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편서정: 지구의 편에 서기 위한 정치 <제16화>
그렇다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은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길 위에서 과연 얼마나 멀리 와 있는 것일까. 이번 지편서정 제16화에서는 1987년 브룬트란트 위원회가 제시한 권고 가운데, 에너지·공업·도시에 관한 정책 방향을 원문에 충실하게 요약해 봅니다.
말할 것도 없이, 에너지는 지속 가능한 발전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에너지원에는 천연가스, 석유, 석탄처럼 재생이 불가능한 것과, 풍력, 태양광, 바이오매스, 지열, 조력처럼 재생이 가능한 것이 있다. 이러한 에너지원은 각각 장점과 단점을 지닌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경제성뿐 아니라 효율성과 안전성 면에서 위험이 적은 에너지원이 선택되어야 한다.
산업혁명 이래 에너지의 주류를 차지해 온 것은 석탄, 석유, 천연가스와 같은 화석연료였다. 그러나 화석연료 사용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오염’ 문제다. 화석연료를 연소하면 이산화황, 질소산화물, 일산화탄소, 휘발성유기화합물 등 유해물질이 배출된다. 특히 황산화물, 질소산화물, 휘발성탄화수소는 대기 중에서 황산, 질산, 암모늄염, 오존으로 변해 비·구름·서리·안개·이슬의 형태로 지표에 내려온다. 이러한 산성 침전물은 토양과 수질을 산성화시키고, 숲의 고사나 어류 감소 등 심각한 피해를 초래한다. 이 오염물질들은 기류를 타고 멀리까지 확산되며, 피해는 국경을 넘어 광범위하게 퍼진다. 다른 하나는 ‘지구온난화’ 문제다. 화석연료는 연소 시 대량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대기 중에 과도하게 축적된 이산화탄소는 온실가스로 작용해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을 초래한다. 지구온난화는 기후 변화를 일으키고, 빙하 융해, 해수면 상승, 강수량 변화와 함께 지구라는 시스템 전체에 이상을 가져온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회복 불가능할 수 있다.
화석연료 사용의 위험을 피하려면 그 사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대책 중 하나로 주목받는 것이 원자력 발전이다. 그러나 원자력 발전에도 심각한 위험이 따른다. 원전의 핵연료는 핵무기 개발에 전용될 가능성이 있다. 명목상으로는 군사 이용과 평화 이용이 구분되어 있지만, 핵연료 주기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국가에 이 구분은 큰 의미가 없다. 또한 원전의 운전 비용이 다른 발전 방식보다 싸다고 하지만,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 없다. 부지 선정에서 건설까지의 기간과 비용, 연료비, 유지비, 안전 대책 비용, 핵폐기물 처리비, 사고 처리비, 원자로 해체비 등을 모두 포함하면, 원자력은 결코 값싼 에너지가 아니다. 확률은 낮더라도 원전 사고에 따른 방사능 오염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인류는 이미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와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경험한 바 있다. 무엇보다 사용후 핵연료 등 극도로 유해한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은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
이러한 위험 때문에 화석연료와 핵에너지는 지속 가능한 발전에 적합한 에너지라 할 수 없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에너지 전략에서는 재생 가능 에너지와 에너지 절약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론적으로 세계의 에너지 수요는 재생 가능 에너지만으로도 충당 가능하다. 정부는 재생 가능 에너지 개발과 보급에 우선적으로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물론 재생 가능 에너지 사용에도 위험은 있다. 예를 들어 풍력 발전에 따른 소음, 경관 훼손, 야생조류 피해 등이 그렇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은 화석연료나 원자력 사용에 따른 위험만큼 심각하지 않다. 에너지 절약 대책도 중요하다. 신규 발전소 건설보다 철저한 절약 대책이 비용 대비 효과 면에서 훨씬 경제적이다.
에너지 소비 패턴과 관련해 두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고(高) 에너지 사회’ 시나리오다. 고에너지 사회에서는 에너지 소비가 연평균 약 4.1%씩 증가하며, 에너지 설비 투자 부담이 두 배로 늘어난다. 당연히 고에너지 사회에서는 대기오염과 지구온난화 같은 환경문제가 악화되고 건강상의 위험도 커진다. 다른 하나는 ‘저(低) 에너지 사회’ 시나리오다. 저에너지 사회에서는 에너지 효율 향상을 위한 기술혁신과 산업구조 조정이 이루어져, 더 적은 에너지로 필요한 생산을 달성할 수 있게 된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선진 공업국은 에너지 절약 대책만으로 1차에너지(전력이나 도시 가스, 가솔린 등으로 전환・가공되기 전의 에너지) 소비를 50% 이상 줄일 수 있으며, 그만큼 개발도상국은 빈곤 극복을 위한 경제성장에 필요한 에너지 소비를 약 30% 늘릴 수 있다.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저에너지 사회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필요한 기술은 이미 갖추어져 있다. 정치적 의지만 있으면, 지속 가능한 에너지 사회로의 전환은 충분히 가능하다.
산업혁명 이래 공업은 인류의 기본적 필요를 충족하는 데 크게 기여해 왔다. 선진국이든 개발도상국이든 우리의 생활은 다양한 공업 제품에 의해 뒷받침된다. 농업조차도 공업이 생산한 화학제품과 기계에 의존한다. 선진 공업국에서 나타나는 탈공업화 현상 역시 공업화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공업은 공해의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선진 공업국에서는 오염 방지 대책이 시행되어 공업에 의한 환경오염이 개선되었지만, 공해의 메커니즘은 더욱 복잡해졌으며, 오염의 범위와 영향도 국경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1970년대까지는 “오염 방지를 위한 규제는 기업 경쟁력을 저하시켜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바뀌었다. 선진 공업국의 사례가 보여주듯, 환경 규제는 오히려 기술 혁신을 촉진하고, 새로운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산업과 고용이 창출되며, 기술 혁신을 이룬 기업은 국내외에서 강한 경쟁력을 갖게 된다. 여기에 오염 방지를 통해 얻어지는 건강·환경상의 편익까지 더하면, 예방적 환경 대책의 경제적 가치는 더욱 커진다.
