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현실: 2000년대 이후

지편서정: 지구의 편에 서기 위한 정치 <제12화>

by 완서담필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은 어떻게 제도화되어 왔을까. ‘지편서정’ 제12화에서는 제도적 장치는 확대되었지만, 그 실효성은 여전히 불확실했던 2000년대 이후를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2002년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다시 한 번 지구정상회의(Earth Summit)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는 1992년 리우 회의에서 채택된 ‘의제 21’과 2000년에 채택된 ‘새천년 개발목표’(MDGs)의 중요성이 재확인되었다. 그러나 요하네스버그 회의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많은 환경 단체들은 요하네스버그 회의는 환경적 지속 가능성보다는 개발에 무게를 두었으며, 경제 성장을 중시하는 산업계의 논리가 회의장을 지배했다고 비판했다.


2005년에는 기후변화협약에 따른 ‘교토의정서’가 발효되어, 비준국들을 중심으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본격적인 노력이 시작되었다. 2006년에는 기후변화의 경제적 비용을 분석한 ‘스턴 보고서(Stern Review)’가 발표되었다. 이 보고서는, 아무런 대책 없이 지구온난화가 계속될 경우 세계 GDP의 5~20%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할 수 있지만, 이를 예방하는 데에는 GDP의 약 1% 수준의 비용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를 통해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합리적이라는 사실이 부각되었다. 2008년 리먼 쇼크로 인한 세계적인 경제 침체 속에서 ‘그린 뉴딜(Green New Deal)’이라는 용어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환경 관련 투자를 통한 경제 성장이라는 ‘녹색경제(green economy)’ 개념은 공공 담론의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2011년 3월 11일,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했고,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는 원자로 압력용기와 건물의 파손으로 인해 방사성 물질이 대량 유출되는 대형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 이후 일본에서는 원자력에 의존해온 에너지 정책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졌고,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전 세계적으로도 탈원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독일 정부는 자국의 노후 원전에 대한 수명 연장 방침을 철회하고, 탈원전 정책을 다시 확인했다. 이 사고를 계기로, 환경과 생태 가치를 중심에 두는 정당인 녹색당이 일본과 한국에서도 결성되었다.


2012년 6월에는 다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지구정상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는 1992년 리우 회의로부터 20주년을 맞은 해였기 때문에, ‘리우+20(Rio+20)’이라 불렸다. 회의에서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녹색경제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졌으며, 저탄소 및 에너지 절약 기술의 혁신을 통해 지구환경 문제의 해결과 경제 성장을 동시에 달성하겠다는 방침이 제시되었다. 또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전 세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공통의 계획이 필요하다는 데에도 합의가 이뤄졌고, 이를 위한 실질적인 작업이 유엔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2015년 9월에는 빈곤, 기아, 건강, 교육, 젠더, 위생, 경제 성장, 고용, 환경적 지속 가능성 등 17개 목표와 169개 세부 목표로 구성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가 유엔에서 채택되었다. 같은 해 11월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가 열렸고,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새로운 국제적 틀로서 ‘파리협정(Paris Agreement)’이 채택되었다. 파리협정에는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을 2℃ 이내로 억제한다는 목표가 명시되었으며, 개발도상국을 포함한 모든 당사국이 온실가스 감축의 의무를 지게 되었다. 다만, 교토의정서와 같은 강제적 감축 의무 조항은 파리협정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2001년 1월, 환경청이 환경성으로 승격되었다. 2002년에는 도쿄전력의 원전 사고 은폐가 드러나면서 비판 여론이 거세졌고, 사용후 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해 재활용하는 ‘플루서멀 계획’의 조기 실행도 철회되었다. 2005년 12월에는 대기오염방지법 시행령이 개정되어, 석면의 비산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가 강화되었고, 2009년 7월에는 미나마타병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되어, 미인정 환자에 대한 공식 인정과 일시금 지급이 가능해졌다. 2010년 10월에는 나고야에서 생물다양성협약 제10차 당사국총회(COP10)가 열렸고, 이 회의에서는 유전자 자원에 대한 공정한 접근과 이익의 공유를 다룬 ‘나고야의정서’가 채택되었다.


2011년 3월, 앞서 언급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서 국가 에너지 정책의 전환을 요구하는 여론과 시민운동이 급속히 확대되었고, 당시 민주당 정부는 ‘토론형 여론조사’라는 국민적 숙의 과정을 거쳐 탈원전 로드맵을 수립했다. 그러나 직후 치러진 총선에서 정권이 자민당으로 교체되면서, 이 탈원전 계획은 사실상 백지화되었다. 한편, 2014년 4월에는 교토의정서 제1차 공약기간(2008-2012년)에 대한 일본의 온실가스 감축 실적이 공표되었다. 정부의 확정 통계에 따르면, 2012년도 일본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1990년 대비 1.4% 증가했으나, 산림흡수 효과와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한 에너지 효율 사업 지원 등의 탄력적 조치를 포함할 경우 8.4% 감축된 것으로 집계되었다. 일본 정부가 설정한 6% 감축 목표는 가까스로 달성된 셈이지만, 이후 일본은 교토의정서의 연장에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며,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국제 체제 구축에 참여하게 되었다.


2000년대 들어 한국에서도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본격적으로 정비되기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1998-2003) 시기인 2000년 9월, 대통령 직속 지속가능발전위원회가 출범했으며, 이는 1992년 리우회의에서 각국이 약속한 국가 차원의 종합계획 수립 이행의 일환이었다. 같은 시기 한국은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를 규제하는 CITES, 폐기물 해양투기를 금지한 런던협약, 기후변화협약, 유해 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을 다룬 바젤협약, 생물다양성 협약, 습지 보호를 위한 람사르협약 등 주요 국제 환경 협약에 잇따라 가입하면서, 국내 환경정책이 지구적 규범과 점차 보조를 맞추기 시작했다. 이어 노무현 정부(2003-2008) 시기인 2007년 8월에는 '지속가능발전기본법'이 제정되었고, 이에 따라 국가 지속가능발전위원회는 법률에 근거한 공식 위원회로 격상되었다. 이로써 제반 활동에 대한 법적 기반을 갖추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 갈등 조정 기능도 부여받았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지속가능발전은 점차 환경 보전을 경제 성장 못지않게 중요한 국가 과제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속가능발전 정책은 정권에 따라 그 해석과 방향이 달라지는 구조적 불안정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2008-2013)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국가 전략으로 내세우며, 4대강 사업과 원자력 발전 확대를 핵심 추진 과제로 설정했다. 4대강 사업은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전 구간을 준설하고 16개의 가동보와 2개의 댐을 건설하는 대규모 토목 사업이었다. 원자력 발전에 대해서는 2006년 기준 15.9%였던 원자력 발전 비중을 2030년까지 41%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도 제시되었다. 정부는 이 모든 정책을 기후변화 대응과 일자리 창출을 동시에 달성하려는 ‘녹색성장’ 전략의 일환으로 설명했지만,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은 이 정책들이 오히려 심각한 환경 파괴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4대강 사업의 경우, 유속 저하와 하천의 호수화, 녹조 발생, 생물다양성 감소 등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원자력 발전 확대에 대해서도, 높은 인구밀도와 좁은 국토라는 조건을 고려할 때 사고 발생 시 회복 불가능한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으며,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지연될 수 있다는 점 또한 중요한 문제로 지적되었다.


다음 글에서는, 1960년대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온 제도화의 흐름 속에서, 정치의 장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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