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편서정: 지구의 편에 서기 위한 정치 <제15화>
그렇다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은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길 위에서 과연 얼마나 멀리 와 있는 것일까. 지편서정 제15화에서는 1987년 브룬트란트 위원회가 권고한 정책 방향 가운데, 인구・식량・생물다양성에 관한 내용을 살펴봅니다.
1987년에 발표된 브룬트란트 보고서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방향의 정책 전환이 필요한지를 제시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그 가운데 인구, 식량, 생물다양성에 관한 논점을 원문 그대로 요약해 보고자 한다. 발표된 지 거의 40년이 흘렀지만, 이 보고서는 여전히 많은 시사점을 품고 있다. 우리 지구촌의 주민들은 그동안 과연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외면해 왔을까.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인구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제약하는 요인이 된다. 생태학적으로 보자면 인구 증가란, 유한한 자원과 생태계에 가해지는 부담이 더욱 커지는 것을 뜻한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경우, 경제성장의 혜택이 인구 증가로 상쇄되어 생활수준의 향상이 뒤따르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인구 증가 억제가 필요하다.
수입과 고용, 사회보장 측면에서 불안정한 사회일수록, 사람들은 노동력을 확보하고 노후에 대비하기 위해 더 많은 자녀를 원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반면, 경제성장의 혜택이 사회 전반에 고루 퍼진 사회에서는 출산율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또한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와 가정 밖에서 일할 기회가 많아질수록 출산율은 감소한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면 가계의 경제 상황도 개선되고, 빈곤·다산·인구증가·빈곤이라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러한 정책과 병행하여 가족계획이 시행된다면, 개발도상국의 인구 증가 속도는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인구 문제는 단순히 ‘수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잠재력 향상이라는 문제이기도 하다. 인간의 잠재력은 교육을 통해 향상시킬 수 있다. 빈곤을 극복하는 능력, 자원 단위당 산출을 극대화하는 능력은 인구 밀도가 높은 사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수적인 역량이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인구 정책은, 단지 인구 증가를 억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잠재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교육 정책을 포함해야 한다. 창의성과 생산성이라는 관점에서 인간의 잠재력이 향상된다면, 지속 가능한 발전은 더욱 진전될 수 있을 것이다.
개발이 토착민 사회를 파괴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일도 인구 정책의 중요한 요소다. 개발이 진행되면 원주민 사회는 쉽게 파괴된다. 극단적인 경우, 그들은 개발 대상이 되어 전통적인 생활방식과 관습을 잃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은 해당 지역의 복잡한 생태계에 적응하고 그것을 지속 가능하게 이용·관리하는 과정에서 축적된 지혜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만큼 이를 잃는 일은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인구 정책의 이러한 측면에도 반드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식량 안보는 인간의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그러나 여전히 세계에는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하는 사람이 7억 명 이상 존재한다. 부족한 것은 농업 자원이나 기술이 아니라, 적절한 정책이다. 식량 안보를 위해서는, 식량이 부족한 지역에서 필요한 식량을 자급할 수 있도록 정책을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식량 생산량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농업이 의존하고 있는 생태학적 기반을 유지하기 위한 대책도 병행되어야 한다.
오늘날의 식량 문제는 곡물 생산량 자체보다 농업 및 무역 정책에 더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선진 산업국가의 정부는 보조금과 농산물 가격 유지를 통해 자국 농민을 보호하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 과잉 생산된 농산물은 국제 시장에 유입되어 가격을 하락시키고, 그 결과 개발도상국의 농업은 더욱 어려운 처지에 내몰린다. 뿐만 아니라, 선진국이든 개발도상국이든 기존의 농업 정책은 식량 생산 확대에만 집중해 왔다. 그 결과, 선진국에서는 농약과 화학비료의 대량 사용이 일상화되었고, 개발도상국에서는 경작지를 넓히기 위한 산림 파괴가 가속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환경오염, 산림 파괴, 토양 유실이 발생하고, 농업의 생태 기반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이런 방식의 농업은 지속 가능하다고 보기 어렵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생산량 증대만이 아니라, 농업의 생태 기반 자체를 보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의 개입은 불가피하다. 다만 그 개입은 생태 기반 보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예컨대, 시장 가격이나 보조금, 세제 등의 경제적 수단은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는 농법을 보급하는 데 활용되어야 한다. 또한 토지 이용에 있어서도 집약적 재배 지역, 보전 지역, 복원 지역 등으로 구획을 설정하고, 토지의 생산력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유지해야 한다. 수자원의 적절한 관리, 화학약품을 대체할 수 있는 유기질 비료 개발, 산림 보호와 재조림, 양식업 확대 등도 농업 자원의 기반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정책이다.
