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音小評 (2025. 5. 25)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에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가 물 위에 떠오르고,
여린 살이 썩어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들어가,
연못 속에선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1972년, 김민기의 노래 「작은 연못」은
잔잔하지만 작지 않은 울림을 남겼다.
동요처럼 흥얼거리기에도 어울릴 법한 멜로디였지만,
그 안에는 쓸쓸하고 섬뜩한 디스토피아의 전율이 함께 흐르고 있었다.
금지곡으로 묶였던 그 시절에도,
대학가 어딘가에서는
누군가의 기타 반주에 맞춰 이 노래가 조용히 퍼지고 있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흘렀지만,
연못 속의 싸움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고,
물도 그 싸움만큼이나 깊이 썩어갔다.
한반도라는 큰 연못도,
그리고 그 이름과는 달리 작디작은 대한민국이라는 연못도
늘 그랬다.
길고 긴, 소모적인 싸움.
안타깝고,
비극적이며,
어쩐지 바보스럽기까지 한.
그렇지만, 다른 이야기도 가능하지 않을까.
싸움에 휘말리지 않고,
오히려 썩어가던 연못을 살려낸 작은 주인공들의 이야기,
언젠가 후대에 전해질지도 모를,
또 하나의 '작은 연못' 이야기 말이다.
그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허구한 날 계속된 붕어 두 마리의 다툼은
연못 식구들을 두 패로 갈라놓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조용히 다른 생각을 품은 존재들이 있었다.
맹목적인 다툼보다,
죽어가는 연못의 운명을 더 걱정하는 이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그러나 분명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
민물게가 조용히 말했다.
줄우렁이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물장군은 말없이 물속 깊은 곳으로 사라졌다.
새우는 몸을 굽혀 썩은 이끼를 치우기 시작했고,
송사리들은 바위 그늘 아래로 모여
작은 물길을 냈다.
민물게는 연못 바닥의 썩은 진흙을
집게로 천천히 걷어내며,
가라앉은 바닥을 뒤집어
공기가 스며들게 했다.
느리고 단단한 그 움직임은,
오래 닫혀 있던 정체를 흔드는 첫 손짓이었다.
줄우렁이는 물가를 따라 천천히 기어 다니며,
바위에 붙은 이끼와 썩은 막을 조용히 갉아먹었다.
그의 지나간 자리엔
맑은 물이 조금씩 번졌고,
미세한 흐름이 생겨났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그는 묵묵히 연못의 피부를 닦아냈다.
물장군은 썩은 수초 틈에 숨은 유충들을 사냥하며,
지나갈 때마다 수면 아래 조용한 물살을 일으켰다.
지나치게 많아진 벌레들로 무너진 균형을 되살리려는 듯,
그는 침묵 속에서 조용히 질서를 다시 짰다.
민물새우는 송사리들 뒤를 따라다니며,
바닥에 가라앉은 찌꺼기와 죽은 잎사귀들을 부지런히 먹어 치웠다.
작고 빠른 그의 움직임은
수초 사이로 산소를 불러들이고,
정체된 물에 위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송사리들은 바위 그늘 아래에서
작은 물길을 터뜨리며,
떼를 지어 여울처럼 흘러갔다.
흐름은 약했지만,
그 속엔 오랜만에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들은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다.
다만 차분히,
그리고 묵묵히 움직였다.
그렇게 연못 속에는
몇십 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생명의 기척이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들은 자신들이 해 온 일을
‘차분한 숨터 만들기’라 불렀다.
극성맞은 붕어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연못 속 분위기는
서서히 달라지고 있었다.
그 차분한 숨터를 향해
피라미들이 조심스레 다가왔고,
그 뒤를 올챙이들도 따라왔다.
연못 가장자리,
그늘지고 보잘것없던 자리는
어느새 신선한 생명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싸움꾼 붕어들은 당황했다.
자신들의 말에 귀 기울이던 무리들이
어느새 하나둘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왜 아무도 내 말을 듣지 않는 거지?"
"왜 아무도 날 봐주지 않는 거야?”
초조한 눈빛을 보내보아도,
이제는 누구 하나 그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연못의 다른 이들은
두 마리 붕어들의 싸움과는 비교도 안 될
더 차분하고,
더 분명한 새로운 가능성을
이미 맛보았고,
너나 할것 없이
그 흐름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연못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늘 분탕질만 치던 붕어들도,
싸움에 지칠 때면
송사리들이 마련해 둔 차분한 숨터를 찾아들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들 또한
연못의 다른 주민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붕어들의 다툼은 여전히 이어졌지만,
이제는 그 소란이
연못을 지배하지는 못했다.
아무도 살 수 없을 것 같던 그 연못에도
다시 숨이 트이기 시작했다.
새 여울이 흐르자 탁하던 물은 맑아졌고,
햇살은 바닥까지 스며들었다.
바람이 불면 물풀이 부드럽게 흔들렸고,
소금쟁이는 조용히 수면 위를 스쳐갔다.
민물게는 구석에서 몸을 말렸고,
송사리들은 떼를 지어 여울을 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연못 한가운데에서 붕어 둘이
무심코 고개를 돌려 숨터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이미 혐오도 증오도 사라지고,
다만 공명하는 생명의 움직임만이 남아 있었다.
햇살은 물속 깊이 내려앉았고,
여울 사이로 반짝이는 기포들이 조용히 솟아올랐다.
수초들의 흔들림 사이로,
작은 물고기 떼가 나란히 지나다녔다.
바람이 지나가면서
수면 위에 잔물결을 남겼다.
연못은 아주 오랜만에,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마치 이제야,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듯이.
이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붕어의 여린 살이 썩어갈 정도로
연못 전체가 죽어가던 그때,
두 패로 갈린 싸움 너머를
응시하는 눈들이 있었다.
어느 한쪽의 편을 드는 대신,
그 둘을 초월한 다른 길을 본 이들.
그들의 차분하고도 묵묵한 방향 전환이
마침내
연못과 그 안에 살던
모든 생명을
다시 살려냈던 것이다.
2025년 5월 25일
소나리우스의 世音小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