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 후보자 토론, 지금 이대로 좋은가?

世音小評 (2025. 5. 28)

by 완서담필

대통령 선거 후보자 토론 방식,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현행 방식은 형식과 내용 양면에서 문제를 드러낸다. 주요 정당 후보들이 정책 분야별로 세 차례 얼굴을 맞댄다지만, 짧은 정견 발표를 제외하면 실상은 비방전이다. 정책은 사라지고, 서로의 인성이나 과거 의혹을 끄집어내는 말들이 오간다. 말투, 표정, 단어 선택까지 불쾌한 장면이 이어지고,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민망한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이 '토론 아닌 토론'만으로는 유권자는 숙고할 기회를 얻기 어렵다. 내가 던질 한 표가 이 사회의 어떤 방향에 힘을 실어줄 수 있을지를 가늠조차 하기 힘들다. 열성 지지자들은 상대 후보에 대한 증오만 키우고, 결정하지 못한 이들은 정치 자체에 대한 염증을 안은 채 채널을 돌린다. 선거를 위한 공론장이 오히려 혐오를 낳는 이 현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사태를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까. 정치의 양극화는 이미 깊어졌고, 갈등은 일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손 놓고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정치가 분열되었다면, 그 틈을 메우는 방식도 정치의 언어로 다시 찾아야 한다. 그 출발점은 ‘토론의 형식’을 새롭게 묻는 일에서 시작할 수 있다.


새로운 토론 형식의 기본 구상: 시민 숙의의 접목

여기서 제안하는 것은 숙의민주주의 모델을 대통령 후보자 토론에 접목하는 것이다. 다음은 그 구체적 흐름이다.


1단계: 추첨을 통한 시민 패널 구성

전체 유권자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시민 패널을 무작위 추출 방식으로 구성한다. 성별, 연령, 지역, 직업, 정치 성향, 소득 등을 반영한 20여명의 일반 시민은 통계적으로 대표성과 정당성을 갖추게 된다. 이는 특정 계층이나 진영에 치우치지 않은 공정한 논의 구조를 설계하기 위한 출발선이 된다.


2단계: 전문가 의견 수렴

시민 패널이 숙의의 방법 및 주요 정책에 관해 전문가나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설명을 들을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한다. 이 통로는 대면, 서면, 온라인 방식으로 상시 운영되며, 주고받은 의견과 관련 자료는 일반에 공개된다.


3단계: 시민 패널만의 숙의와 질문지 작성

시민 패널은 수집된 정보와 자료를 바탕으로 숙의 과정을 거쳐, 토론에서 다룰 질문 항목을 정리한다. 이 질문들은 단순한 구호나 선언이 아니라, 후보자의 입장과 역량을 구체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실제적 논점 중심으로 구성된다. 숙의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숙의민주주의에 대한 전문 지식과 경험을 갖춘 인물이 중립적 입장에서 그 과정을 돕는다.


4단계: 후보자별 초청 토론회 개최

후보자 간의 정식 토론회의 개최에 앞서, 먼저 초청 자격을 갖춘 후보자별로 별도의 관훈클럽형 심층 토론회를 개최한다. 정책 분야별 전문가들이 참여해 후보자의 국정 운영 비전과 구체적 정책을 검증하고, 시민 패널도 질문자로 참여한다. 이 모든 과정은 TV와 온라인을 통해 생중계되며, 유권자들은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에서 각 후보자의 준비성과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5단계: 후보자 상호 토론 및 주제 구성

후보자 간의 정식 토론은 지금까지 해온 대로 경제, 사회, 정치 분야별로 세 차례, 혹은, 필요에 따라 정치 분야를 국내와 외교안보로 나누어 네 차례로 진행할 수 있다. 단, 각 회차의 세부 주제는 시민 패널이 도출한 질문 항목에 따라 구성되며, 사회적 이슈에 따라 탄력적으로 조정된다. 후보자들은 이 질문들에 회피 없이 응답해야 하며, 이를 통해 토론의 깊이와 밀도가 자연스럽게 확보된다.


6단계: 발언 시간과 사회자 역할

후보자 상호 토론에서는 서두 발언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발언에 대해 일률적인 시간 제한을 두지 않는다. 토론은 중간 휴식 시간을 포함하여 최소 3시간 이상 진행되며, 사회자는 발언의 독점, 사실 왜곡, 인신 공격을 즉시 제지하고, 토론의 흐름이 공정하게 유지되도록 중립적 조율에 집중한다. 이러한 자유로운 구조 속에서 유권자들은 후보자의 언어 품격, 논리적 응답, 상대에 대한 태도, 질문을 대하는 진정성, 그리고 토론을 대하는 전반적 자세를 세밀히 살펴볼 수 있다. 말꼬리를 물지 않고, 끝까지 경청하며, 질문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는가—이 모든 것이 곧 국정운영자로서의 인성과 역량을 판단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된다.


7단계: 시민 패널의 평가와 공개

각 회차의 토론이 끝나면 시민 패널은 다시 숙의 과정을 거쳐 평가 보고서를 작성하고 공개한다. 언론은 이 평가를 바탕으로 후보자별 태도와 내용, 설득력에 대한 논평을 진행하게 되며, 이는 단순 여론조사를 넘어선, 숙의에 기반한 공적 평가로 작동할 수 있다.


8단계: 유권자의 선택으로 연결

토론이 마무리되면, 유권자들은 시민 패널의 질문과 평가, 언론의 보도, 각 후보자의 태도와 논리를 종합적으로 충분히 검토한 뒤 투표소로 향한다.


계속되는 상상

1단계에서 8단계에 이르는 전 과정은 유권자가 ‘객관적인 정보와 숙고에 근거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실질적인 여건을 마련해 줄 것이다.


다음 선거부터라도, 이러한 일련의 토론 과정이 선거운동의 중심이 된다면 어떨까. 후보자가 떡볶이를 사먹는 연출된 퍼포먼스나, 선거운동원들이 큰절을 올리고 요란한 로고송에 맞춰 춤과 율동을 선보이는 기괴한 풍경들보다는 훨씬 더 바람직한 선택지일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후보자들의 진흙탕 싸움은 자연스레 힘을 잃고, 유권자들은 정제되지 않은 열기가 아니라, 비전과 정책에 근거해 차분하고 깊이 있는 정치적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껏 통탄할 수밖에 없었던 정치의 수준을, 그 한켠에서부터라도 바꾸어낼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숙의민주주의적 토론회 모델은 대통령 선거에만 머무를 필요가 없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정당 대표 간 토론에 적용할 수 있고, 정당 내부의 당대표 경선이나 공천 심사에도 충분히 응용 가능하다.




분노와 탄식이 절로 나오는 요즘이다. 하지만 지금 유권자에게 필요한 일은, 분노하거나 탄식하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금보다 나은 정치를 상상해 보는 것 아닐까. 그 출발은 멀리 있지 않다. 토론 형식을 바꾸는 일,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2025. 5. 28

소나리우스의 世音小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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