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정치의 부상과 선거 지형의 재편

지편서정: 지구의 편에 서기 위한 정치 <제14화>

by 완서담필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생각이 시민권을 얻기까지, 정치의 지형은 어떻게 바뀌어 왔을까. 제14화에서는 그 변화의 또 하나의 축이었던 생태 및 환경 이슈의 정치화라는 현상에 주목해 봅니다.


기성 정당은 앞서 살펴본 새로운 가치관이나 사회운동의 정치적 수용체가 되지 못했다. 좌파든 우파든, 기성 정당은 물질적 가치, 특히 경제의 양적 성장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존 포릿이 지적했듯, 탈물질주의자들의 눈에 비친 산업사회에서의 좌파, 우파, 중도파는 마치 3차선 도로의 서로 다른 차선 위를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차와도 같았다. 이에 반해, 탈물질주의자들은 산업사회가 추구하는 물질주의적 가치와는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한 새로운 길을 찾고 있었다.


이러한 새로운 정치적 요구에 응답하며 등장한 주체가 바로, 세계 곳곳에서 일반적으로 ‘그린 파티(Green Party)’로 불리는 녹색당이었다. 녹색당은 경제 성장을 넘어 생태적 지속가능성에 더 큰 가치를 두는 정당이다. 이러한 점에서 녹색당은 기존의 좌파 정당이나 우파 정당과는 분명히 구별되었다. 녹색당 지지자들의 눈에 비친 기성 정당은, 생산 확대에 의한 경제 성장을 제1의 목표로 삼는다는 점에서 모두 같은 부류였다. 또한 중앙집권, 관료제, 거대 과학으로 구성된 산업주의 체제를 아무런 의문 없이 선험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서도, 좌우 정당 사이에 본질적 차이는 없었다. “우리는 좌도 우도 아닌, 앞을 향해 나아간다”는 녹색당의 슬로건은, 그들의 이러한 입장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게다가 녹색당은 기성 정당과 달리, 의회 안의 정치 활동보다 의회 밖의 사회운동을 더 중시했다. 정당으로서 권력을 획득하는 것을 목표로 하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회운동의 목표를 정치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었지, 정치 활동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 당 운영 방식에서도 풀뿌리 민주주의 원리를 철저히 따랐다. 지역조직의 토론을 통해 당의 방침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세계 각국의 녹색당들 사이에는 차이는 있어도 공통된 특징이 발견된다. 부의 공정한 분배뿐 아니라, 환경 파괴나 재난 같은 위험이 누구에게 돌아가는가를 묻는 정의의 감각, 다양성의 존중, 비폭력과 평화는 녹색당이 내세운 핵심 원칙이었다. 그런 점에서 녹색당은 스스로를 ‘반(反)정당의 정당(anti-party party)’이라 부르기도 했다.


세계 최초의 녹색당은 1972년, 오스트레일리아 태즈메이니아주에서 결성되었다. 그 뒤로 세계 곳곳에서 녹색당이 등장하며 기성 정치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2016년 기준, 녹색당은 90여 개국에서 활동 중이며, 그 정치적 존재감도 점차 확대되었다. 국회 의석 수만 보더라도, 유럽 각국 20석, 유럽의회 46석, 오스트레일리아 10석, 뉴질랜드 14석, 브라질 11석, 캐나다 2석 등 총 296석에 이른다. 이들의 지지 기반은 대체로 신사회운동의 참여자들과 겹친다.


전 세계 녹색당 가운데, 가장 주목받고 제도권에 안정적으로 정착한 사례 중 하나가 바로 독일의 녹색당이다. 1977년 서독에서는 지방의회 선거를 위한 후보자 연합으로 ‘녹색 리스트’가 결성되었고, 그 활동 목표는 핵무기 배치와 원자력 발전소 건설 반대였다. 좌우를 막론하고 기성 정당들이 모두 찬성 입장이었던 반면, 녹색 정치세력은 내부의 이념적 대립으로 분열되었고, 선거에서는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1979년 3월, ‘기타 정치 단체 녹색당’이 결성되었고, 같은 해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득표율 3.2%, 약 100만 표를 얻으며 선거보조금을 받게 되었다. 이어 10월 브레멘 시의회 선거에서는 ‘브레멘 녹색 리스트’가 5% 이상을 득표하며 4석을 확보했다. 이를 계기로 1980년 1월 전국 단위의 녹색당이 출범했고, 1983년 연방의회 선거에서는 5.6%의 득표율로 27석을 얻었다. 전후 독일에서 새로운 정당이 연방의회에 진입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1993년 동서독 통일 이후, 서독의 ‘녹색당’은 동독의 ‘동맹 90’과 통합되어 ‘동맹 90·녹색당’(이하 ‘녹색당’)이 되었다. 녹색당은 1990년 선거에서 42석 전부를 잃는 실패를 겪기도 했지만, 이후에는 평균 약 7%의 득표율로 50석 내외를 유지하고 있다. 1998년 선거에서는 6.7%를 득표해 47석을 얻었고, 제1당인 사회민주당과 함께 연립 정부를 구성하게 되었다.


