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물질주의 가치와 신사회운동

지편서정: 지구의 편에 서기 위한 정치 <제13화>

by 완서담필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생각이 시민권을 얻기까지, 정치의 지형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제13화에서는 그 변화의 한 축이 된 탈물질주의 가치의 대두와 신사회운동의 흐름에 주목해 봅니다.


브룬트란트 보고서로 상징되는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비전은, 가치관의 변화 속에서 형성되었다. 그 시작점은 1960년대를 전후해 서구 사회에 퍼지기 시작한 탈물질주의적 가치의 대두였다. 이 변화는 지금도 논쟁적이지만, 일반적으로는 물질주의적(materialist) 가치에서 탈물질주의적(post-materialist) 가치로의 전환으로 설명된다.


민주주의의 문화적 기반에 관한 연구로 널리 알려진 로널드 잉글하트에 따르면, 물질주의자는 경제 성장, 정치 권위, 질서, 안전 같은 가치를 중시하며, 어려운 과제를 완수하려는 강한 성취 동기를 지닌다. 반면, 이들은 이질적인 것이나 외국적인 것에 대해 비교적 비관용적인 태도를 보인다. 종교의 권위나 교리에 순응하는 경향이 있으며, 결혼의 주요 목적은 자손을 남기는 데 있다고 여긴다. 동성애에 대해서도 일반적으로 관용적이지 않다고 한다.


이에 비해 탈물질주의자는 정치 권위에 의존하기보다, 자기표현과 자발적 참여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이질적인 것이나 외국적인 것에도 관용적이며, 그것을 새로운 자극으로 받아들이려는 태도가 강하다. 탈물질주의자에게 중요한 것은 삶의 질이며, 그 만족 기준은 물질적 가치에만 근거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실현과 같은 주관적 기준이 더 크게 작용한다. 개인의 자기실현과 그를 위한 자유를 중시하는 이들은, 기존 종교에 대해서도 순응적이지 않으며, 출산 조절이나 동성애 같은 이슈에도 일반적으로 관용적인 태도를 보인다.


잉글하트에 따르면, 물질주의에서 탈물질주의로의 가치 전환은 전후 부흥기를 거친 서구의 선진국들뿐 아니라, 산업화를 통해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룬 신흥 국가들에서도 나타난다. 이들 지역에서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한 세대가 성인이 되면서, 탈물질주의적 가치관이 점차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들은 물질적 결핍이나 신변의 불안을 경험한 부모 세대와 달리, 비교적 안정되고 평화로운 환경에서 자라났다. 그 결과, 물질적 욕구보다 자기실현이나 삶의 질 같은 탈물질주의적 욕구를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된 것이다.


가치관의 지평에서 일어난 변화는 정치에도 깊은 흔적을 남겼다. 탈물질주의자는 물질주의적 가치를 기반으로 한 기존 정치에 더 이상 만족할 수 없었다. 기존 정치 시스템은 임금과 소득의 증가, 경제 성장, 군사력에 의한 안보 확보 등 물질주의적 목표에는 충실했지만, 인권, 환경, 정체성, 평화, 자기실현 같은 탈물질주의적 이슈에는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했다. 결국 탈물질주의적 요구는 기존 정치 시스템이라는 회로를 우회해, 새로운 사회운동이라는 경로를 통해 정치화되기 시작했다.


가치관의 변화는 사회운동의 성격에도 변화를 불러왔다. 사회운동이란, 다수가 사회의 특정 측면을 바꾸기 위해 조직적으로 행동하며, 그 과정에서 제도 밖의 수단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상호작용을 펼치는 행위를 말한다. 고전적 사회운동의 예로는 참정권과 정치적 자유의 확대를 요구한 민주화운동, 노동자의 권리와 사회적 지위 향상을 목표로 한 노동운동이 있다. 이러한 고전적 운동은 자유주의나 사회주의 같은 정치 이념에 기반한 계층・계급 중심의 조직적 동원을 특징으로 한다.


한편, 탈물질주의로의 가치 전환이 일기 시작한 1960년대 무렵부터, 선진 산업국을 중심으로 새로운 유형의 사회운동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새로운 운동은 탈물질주의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계층・계급을 초월한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알랭 투렌은 이러한 운동을 탈산업사회에 특징적인 현상으로 보고, ‘신사회운동(New Social Movement, NSM)’이라 명명했다. 정치사회학자 클라우스 오페에 따르면, 신사회운동은 특정 이데올로기에 의해 조직되기보다는 이슈 중심으로 생겨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조직 구조 역시 유동적이고 개방적인 성격을 띤다.


일반적으로 신사회운동의 주요 지지층은 고학력이며 경제적으로도 여유 있는 계층이다. 학생, 주부, 연금 수급자, 실업자처럼 노동시장 주변부에서 탈상품화된 집단이나, 자영업자, 농민, 장인 같은 일부 구(舊) 중간층 또한 신사회운동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지지층의 구성을 보더라도, 신사회운동은 계급 간 대립을 전제로 한 운동이라기보다, 계급을 초월한 이슈 중심의 운동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오염된 환경 속에서 건강하게 살 수는 없다. 환경운동은 이런 계급적 이해관계의 경계를 넘어서 등장하며, 반핵, 평화, 젠더, 정체성과 같은 이슈들 역시 그러하다.


이러한 변화는 일본도 예외가 아니었다. 내각부 조사에 따르면, 1980년 전후를 기점으로 일본에서도 물질적 풍요보다 마음의 풍요를 중시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흐름은 현재까지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편, 지역 주민, 변호사, 대학 연구자 등 다양한 주체가 연대해 펼친 공해 반대 운동은 일본판 신사회운동의 싹으로 볼 수 있다. 이 운동은 1980년대의 생활 정치 운동으로 이어졌으며, 즈시시 이케고 숲 보호운동, 생활클럽생협의 지역정당운동, 다양한 환경운동, 주민자치형 마을 만들기 운동 등이 그 예에 해당한다. 이러한 흐름은 모두 신사회운동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탈물질주의적 가치관으로의 전환이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1990년대 말 금융위기 이후 심화된 경제 불안정, 구조 조정, 실질 소득 감소, 고용 불안, 교육비 부담 증가는 여전히 물질주의적 가치를 유지시키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장기간 지속된 분단체제의 안보 위기에서 비롯된 특유의 위기 의식 또한, 물질주의적 태도가 지속되는 또 하나의 배경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말 민주화 이후 한국에서도 환경운동과 같은 신사회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으며, ‘생활 정치’라는 말 역시 이제 정치권에서 낯설지 않게 쓰이고 있다. 이는 앞서 제11화제12화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민주화 이후 공론장에서 환경 의제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정책화와 제도화를 거쳐 제도권 정치와 접속하기 시작한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이처럼 가치관의 변화와 신사회운동은 생태적 상상력을 정치의 세계로 밀어올리는 통로가 되었고, 이러한 흐름은 국제적 차원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이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자리잡는 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렇게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생각은, 점차 세계적으로 시대를 상징하는 키워드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어떻게 정당정치의 지형 변화로 이어졌는지, 특히 환경과 생태 가치를 우선시하는 정당의 등장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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