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싹과 그 옆의 무싹과 그 앞의 나

텃밭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런 텃밭 이야기 (2)

by 완서담필


비가 오락가락하는 사이에 무싹이 부쩍 자라 있었다. 연둣빛 새싹을 바라보니, 한동안 잊고 있던 기운이 몸속에 스며드는 듯하다.


씨앗들은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싹을 틔운다. 어떤 싹은 곧 무로 자라고, 어떤 싹은 작은 풀잎으로 머물며 흙에 생기를 돌려준다. 그렇게 서로를 살리고 이어가며, 이 자리를 푸르게 만든다.


삶도 그와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 각자의 자리와 역할은 달라도, 살아가는 순간마다 남기는 흔적이 있다. 그것이 온기를 띨지 냉기를 띨지는 알 수 없지만, 누군가의 뿌리와 줄기를 키우는 힘이 될지도 모른다.


곧 무싹을 하나씩만 남겨 놓고 솎아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라 이어짐이다. 잘려 나간 싹은 흙으로 돌아가 또 다른 생명을 돕고, 남겨진 싹은 햇살을 받아 더욱 크게 자란다.


인생 또한 그렇지 않을까. 텃밭이라고 하기엔 좀 그런 텃밭, 그 속에서 나와 무싹들은 큰 순환의 리듬에 함께 얽혀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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