앞으로의 공업은 ‘지속 가능한 공업’으로 거듭나야 한다. 지속 가능한 공업이란 자원 소비에서 효율성이 높고, 재생 불가능한 자원 대신 재생 가능한 자원을 사용하며, 폐기물 배출과 건강·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이 적은 공업을 말한다. 이를 위해 정부와 산업계 모두 변화해야 한다. 특히 다음과 같은 과제를 시급히 해결할 필요가 있다.
대기오염, 수질오염, 폐기물 관리, 건강, 안전, 에너지 효율, 자원 효율, 유해물질 등에 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기준 설정에서는 중앙정부보다 엄격한 기준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지방정부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국경을 넘는 오염 방지와 그 피해에 대한 배상·보상 책임을 국제적으로 제도화해야 한다.
‘오염자 부담 원칙(Polluter Pays Principle, PPP)’을 확산시켜야 한다. 오염 비용을 오염자에게 부담시키면, 기업은 오염을 피하려 하고 예방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다. 가격에 환경 가치를 반영하거나, 세금 등 경제적 수단을 도입하는 것도 오염 방지에 효과적이다. 이러한 대책은 자원 재활용과 효율성 향상에도 기여한다.
환경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업에는 반드시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해야 한다. 환경영향평가는 거시경제, 재정, 부문별 정책 단계에서 폭넓게 수행되어야 한다. 제도 기반이 취약한 개발도상국에서는 전문가 양성과 객관적 평가체계 정비가 필요하며, 독립적이고 국제적인 평가기관 설립도 중요한 과제다.
산업계의 자발적 노력과 이를 촉진하는 인센티브 도입도 중요하다. 산업계는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고, 환경 파괴 예방과 위험 대응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산업단체와 노동조합 역시 자원·환경 관리계획을 수립해야 하며, 환경 관리 능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책도 필요하다.
개발도상국에서는 고(高)오염형·자원의존형 산업 부문이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환경보호나 자원 관리에 필요한 재원과 역량은 부족하다. 이에 대해 현지에 진출한 기업이 책임을 져야 한다. 예를 들어, 글로벌 기업은 가장 엄격한 환경 기준을 적용하는 국가의 수준을, 다른 국가나 지역의 자사 공장에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
1987년 현재, 세계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도시에 거주한다. 농촌 지역에서도 공업과 서비스업이 발달해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도시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으며, 도시 문제 해결 없이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도시 문제는 심각하다. 이들 도시는 급증하는 인구에 대응할 능력이 부족하다. 깨끗한 물, 위생, 학교, 교통 등 시민 생활을 뒷받침하는 기본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져 있지 않다. 인구 집중으로 인한 과밀화는 슬럼 확산과 위생 악화를 초래하며, 비위생적 환경에 기인한 질병이 만연한다. 급성 호흡기 질환, 결핵, 장내 기생충, 설사, 간염, 장티푸스 등은 특히 아동 사망률을 높이는 주된 요인이다. 공장 밀집으로 인한 대기·수질·토양 오염 문제도 심각하다. 난개발로 농지와 교외 자연, 휴양지 등도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여기에 국제 경제 불안정으로 인한 실업과 소득 감소가 더해진다.
반면, 선진국의 도시는 인프라 노후화, 환경 악화, 도심 공동화, 지역사회 붕괴, 실업, 빈곤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과 노하우를 갖추고 있다. 쓰레기 수거 서비스가 운영되고, 환경 규제를 통해 대기오염이 개선되고 있다. 자동차 관련 대책으로 배출가스 규제, 무연휘발유 보급, 연비 개선 등이 도입되어 교통 공해도 완화되고 있다. 시민들은 도시계획 참여와 시민운동을 통해 정부에 문제 해결을 요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도시 문제 해결을 위해 다음과 같은 과제에 도전해야 한다.
개발도상국에서는 일부 대도시만 비정상적으로 성장하는데, 이는 지역 간 격차 확대를 의미하므로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정부는 공공 서비스와 인프라 정비에서 농촌보다 도시를 우선시하며, 이런 정책은 인구 집중을 가속한다. 이를 막기 위해 지방 활성화 정책이 필요하다.
개발도상국의 지방정부는 정치·행정·정책·재정 능력이 부족해 문제 해결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중앙정부로 권한이 집중되고, 지방의 역량은 더 약화된다. 지방정부 역량 강화를 통해 이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도시 문제 해결에는 지역 커뮤니티와의 협력이 중요하다. 소규모 사업자 대출, 구역 개선조합 조직 등 비공식 부문 활동을 지원하고, 주민과 함께 도시농업, 재활용 등을 추진해 슬럼의 쓰레기·위생·건강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 이는 새로운 일자리도 만든다. 이러한 대책을 시행할 때는 지역의 인적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문제는 개발도상국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이를 해결하려면 정책수단에 관한 지식과 정책을 설계·집행할 역량을 높여야 한다. 선진국의 경험과 노하우, 그리고 같은 문제를 겪는 개발도상국 간의 정보·경험 공유가 큰 도움이 된다.
다음 글에서는 브룬트란트 보고서의 해양, 우주 공간, 남극 대륙에 관한 정책 방향을 요약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