더불어, 공정성 확보도 중요하다. 대규모 농가에만 혜택이 돌아가는 토지 제도는 개혁되어야 하며, 자급자족 농민이나 유목민, 전통적인 방식으로 농업을 영위해온 사람들의 권리는 존중받아야 한다. 물론 전통적 생활양식이 자원의 기반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일정한 규제가 불가피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규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존재할 때에만 정당화될 수 있다.
선진국이든 개발도상국이든, 농촌 지역에는 통합적인 발전 정책이 필요하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경우, 전통기술과 현대기술을 적절히 결합하면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면서 생산력을 높일 수 있다. 석유계 농업 자재나 화학비료, 농약은 유기물로 대체하고, 소규모 풍력발전, 바이오가스, 태양열 같은 재생 가능 에너지를 도입하면 비용을 절감하고 농업의 지속 가능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또한 농업과 함께 소규모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이 병행하여 발전한다면, 농촌 지역의 고용 안정과 수입 다변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종(種)의 보존은 단지 경제적 이유로만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다. 미적, 윤리적, 문화적, 과학적 고려만으로도 보존의 타당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경제적 타산을 요구하는 이들에게조차, 종이 지닌 유전적 자원에 내재된 경제적 가치만으로도 보존은 정당화되기에 충분하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인간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가 식량, 의약품, 공업 원료 등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생물다양성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요는 앞으로도 더 높아질 것이다.
예컨대, 멕시코의 숲에서 발견된 옥수수 원종을 상업 품종과 교배하면 스스로 자라는 새로운 옥수수를 만들 수 있다. 이 품종이 보급되면 재배와 파종에 드는 수고와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야생종은 의학과 공업에도 기여한다. 많은 처방약이 야생식물에서 유래하며, 고무, 기름, 수지, 염료, 살충제 등도 그 원료는 야생식물이다. 이들이 보유한 유전자만으로도 매년 수십억 달러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다.
생물다양성을 유지하려면 기후, 하천, 토양, 번식지 등 생태계 전체를 보호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활동은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으며, 수많은 종들이 멸종 위기에 놓여 있다. 지구 육지 면적의 약 6%를 차지하는 열대우림 지역은 유전자 다양성이 가장 풍부한 지역이다. 지구상의 생물종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 서식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개발 사업으로 인해 열대우림은 빠르게 파괴되고 있으며, 만약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극히 일부만 남게 된다면, 식물종의 66%, 조류의 69%가 사라질 위험이 있다. 더불어, 지구 온난화는 이 멸종 속도를 더욱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진행 중인 생물다양성의 상실은 대부분 인간의 활동에 기인한다. 열대우림의 대부분은 개발도상국에 위치해 있으며, 그 국가의 정부들은 벌목권 수수료, 지대, 세금 수입을 늘리기 위해 벌목을 장려하고 있다. 오랜 기간 생산림을 임대받은 목재 회사들은 숲의 재생보다 이윤 추구를 우선하며, 그 과정에서 생태계는 파괴된다. 일부 정부는 열대우림을 방목지로 개발하도록 장려하며,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제공하기도 한다. 선진국에도 책임이 있다. 경제성을 이유로 개발도상국에서 가공되지 않은 원목을 대량으로 수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여러 요인이 겹쳐 열대우림의 파괴는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생물다양성과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개발의 방식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생태계 파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개발로 인한 편익보다 크며, 개발은 이러한 사회적 손실을 방지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열대우림은 지구상에서 생물자원이 가장 풍부한 곳이지만, 해당 국가들은 생태계 보전에 필요한 자금, 과학기술, 제도적 노하우가 부족하다. 선진국들은 이러한 국가들과 협력해야 한다. 생물다양성과 생태계는 인류 전체의 공유 자산일 뿐 아니라, 선진국들은 이미 이 공동 자산을 활용하여 막대한 이익을 누려왔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는 브룬트란트 보고서가 제시한 에너지, 공업, 도시에 관한 주요 권고 내용을 정리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