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편서정: 지구의 편에 서기 위한 정치 <제7화>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말은 어떤 문명사적 맥락에서 비롯되었을까. ‘지편서정’ 제7화에서는 생태 위기라는 전 지구적 상황을 배경으로 살펴봅니다.
산업혁명 이후의 경제 성장은 공해와 지구의 부양력 한계라는 새로운 문제를 낳았다. 공업화를 통한 경제 성장은 문명의 진보와 동일시되었고, 대량생산·대량소비·대량폐기의 생활양식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기업들은 환경 비용을 경영 비용으로 간주하지 않았고, 유해 물질을 그대로 대기나 하천에 배출해 왔다. 고용과 세수의 증가를 기대한 정부는 기업 활동에 장애가 될 수 있는 규제를 적극적으로 시행하지 않았다. 그 결과 발생한 것이 바로 ‘공해’라는 사회적 재해였다. 환경오염이 일어나면서 피해를 입은 지역 주민들은 건강상의 문제와 생활 곤란에 직면하게 되었다.
서구보다 훨씬 짧은 기간에 공업화를 이룬 일본에서는 공해 문제가 특히 심각하게 나타났다. 높은 인구 밀도 역시 피해를 키운 요인이었다. 공해 문제 연구의 선구자인 환경경제학자 미야모토 켄이치는 고도경제성장기 일본에서 벌어진 공해의 실태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도쿄나 오사카 등의 대도시와 공업도시는 겨울철이면 대낮에도 차량이 헤드라이트를 켜야 할 정도의 스모그에 뒤덮였고, 강은 악취를 풍기며 물고기가 살 수 없는 시궁창으로 변했다. 공해의 원점이라 불리는 미나마타병은 두 차례에 걸쳐 발생했고, 피해자는 수만 명에 달했다. ‘이따이이따이 병’은 그 이름이 상징하듯 잔혹한 병이었으며 [일본어 '이따이이따이'는 우리말 '아파아파'에 해당한다], 카드뮴 중독으로 인한 희생자는 수백 명(인정 환자 196명, 관찰 대상자 404명)에 이르렀고, 카드뮴에 오염되어 정화가 필요한 농지는 7,575헥타르에 달했다. ‘요카이치 천식’으로 불린 대기오염 공해는 대도시권과 공업지역을 중심으로 퍼졌으며, 공해건강피해보상법에 따라 대기오염 피해로 인정된 환자는 최고 시기에는 약 10만 명에 달했다. 1970년대 초에는 공해에 대한 언론 보도가 없는 날이 없을 정도로 공해가 일상화되었고, 전국 각지에서 발생했다. 이미 1960년대 후반에는 공해가 중대한 정치 문제로 부상하고 있었다. ─『戦後日本公害史論(전후일본공해사론)』 중에서─)
미야모토 켄이치에 따르면, 이러한 공해는 정(정치)·관(관료)·재(재계) 복합체가 일으킨 시스템 공해였다. 오염자인 기업과 정부를 옹호한 연구자들까지 포함하면, 정·관·재·학 복합체가 야기한 사회적 재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공해는 일본을 포함한 선진국에서는 1970년대를 경계로 점차 감소세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석면 공해나 원자력 공해처럼 새로운 형태로 공해는 반복되고 있다. 오래된 유형이든 새로운 유형이든, 시스템의 결함에서 비롯된 사회적 재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오늘날 개발도상국에서 발생하는 공해 또한 같은 시스템 공해라 할 수 있다. 공해나 환경문제는 체제를 가리지 않는다. 공해의 원인이 되는 폐쇄적 이익공동체를 해체하지 않는 한, 어떤 경제체제 아래서도 공해는 반복된다. 공해는 산업활동에 따른 자연환경의 파괴와 환경문제의 최종 국면에서 나타나, 지역을 황폐화시키고 생명을 위협한다. 공해는 경제 성장의 부산물이 아니라, 그 실패의 징후이다.
한편, 공해 문제와 함께, 지구의 부양력 한계라는 인식도 점차 부상했다. 1972년에 출판된 『성장의 한계』에 따르면, 지구 생태계의 자원 공급력과 오염 정화 능력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으며, 경제 성장은 결국 이러한 요소들에 의해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 이 제약을 무시한 채 경제 성장을 지속할 경우, 약 100년 이내에 인류의 평균적인 생활 수준은 심각하게 저하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파국을 피하기 위해서는 인구 증가를 억제하고, 경제 규모를 축소하며, 한정된 자원을 합리적으로 관리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이와 같은 인식은 1970년대 이후의 환경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물론 줄리안 사이먼처럼 성장의 한계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이들도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의 이성과 기술이라는 힘을 바탕으로 성장의 한계는 극복 가능하다. 산업혁명 이후 경제 성장을 통해 인간의 생활수준은 전반적으로 향상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더 나아질 것이라는 낙관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와 같은 낙관론이 여전함에도, 성장의 한계라는 문제의식은 객관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여전히 유효하다. 1992년에는 세계 70개국 약 1,600명의 과학자들이 성명을 발표해, 지구의 부양력 한계를 무시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 102명도 이 성명에 동참했다.
