외 등 기본적인 운영비용만으로도 충분하다. 숙의가 제도화되면 반복될수록 효율화되어 비용 또한 점차 줄어들 수 있다. 운영은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기관이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 선관위가 주관하고, 대학 연구소나 공익단체에 위탁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다만 방송사에 위탁하는 방식은 피해야 한다. 방송사는 숙의의 원리를 이해하거나 실현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뿐더러, 시청률 경쟁과 정파적 편향에 의해 숙의의 본질이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이와 유사한 제도가 존재한다. 미국 오리건주의 ‘시민 이니셔티브 리뷰(Citizens’ Initiative Review)’는 무작위로 선발된 시민패널이 주민투표에 부쳐질 법안을 두고 숙의를 거쳐 찬반 논점을 정리한 자료를 만들고, 이를 공식 투표 자료와 함께 유권자에게 제공한다. 숙의된 정보가 유권자의 판단을 도와주는 방식이다.


이러한 숙의 프로세스는 TV토론에만 국한된 장치가 아니다. 정책 수립, 예산 심의, 사회적 갈등 해결 등 거의 모든 정치 영역에서 유연하게 활용될 수 있다. OECD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숙의 프로세스를 활용한 모델은 전 세계적으로 12가지 유형이 존재하며, 회원국들은 평균 15건의 숙의 프로젝트를 시행한 바 있다. 한국 또한 5건의 실적이 있으며, 국정 과제에 숙의 여론조사를 도입했던 경험이 있다.


특히 오늘날처럼 가짜뉴스, 음모론, 정파적 왜곡이 일상화된 미디어 환경 속에서 숙의 프로세스는 필수적이다. 숙의 프로세스는 진영을 넘어서는 사고를 가능하게 하고, 단순한 머릿수의 논리가 아닌, 성찰과 합의를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를 지향하게 한다. 숙의 프로세스는 민주주의의 백신이자, 시민을 피로에서 구해낼 해독제이며, 정치의 회복을 위한 필수 근육인 것이다.


우리가 감당하고 있는 이 지긋지긋한 정치, 분노와 무력감만을 남기는 이 수준 낮은 말싸움의 민주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이제 숙의하는 민주주의를 제도화해야 한다. 시작은 작아도 된다. 대학이나 시민단체, 연구소가 시범적으로 시작해 보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문을 열 수 있다. 말뿐인 정치, 끝없는 언쟁, 숨 막히는 양극화의 정치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제는 ‘숙의하는 시민’이 말하고, 정치가 듣는 민주주의로 나아갈 때다.


2025년 5월 21일

소나리우스의 世音小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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