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音小評 2025. 5. 15
“우리는 난파선의 생존자들이에요. 정치판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난파선 주위에 원을 그리며 빙빙 떠돌아다니고 있는 사람들이죠. 어떻게 하면 계속해서 물 밖에 콧구멍을 내놓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말이죠. 당신은 우리에게 어느 방향으로 헤엄쳐 가야 할지, 육지까지는 얼마나 먼지 말해줘야 해요. 합리적인 길을 제안한다면 사람들은 믿고 따라올 거예요. 아니라면 정치계를 떠나야 해요. 가서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이용해 돈이나 버세요.”
어네스트 카렌버그의 소설 『에코토피아 비긴스』(Ernest Callenbach, Ecotopia Emerging, 1981)에 등장하는 베라 올웬의 이 말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정치 윤리의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녀는 미국 상원의원이자, 생태국가 ‘에코토피아’의 탄생을 이끈 지도자였다.
베라의 리더십은 우리가 뉴스에서 흔히 마주치는 정치인의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 그녀의 상대는 대개 교활하고 노련한 정치 기술자들이었다. 그러나 베라는 이미지 정치에도, 대중 선동에도, 사이다 발언에도 기대지 않았다. 요란하지 않았지만 단단했고, 흔들림 없는 상식의 힘을 믿었다. 눈앞의 이익 앞에서도 진실과 거짓을 뒤섞지 않았고, 음모론은 철저히 경계했다.
베라에게 정치는 신뢰의 문제였다. 그리고 신뢰는 도덕적 우위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그녀의 믿음이었다. 비록 세상이 꼼수와 냉소로 얼룩져 있더라도, 올곧은 길을 묵묵히 걷는 정치인이라면 언젠가는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 그 믿음 위에, 오래도록 지켜온 일관성과 헌신, 그리고 솔선수범이 더해졌다. 베라는 들판의 야생화처럼 소박하고 조용했지만, 그 곁에 머물면 누구나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것처럼 느꼈다.
베라를 따르던 이들은 권력이나 자리를 좇는 이들이 아니었다. 모임은 취미 동호회처럼 느긋했고 자발적이었다. 스무 명 남짓의 사람들이 각지에서 모여, 각자 준비해 온 음식을 나누며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요가로 긴장을 풀고, 노래를 부르며 웃음을 나눈 뒤, 자연스럽게 새로운 나라의 비전과 정책을 이야기했다. 삶과 정치를 함께 나누는 공동체. 그 안에는 파렴치한 정치가와 그들의 정치에 대한 공분은 있었을지언정, 강요나 혐오는 없었다.
이런 풍경은 오늘의 한국 정치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비방과 혐오는 하나의 전략처럼 굳어졌고, 반사 이익을 노리는 언어의 폭력은 정치의 본령마저 가려버렸다. 배지와 기득권을 지키는 데 혈안이 된 이들과, 그 곁을 지키는 이른바 강성 지지층은 무엇이 어떻게 파괴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단한 개혁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상식과 윤리의 회복인지도 모른다. 지금 이 나라 정치에는 억지로 꾸민 화려한 장미의 독보다, 베라 올웬의 곁을 감돌던 들꽃의 은은한 향기가 더욱 간절하다.
소나리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