독일 녹색당의 정치적 성공은, 무엇보다 원리주의에서 현실주의로의 노선 전환 덕분인 면이 크다. 1990년 선거의 실패를 계기로 당 내부에서는 원리파와 현실파 간의 갈등이 격화되었다. 원리파는 녹색당이 어디까지나 반정당의 정당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정치는 전문 정치인의 일이 아니라, 아마추어 시민 활동가들의 것이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의원과 당직자의 겸직은 금지되었고, 의원직도 임기 중 다른 당원과 교체되어야 했다. 당의 의사결정 역시 풀뿌리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기층 조직의 토론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이 강조되었다. 타 정당과의 타협이나 연립정부 참여도, 당의 이념을 후퇴시킬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허용되지 않았다. 반면 현실파는, 이러한 원리주의적 사고방식이 오히려 정당 활동의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했다. 1990년 총선의 패배는 현실파의 입지를 강화시켰고, 내부 노선 갈등 끝에 이들이 당의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이후 앞서 살펴본 1998년 총선에서 녹색당은 성공적으로 정치 무대에 복귀했고, 그 결과, 거대 기성 정당 중 하나인 온건 좌파 성향의 사회민주당과 연립 정권—이른바 '적녹 연정'—을 구성하게 되었다.


적녹 연립정권 아래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과 관련된 정책은 눈에 띄는 진전을 이루었다. 2002년에는 원자력법이 개정되어, 2022년까지 탈원전을 완료하기로 결정되었다. 또한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를 일정 기간 고정 가격에 매입하도록 기업에 의무화하는 제도와, 온실가스 배출에 세금을 부과해 감축을 유도하는 제도도 도입되었다. 이러한 정책 변화는 환경 보호와 경제 발전의 양립이라는 지속 가능한 발전의 이상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특히 원자력에 의존하지 않는 방식으로 기후 위기에 대응하겠다는 독일 정부의 방침은, 원자력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국제적 흐름 속에서 볼 때, 상당히 급진적인 선택이었다.


한편, 영국이나 미국처럼 양당제의 전통이 강한 나라에서는, 녹색당과 같은 제3의 신생 정당이 의석을 얻기가 쉽지 않다. 여기에 선거 제도 역시 큰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단순 다수제로 1명의 후보만 당선되는 소선거구제보다는,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의석이 배분되는 비례대표제가 소수파 정당에게는 훨씬 유리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당 간 경쟁 구조이다. 예를 들어, 원전이나 환경 문제에 대한 유권자의 관심이 높은데도 기성 정당들이 이 이슈에 둔감할 경우, 녹색당에게는 정치적 기회가 열린다. 실제로 1980년대 독일에서는 지방 차원에서 반원전 운동이 확산되었지만, 온건 좌파인 사회민주당조차 원전 추진을 지지했다. 이때 실망한 유권자들의 표가, 탈원전을 전면에 내세운 녹색당으로 이동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후 기성 정당들도 환경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면서, 이제 환경 문제는 더 이상 녹색당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녹색당의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약화될 수 있다. 게다가 선거 국면에서는 환경보다 경제 성장이나 고용 같은 이슈에 대중의 관심이 더 쏠리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구조적 조건들은, 탈물질주의적 가치를 중시하는 녹색당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일본에서도 2012년 7월, 전국 단위의 녹색당이 창당되었다. 일본 녹색당은 두 흐름의 계승 위에 세워졌다. 하나는 1998년 결성된 지방의원 네트워크 ‘무지개와 초록의 500인 리스트’, 다른 하나는 전 참의원 의원 나카무라 아쓰오가 대표를 맡았던 ‘녹색 회의’이다. 이들은 2008년 ‘미도리노 미라이(녹색의 미래)’로 통합되었고,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이를 바탕으로 ‘그린 재팬’이 결성되었다. 그러나 2013년 참의원 선거에서 녹색당은 득표율 0.86%(약 46만 표)에 그치며, 기대되던 2% 득표율을 넘지 못했다. 환경 이슈에 대한 정치적 대표성은 현재까지도 기존 정당들이 일정 부분 대변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녹색당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충격 속에서 출발했다. 그해부터 환경·시민 단체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창당 준비가 시작되었고, 10월 발기인 대회를 거쳐 2012년 3월 4일 정식 창당되었다. 같은 해 총선에서 녹색당은 당원들과의 논의를 통해 탈원전, 농업 재생, 생명 다양성 보호, 경쟁 사회 탈피, 소수자 권리 옹호라는 다섯 가지 공약을 제시했다. 특히 고리 원전이 있는 부산과 신규 원전 후보지인 영덕의 소선거구에 후보를 출마시키고, 탈원전·유기농·동물 보호 분야의 활동가들을 비례대표로 공천하며 관련 법안도 발표하는 등 탈원전 이슈 확산에 주력했다. 그러나 한국 녹색당은 전국 득표율 0.48%(약 10만 표)로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이처럼 탈물질주의와 생태・환경에 관한 이슈가 세계적으로 정치화되면서, 기존의 정당 정치와 선거 지형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탈물질주의적 가치관이 정치적 영향력을 갖기 전까지는, 정치는 주로 좌우 스펙트럼을 기준으로 구성되었고, 정치 현상에 대한 설명 역시 이 좌우 구도를 전제로 이루어졌다. 일반적으로 좌파는 시장에 대한 규제를 지지하고, 부의 재분배와 평등, 연대의 가치를 중시한다. 반면 우파는 정부나 노동조합의 시장 개입을 경계하며, 자유경쟁과 규제 완화, 자기 책임의 가치를 강조한다. 이러한 구분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현대 정치의 기본적인 대립 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생태・환경 이슈가 정치화되면서 기존의 좌우 구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환경정치학자 닐 카터가 제시한 아래의 도표는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준다.


