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유도(利益誘導)라는 거울

세음소평 (2025년 7월 9일)

by 완서담필

이웃나라 일본에는, 자국 정치의 특성을 날카롭게 비추는 말이 하나 있다. ‘이익유도(利益誘導)’라는 용어다.


코분도(弘文堂)에서 펴낸 『정치학사전』은 이 말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익유도란 정치인이나 정당이, 지지의 대가로 특정 지역이나 단체에 이익이 돌아가도록 정치적 결정이나 행정 조치를 이끌어내는 것을 말한다. 이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 가운데 하나인 국민대표제와 배치된다. 에드먼드 버크가 말한, 일단 선출된 의원은 선거구의 대표가 아니라 국민 전체의 대표라는 생각과도 정면으로 충돌하는 행위이다.”


“정권이나 국회의원직은 선거 결과에 좌우되므로, 정치인이나 정당은 표를 얻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려는 경향이 있다. 동시에 유권자 역시 자신이 속한 지역이나 단체에 이익을 가져오는 것이 국회의원의 역할이라 여기는 인식이 강하다. 평소에는 평판이 나쁘지만, 선거 때마다 당선되는 정치인이 많은 이유도 거기에 있다.”


국책 사업이나 보조금을 끌어오는 지역 유력 정치인. 그리고 선거철마다 그를 위해 조직적으로 표를 몰아주는 지역 기업과 각종 단체들. 유권자의 투표 성향이 예전보다 개인화되었다 해도, 이런 구조는 여전히 견고하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이익유도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외국인들이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감탄하는 점 중 하나는, 어디를 가든 깔끔하게 정비된 거리 풍경이다. 지방 도시조차 평균 이상의 인프라를 갖춘 나라는 드물다. 어쩌면 그 배경에 이익유도형 정치가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폐해는 더 깊다. 앞서 인용한 정치학사전은, 일본의 경우 중앙집권적 행정구조와 넓은 행정 재량이 결합되면서 정치가 이익유도형으로 기울기 쉬운 구조라고 설명한다. 그 결과, 외교·안보와 같은 국정 전반에 대한 전문가가 자라기 어렵고, 장기적 정책을 고민하는 정치인은 선거에서 오히려 손해를 보기 십상이다. 국가의 미래를 고민하는 정치보다, 줄서기에 능하고 지역 민심에 민감한 생계형 정치가 득세하는 구조. 정상배 스타일의 정치인이 살아남기 좋은 토양. 그것이 바로 이익유도형 정치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일본은 1945년 패전 이후 줄곧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켜온 나라다. 1987년 이후에야 민주주의가 정착되기 시작한 우리 한국보다 훨씬 오랜 시간 다원적 정치를 이어왔다. 정치적 반대 의견을 낸다고 해서 고문을 당하거나 감옥에 가는 일도 없었고, 공산당도 합법 정당으로 존재할 만큼 정치 참여의 이념적 문턱도 낮았다. 그럼에도 병리적 현상은 생긴다. 이익유도형 정치도 그중 하나다. 결코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민주주의 체제의 그늘에 놓인 그림자라 할 수 있다.


그건 그렇고, 이웃나라에서 오래도록 쓰이고 있는 이 ‘이익유도’라는 말.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지역 발전이라는 이름하에 이익유도 경쟁에 몰입하는 정치판, 전국적으론 비호감인데도 특정 지역에선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보장되는 기이하고도 부조리한 구조. 왜 그런가. 그 이면에는 ‘한국식 이익유도’라는 회로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정치는 원래 그런 것’이라는 체념이 상식이 되어버린 현실 속에서 말이다.


비대위니 혁신위니 하는 말들이 매번 등장하지만, 그 모든 것이 정치쇼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지는 이미 오래다. 오늘 아침 뉴스를 훑다 문득, 그 ‘이익유도’라는 말이 떠올랐다. 하기사 미국에도 pork-barrel politics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해보기도 하지만, 증상의 깊이와 뿌리를 따지고 보면, 이쪽이 더 오래되고 더 고질적인 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정말 그럴까. 만약 정말 그렇다면, 넘어서야 할 벽이다. 길은 있을까. 찾으려 한다면, 길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2025년 7월 9일

소나리우서의 세음소평(世音小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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