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편서정: 지구의 편에 서기 위한 정치 <제28화>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국제적 대응은 1980년대 말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1988년, 유엔은 기후변화 문제를 국제정치의 의제로 다루었고, 1989년에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조약을 체결하기로 결정하였다. 1990년에는 정부간 협상위원회가 설치되어 조약의 내용에 관한 국제 교섭이 시작되었으며, 1992년 5월 「기후변화에 관한 기본협약」(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 이하 UNFCCC)이 채택되었다. 같은 해 6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유엔환경개발회의(리우 회의)에서 167개국 정부와 유럽공동체(EC) 대표가 협약에 서명하였다.
UNFCCC의 목적은 “기후체계에 대해 위험한 인위적 간섭을 초래하지 않는 수준에서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를 안정화하는 것”이었다. 당시 최대 배출국이었던 미국은 이 조약에 법적 구속력을 갖는 구체적 감축 목표를 명기하는 것에 반대하였다. 이 때문에 협약의 감축 목표는 “생태계가 기후변화에 자연스럽게 적응하고, 식량 생산이 위협받지 않으며, 경제발전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개별적으로 또는 공동으로 1990년 수준으로 되돌린다”는 표현에 머물렀다.
한편 UNFCCC는 예방원칙의 사고를 도입하였다. 협약에는 “심각하거나 회복 불가능한 손해의 우려가 있을 경우, 과학적 확실성이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이러한 예방조치를 미루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되었다. 이는 인과관계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기후변화 대책을 미루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동시에 “공통적이지만 차별적인 책임(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ies)” 원칙도 채택되었다. 이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가 기후변화에 책임을 져야 하지만, 특히 산업혁명 이래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해 온 선진 공업국이 앞장서서 기후 보호에 나설 책임과 의무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UNFCCC의 당사국들은 온실가스 배출 및 흡수원에 관한 목록을 작성해 보고해야 했다. 부속서 I에 분류된 당사국 및 지역(1992년 당시 OECD 가입 24개국, 유럽 시장경제 이행국, EC)은 기후변화를 완화하기 위한 대책을 강구할 의무가 부과되었다. 부속서 I 국가·지역이 보고한 배출량 정보는 당사국 총회에서 그 타당성이 검토되었다. 또한 부속서 II에 분류된 선진국(OECD 국가 및 EC)은 개발도상국에 대한 재정 지원과 기술 이전을 제공해야 했다.
각국의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가운데, 1997년 12월 교토에서 열린 제3차 당사국총회(COP3)에서 구체적인 감축 조치를 규정한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가 채택되었다. 선진 공업국들은 전체적으로 6종류의 온실가스(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 HFC, PFC, SF6)의 배출을 2008년부터 2012년까지의 5년간을 제1차 공약기간으로 하여 1990년 대비 최소 5% 감축하기로 하였다. 부속서 I 국가들은 각각 정합성 있는 감축 목표를 제시해야 했으며, 협상의 결과 EU는 8%, 미국은 7%, 일본은 6% 감축 등 국가·지역별 목표가 설정되었다.
당시 최대 배출국이었던 미국은 직접 규제보다는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하는 제도(유연성 메커니즘) 도입을 강하게 요구하였다. 최대 배출국이 참여하지 않으면 교토의정서 발효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사정도 있어, 당사국들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협상의 결과 일련의 유연성 메커니즘이 도입되었다. 선진국 간 혹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에 공동 프로젝트가 수행된 경우, 그에 따른 감축 효과는 투자국의 감축분으로 산정되었다. 탄소시장을 통한 배출권 거래제도의 도입도 인정되었다. 더 나아가 산림 등 흡수원의 확충에 따른 이산화탄소 흡수량도 해당국의 감축분으로 인정되었다.
