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편서정: 지구의 편에 서기 위한 정치 <제31화>
지속 가능한 발전을 향한 정책 전환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앞서 살펴본 여러 저해 요인들 때문에 정책 변화는 더디게 진행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변화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정책 환경이 급격히 달라지면서, 기존의 지배적 정책 공동체가 힘을 잃고, 대안적 정책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새로운 정책 네트워크가 형성되기도 한다. 정치학자 니일 카터(N. Carter)는 이러한 전환의 외적 요인으로 위기, 새로운 문제의 출현, 국제 환경의 변화, 사회운동, 정치 변동을 지적한다. 여기서는 그의 분류를 바탕으로 하되, 각 요인에 대한 설명은 필자의 해석과 구체적 사례를 덧붙여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돌발적인 사고나 위기는 기존 정책의 정당성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책의 길을 열 수 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원전에 대한 신뢰를 근본적으로 흔들었고, 세계적으로 탈원전 여론을 고조시켰다. 독일 사회민주당(SPD)도 이 사고를 계기로 당내에서 탈원전 요구가 힘을 얻었고, 1998년 총선 승리 후 녹색당과의 연정을 통해 단계적 탈원전을 추진했다. 그러나 2005년 기민당(CDU) 주도의 연정이 들어서면서 원전 수명 연장 정책으로 되돌아갔고, 그 직후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했다. 기술 선진국 일본에서의 사고는 독일 정부를 다시금 탈원전 노선으로 되돌려 놓았다. 일본 역시 에너지 정책의 근본적 전환을 겪었다. 민주당 정권은 공론조사를 통해 여론을 확인하고 단계적 탈원전을 핵심으로 하는 새로운 에너지 전략을 내놓았다.
둘째, 새로운 문제의 등장도 정책 전환을 촉발한다. 화석연료에 기반한 기존 에너지·산업 정책은 기후변화라는 문제 앞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이산화탄소 배출이 지구온난화의 주된 원인임이 밝혀지면서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은 세계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독일은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재생에너지 전력을 고정가격으로 매입하도록 한 제도는 큰 성과를 거두었고, 에너지 소비에서 재생에너지의 비중은 꾸준히 증가했다. 산업계의 반발이 있었지만, 기후변화의 위험에 관한 지식이 확산되면서 화석연료 중심 정책은 점점 설득력을 잃어갔다.
셋째, 국제 환경의 변화도 정책을 바꿀 수 있다. 1985년 체결된 ‘비엔나 협약’은 오존층 파괴 물질을 규제하는 국제 조약이었다. 초기 일본은 반도체 산업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서명을 주저했지만, 당시 최대 배출국이던 미국은 환경운동과 여론의 압력 속에서 규제에 적극적이었다. 미국은 비준하지 않는 국가에 수입 규제를 시사하며 압박했고, 세계 시장의 25%를 차지하던 듀폰사도 대체물질 개발을 근거로 프레온 사용 중단을 선언했다. 국제적 흐름 속에서 일본도 결국 1987년 몬트리올 의정서에 합의했고, 1988년에는 비엔나 협약과 함께 이를 비준하며 규제에 나섰다.
넷째, 사회운동과 여론도 중요한 힘이다. 1970년대, 일본 정부가 공해 문제 해결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주민운동의 압력 덕분이었다. 중앙정부보다 먼저 공해 대책을 시행한 것은 지방자치단체였으며, 이 과정에서 환경운동의 지지를 받은 단체장이 등장해 독자적 정책을 추진했다. 또한 피해 주민과 변호사, 연구자들이 제기한 공해소송은 기업 책임을 인정하는 법리를 발전시켰고, 승소 사례가 늘어나면서 정책 변화를 이끌어냈다.
다섯째, 정치적 변동은 정책 전환을 가속화한다. 독일의 에너지 정책을 탈원전·저탄소로 전환한 것은 1998년 성립한 사민당·녹색당 연정이었다. 이 시기 탄소세가 도입되었고, 비록 정치적 타협이 있었지만 에너지 정책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었다. 일본에서도 후쿠시마 사고 후 민주당 정권이 탈원전 전략을 세웠으나, 선거 패배로 자민당이 집권하면서 해당 전략은 백지화되었다. 패배의 직접 원인이 탈원전 정책은 아니었음에도, 정권 교체만으로 정책 방향은 크게 달라진 것이다.
이처럼 정책 변화를 촉진하는 요인들은 현실에서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작용한다. 정책의 변화를 저해하거나 촉진하는 다양한 요인을 규명하고, 그 인과관계를 분석하는 일은 지속 가능한 발전의 정치학에서 중요한 과제다.
여기에 또 하나의 과제가 덧붙여진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정책 전환에는 제도나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 필요성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시민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환경정치학은 이를 ‘생태시민성(ecological citizenship)’이라 부른다. 이 개념은 전통적인 시민의 범주를 포함하면서도, 그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시민 정체성을 가리킨다.
민주주의의 역사를 돌아보면, 시민권은 언제나 도덕적 고려 대상을 넓혀온 과정이었다. 처음에는 재산을 가진 소수에게만 허락되었던 권리가 노동자, 여성, 사회적 약자로 확대되었듯이, 생태시민성은 미래 세대와 동식물, 그리고 자연 자체까지 정치적 권리의 범주 안으로 불러들이려 한다. 인간 이외 존재의 고유한 가치를 발견하고 지켜내려는 감수성, 거기에 이 개념의 핵심이 있다.
생태시민성은 또한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삶의 우선순위로 삼는다. 물질적 욕망을 줄이고 환경 부담을 덜어내려는 실천은 계약이나 보상 때문이 아니라, 자발적 책임감에서 비롯된다. 그 책임은 자기 이익을 넘어선다. 타인과 타국, 미래 세대, 인간 이외 존재들의 이익까지 고려하는 윤리적 태도가 생태시민을 특징짓는다.
이 개념은 사적 영역까지 깊이 스며든다. 우리는 일생 동안 생태계의 혜택을 입으며 자원을 소비하고 폐기물을 남긴다. 일상의 행위가 지속가능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자각은 생활방식의 전환을 요구한다. 소비나 이동, 식생활 같은 사소해 보이는 선택도 결국은 공적 의미를 갖는다. 생태시민성은 바로 이 일상의 차원을 시민적 실천의 장으로 끌어올린다.
마지막으로, 생태시민성은 국경에 가둘 수 없는 정체성이다. 오존층 파괴나 기후변화, 자원 고갈, 원전 사고, 핵전쟁 위험은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 문제다. 지역·국가·세계 차원의 다층적 대응이 동시에 필요하다. 생태시민성은 이러한 대응을 가능하게 하는 초국경적 정체성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지금까지 살펴본 환경정치학의 이론들은 지속 가능한 발전을 향한 정책 전환이 여전히 쉽지 않은 과제라는 점을 말해 준다. 이해관계와 저항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위기와 문제, 국제 환경의 변화, 사회운동, 정치적 변동 같은 외적 요인들은 언제든 새로운 길을 열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책 전환의 성패는 제도적 장치와 더불어 시민적 기반에 달려 있다. 생태시민성은 바로 그 기반을 이루는 중요한 조건이며, 이를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가 앞으로의 과제가 된다.
다음 글에서는, 지속가능한 사회가 민주주의와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에 관한 여러 이론적 논의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