지편서정14화.jpg N. Cater, 2007, The Politics of the Environment, Cambrige University Press, p. 78의 도표를 바탕으로 재구성.


닐 카터는 오늘날의 정치 지형이 단순한 좌파-우파의 구도로 설명되기 어려우며, 기존의 이념 축(X축)에 더해, 생태적 가치에 대한 수용 여부와 그 강도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축(Y축)이 필요하다고 본다. Y축의 한쪽 끝에는 ‘기술중심주의(technocentrism)’가 위치한다. 기술중심주의는 “끝없는 경제 성장과 물질적 풍요의 추구는 가능하다”는 세계관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생태적 문제 역시 인간의 기술력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폭넓은 시민 참여보다는 전문가 중심의 정책 결정이 더 효과적이라고 여겨지며, 자연환경과 천연자원도 인간의 복지를 위한 수단으로 간주된다. 다시 말해, 자연은 고유한 가치를 지닌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필요에 따라 활용될 수 있는 자산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이에 반해, Y축의 또 다른 극인 ‘생태중심주의(ecocentrism)’는 기술중심주의와 정반대의 관점을 제시한다. 생태중심주의자들은 지구 생태계에 물리적・생물학적 한계가 분명히 존재하며, 이 한계를 넘어서는 경제 성장은 지속될 수 없다고 본다. 따라서 진정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이란, 자원 소비의 총량을 줄이고, 생태계의 허용 범위 내에서 경제를 운영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단순히 도덕적 선택이 아니라, 오히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가장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선택이라는 것이다. 생태중심주의자들은 생태계의 복잡성과 상호의존성에 대해 깊은 경외심을 품고 있으며, 인간의 기술적 개입이 의도치 않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음을 경계한다. 이들에게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생태적 공동체 안에서 다른 생명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동등한 존재일 뿐이다.


이러한 두 축의 교차는, 기존의 좌우 이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정치적 지형을 드러낸다. 예컨대 위의 도표의 A나 B 지점에 해당하는 정당은, 우파일 뿐만 아니라 기술중심주의에 입각해 경제성장을 지상 과제로 삼는 정당이다. C나 D와 같은 좌파 정당 역시, 이념상으로는 우파와 반대편에 위치하지만, 생산력 증대와 물질적 성장이라는 목표를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우파 정당인 B나 A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가운데, 도표 하단의 점선으로 구분된 영역은 생태・환경 문제를 정치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한 ‘녹색 정치’의 공간을 가리킨다. 하지만 이 범주 역시 단일하지 않다. 예컨대 정당 E와 정당 F 모두 녹색 정치에 속하지만, 정당 F는 E보다 더 급진적인 생태중심주의 노선을 지향하며, 보다 강력한 환경 규제를 통해 시장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같은 녹색 정치 내에서도 생태적 가치의 강도와 경제에 대한 입장 차이가 존재한다.


이러한 정치 지형의 변화는 1960년대 이후 탈물질주의 가치관이 확산되고, 신사회운동이 활발해지며, 녹색당이 등장한 흐름과 깊이 맞물려 있다.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정치적 비전 역시, 그와 같은 시대적 전환 속에서 태동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바탕으로, 다음 글부터는 브룬트란트 보고서가 제안한 주요 정책 방향들을 주제별로 나누어 하나씩 확인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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