이 교토의정서를 둘러싼 논의와 그 후의 대응 과정에서 각국은 서로 다른 국내외 이해관계 때문에 대립과 분열의 양상을 드러냈다. 1993년 11월 출범한 유럽연합(EU)은 온실가스 배출 규제(탄소 규제)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기후변화 기본협약과 관련한 협상에서 EU는 일관되게 감축의 의무화를 주장하였다. 미국이 요구한 유연성 메커니즘 도입에 대해서도 EU는 반대하였다. 재생에너지 보급이나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과 관련한 수치 목표에서도 EU는 항상 전향적이었다. EU의 제1차 기후변화계획(2000년)과 재생에너지 지침(2001년)에는 2010년까지 전력 소비량의 22%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202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990년 대비 20% 감축한다는 높은 수치 목표가 포함되었다. 2020년까지 수송용 연료 소비의 10%를 바이오연료로 대체한다는 목표도 세워졌다. 또한 미국의 요구로 도입된 배출권 거래제도의 설계에 있어서도 EU는 총량 규제 방식(cap and trade system)을 채택하여 실질적 감축 효과를 중시하는 태도를 견지하였다.
화석연료 수입 대국이었던 EU는 경제적 이유에서도 화석연료 소비를 줄일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감축 목표 설정에 있어 EU는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예컨대 당시 동유럽 국가들은 사회주의 경제에서 자본주의 경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일시적 경제 붕괴 상태에 빠져 있었고, 이로 인해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감소하고 있었다. 또한 독일의 경우 동서독 통일 이후 동독 지역의 에너지 효율이 낮은 공장을 폐쇄하는 등 산업 생산에서 에너지 효율을 대폭 개선하는 조치가 이루어졌다. 한편 1980년대 마거릿 H. 대처 보수 정권 하의 영국에서는 석탄에서 천연가스로의 에너지 전환이 추진되었는데, 그 배경에는 노동당의 지지 기반이었던 석탄산업 노동조합을 약화시키려는 정치적 의도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 정책 전환은 기후변화 정책에 예상치 못한 효과를 가져왔다. 석탄 의존도를 줄임으로써 영국은 이산화탄소 감축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남유럽 지역에서는 가뭄으로 인한 농업 피해 등 기후변화의 부정적 영향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EU의 기후변화 정책에는 이러한 복잡한 사정들이 작용하고 있었다.
EU 내부에서도 독일은 정책 전환의 선도적 존재였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에 걸쳐 독일에서는 기후변화가 중요한 정치적 쟁점이 되었다. 연방환경재단과 기후변화자문위원회가 설립되었고, 예방적 조치에 관한 보고서도 작성되었다. 기후변화는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예방적 관점에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인식이 정부 안팎에 확산되었다. 독일 정부는 기후변화 전략을 EU의 표준으로 삼고,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기술혁신을 촉진하여 세계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점하기를 바랐다. 한편 비용 증가를 피하고자 하는 산업계는 탄소 규제에 반대하였지만, 탄소 규제를 사업 기회로 간주하는 기업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전력 업계 또한 탄소 배출 규제가 원자력 산업에는 순풍이 될 것이라 여겼다. 앞서 언급한 동독 지역의 경제 붕괴나 에너지 효율 개선도 독일의 기후변화 정책에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반면 선진국 중에서 기후변화 정책에 가장 소극적이었던 국가는 미국이었다. 미국 경제는 값싼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었기에 석탄·석유 산업은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화석연료 업계의 압력단체는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 지구온난화를 부정하는 홍보와 로비 활동을 전개하였다. 예를 들어 세계기후연합(Global Climate Coalition)은 기후변화의 과학적 근거를 비판하는 연구에 거액을 지원하는 한편, 기후변화 대책이 미국 경제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메시지를 대대적으로 매스미디어에 퍼뜨렸다. 미국에는 세계적으로 규모가 큰 환경단체들이 존재하지만, 1980년대 이후 그 영향력은 약화되었다. 1981년 1월부터 1993년 1월까지 12년간 집권했던 공화당 정권은 시장주의와 규제 완화를 내세운 신자유주의 노선으로, 환경정책은 크게 후퇴하였다. 저비용의 에너지 절약 기술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는 이산화탄소 감축이 막대한 비용을 수반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 되었다.