지구과학자들은 오늘날 지구가 ‘홀로세(Holocene)’에서 ‘인류세(Anthropocene)’라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경고한다. 홀로세로 불리는 지난 1만 년 동안, 지구 생태계는 생명 활동에 적합한 안정 상태를 유지해 왔다. 인류 문명 또한 이 시기에 형성될 수 있었다. 특별한 격변이 없다면 이 홀로세는 수천 년간 지속될 것으로 여겨졌으나, 산업혁명 이후 인간 활동은 이 안정성을 크게 훼손시켰다. 그 결과 지구는, 인간에 의해 그 운명이 좌우되는 불안정한 ‘인류세’로 접어든 것이다. 인류세의 도래는 인류를 포함한 지구상의 생명체 전체에 있어, 매우 불안정하고 위험한, 최악의 경우 파국에 이를 수 있는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의미한다.
요한 록스트룀 등의 연구자들은 이러한 인류세적 위험이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지구 허용 한계(planetary boundaries)’라는 개념적 틀을 통해,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질소 및 인의 순환, 오존층, 해양 산성화, 담수 이용, 토지 이용, 화학물질에 의한 오염, 대기 중의 에어로졸 등 여러 영역의 변화를 관찰하고 있다. 그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 가운데 일부 영역에서는 이미 허용 한계를 넘는 변화가 발생하고 있으며, 특히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질소 및 인의 순환에서는 그 위험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산업혁명 이후 인간 활동에 의해 주로 발생한 것으로 분석된다.
예를 들어, 고기후학 연구에 따르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대략 450ppm(공기 100만 분자 중 450개가 이산화탄소 분자라는 의미) 이상일 때, 지구는 빙하가 존재하지 않는 '얼음이 없는 세계'에 가까웠다고 한다. 이 지식을 바탕으로 과학자들은, 지구온난화의 주된 원인인 이산화탄소 농도를 350ppm 이하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이미 2009년 당시 387ppm에 도달했고, 2025년 5월 기준으로는 420ppm을 넘나들고 있다. 그 주요 원인은 산업혁명 이래 화석연료의 대량 사용으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에 있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이대로 지구온난화가 지속되면 회복이 불가능한 심각한 기후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 대륙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며, 지금까지 생명을 지탱해온 자연계의 메커니즘은 크게 흔들릴 것이다. 더 나아가, 하나의 이상 현상이 또 다른 하위 시스템의 연쇄적 변화를 유발해, 사태가 급속히 악화될 수도 있다.
생물다양성의 손실 역시 허용 한계를 넘어 진행되고 있다. 지구의 긴 역사로 보면 생물다양성의 변화는 자연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생물다양성은 자연적 변화 속도보다 100배에서 1,000배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주요 원인은 인간에 의한 개발과 인간의 이동에 따른 외래종의 유입이다. 여기에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까지 더해지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 있으며, 최악의 경우 전체 생물종의 약 30%가 멸종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생태계의 회복력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생물다양성을 풍부하게 보전해야 하지만, 록스트룀 등의 연구에 따르면 이 분야 역시 이미 한계를 초과한 상태다.
질소와 인의 순환 또한 허용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화학비료의 원료로 쓰이는 질소와 인은 빗물과 지하수를 통해 하천과 바다로 흘러들어가 식물성 플랑크톤의 영양원이 된다. 그러나 유입량이 허용치를 넘으면 하천과 해양은 부영양화로 인해 산소가 부족해지고, 수생 생태계는 막대한 피해를 입는다. 록스트룀 등에 따르면 바다로 흘러드는 인의 양이 산업혁명 이전보다 10배 많아지면 심각한 해양 무산소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또 질소 순환 과정에서 대기로 다시 방출된 질소는 온실가스로 작용해 지구온난화를 더욱 악화시킬 위험이 있다.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인위적으로 이용되는 대기 중 질소의 양을 연간 3,500톤 이하로 억제하고, 바다로 유입되는 인의 양도 연간 1,100톤 이하로 줄여야 한다. 그러나 이 한계 역시 이미 넘어서고 말았다.
지금까지 세 차례─'제5화 산업혁명,' '제6화 빈곤과 격차,' 그리고 '제7화 생태 위기'─에 걸쳐 살펴보았듯이,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물질적 풍요를 손에 넣었지만 빈곤과 격차는 여전히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다. 여기에 더해, 생태학적 차원에서도 인류는 이제 성장의 한계라는 벽에 부딪혀 있다. 오늘날 인류는 두 갈래의 난제 앞에 서 있는 셈이다. 하나는,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경제 성장을 원하지만, 지구의 생태적 수용 능력이 그 요구를 감당할 수 없다는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그 한계를 무시한 채 성장을 밀어붙일 경우 자원과 에너지의 소비, 환경 파괴, 오염 정화의 부담이 지구의 허용 범위를 초과하게 되어 결국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다는 문제이다. 따라서 인류세를 살아가는 우리는, 빈곤을 극복하는 동시에 지구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해야 하는 새로운 발전 경로를 모색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은 바로 이러한 성찰의 맥락 속에서 형성되어 왔다. 그 형성과 확산의 과정은 결코 단순하거나 직선적이지 않았지만, 1960년대 이래 그 절박함에 대한 공감과 지지는, 물론 제4화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의미의 증식이라는 뜻밖의 복잡한 문제와 함께 하는 것이기는 했지만, 점차 넓게 공유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지속가능성’이라는 절박한 요구가 1960년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어떤 계기를 통해,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쳐 제도화되어 왔는지를 몇 차례에 걸쳐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