교토의정서 체결을 둘러싼 국제 교섭에서 미국은 법적 구속력을 갖는 감축 목표를 명기하는 데 일관되게 반대하였다. 1993년 이후 8년간은 환경문제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민주당이 집권했지만, 의회 다수를 장악한 공화당은 민주당 정권을 견제했다. 수치 목표와 감축 기한 설정에 대해서도 미국은 줄곧 반대했다. 감축 방법에서도 미국은 앞서 언급한 유연성 메커니즘 도입을 강하게 주장하였다. 최대 배출국인 미국의 탈퇴를 막기 위해 EU는 미국에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 정부와 산업계가 선호한 것은 민간 주도의 자율적 수단과 기술혁신을 통한 에너지 효율 개선이었다. 산업계는 또한 기후변화협약의 ‘공통적이지만 차별적인 책임’ 원칙에도 비판적이었다. 개발도상국이 감축 의무를 지지 않는 한 선진국만의 노력은 무의미하다는 비판이었다. 2001년부터 다시 공화당이 정권을 잡자, 미국은 곧바로 교토의정서에서 탈퇴했다. 미국이 강하게 주장해온 유연성 메커니즘이 교토의정서의 대책 메뉴로 채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탈퇴를 감행한 것이었다.
다른 한편, 연방정부보다 기후변화 정책에 적극적인 주정부들도 나타났다. 2000년 7월, 뉴잉글랜드 주와 캐나다 동부 5개 주의 주지사들이 모여 2020년까지 온실가스를 1990년 대비 10% 감축한다고 선언했다. 2003년에는 메인, 메릴랜드, 버몬트, 뉴햄프셔, 코네티컷, 뉴욕, 뉴저지, 델라웨어가 참여한 ‘지역 온실가스 이니셔티브’(Regional Greenhouse Gas Initiative)가 결성되었다. 이들 주는 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안정화시키고, 2019년까지 각 주별로 10% 감축한다고 선언했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2002년 7월 기후변화 관련 법이 성립되어, 주 대기자원위원회가 자동차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에 관한 독자적 계획을 수립할 수 있게 되었다. 캘리포니아주는 재생에너지 정책에서도 적극적이었다. 전력 소매업자들에게 2010년까지 구매 전력의 20%, 2020년까지 33%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할 것을 요구했으며, 주 차원에서도 2010년까지 에너지의 20%, 2020년까지 33%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고 선언했다.
또 하나의 주요 행위자였던 일본은 EU와 미국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일본은 1970년대 오일쇼크를 계기로 에너지 절약 대책에 힘써왔다. 총리관저와 외무성은 지구환경문제를 경제대국 일본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좋은 기회로 보았다. 1997년 기후변화협약 제3차 당사국총회(COP3)를 주최하게 된 일본은 교토의정서 채택과 발효를 위해 EU와 보조를 맞추었다. 일본 정부는 교토의정서를 탈퇴한 미국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와 산업계는 실효성 있는 대책 도입에는 소극적이었다. 국내에서는 “일본의 에너지 절약 상황은 이미 더 이상 짜내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마른 걸레와 같다”는 표현이 유행했다. 일본 정부는 항상 미국의 입장을 배려했고, 국제적으로는 온실가스 감축에 소극적인 나라로 비쳤다.
일본은 교토의정서의 의장국이었지만, 국내 대책을 두고는 적극파와 소극파가 갈등했다. 환경성의 정치적 힘은 크지 않았으나, 총리관저와 외무성은 기후변화 문제를 일본의 국제적 위상을 높일 기회로 보고 전향적이었다. 1997년 6월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84%가 “경제적 부담이 늘더라도 온난화 대책을 지지한다”고 답했으며, 보수 자민당 내에서도 환경세 도입을 긍정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처럼 적극파의 입장은 EU의 탄소 규제 노선과 가까웠다. 반면 게이단렌(経団連, 일본경제단체연합회, 한국의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비슷한 조직)과 경제산업성(経済産業省, 한국의 산업통상자원부에 해당하는 부처)은 산업계 주도의 자율적 수단 외에는 일관되게 반대하며 미국과 비슷한 입장을 취했다. 결국 일본에서는 EU와 미국의 대립 구도가 적극파와 소극파의 대립으로 재현되었고, 산업계의 반대로 시장원리를 활용하는 탄소세나 배출권 거래제조차 도입되지 못했다. 결국 일본이 내놓은 교토의정서 대책은, 국민 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절약 운동과 기업 자율, 산림 흡수, 그리고 원전 확대에 기대는 것뿐이었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한 파리협정의 특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