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론의 생태학적 전환

지편서정: 지구의 편에 서기 위한 정치 <제35화>

by 완서담필


환경적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숙의민주주의보다 더 급진적인 것은 ‘바이오크라시(biocracy)’라 불리는 생태학적 민주주의 이론이다. 테런스 볼(Terence Ball)의 설명에 따르면, 바이오크라시는 민주주의의 고려 대상을 인간 이외의 존재로까지 확장하려는 시도이다.


사실 민주주의의 역사는 시민권 확장의 역사이기도 했다. 신분이 높은 자로부터 재산을 가진 자, 그리고 가난한 사람, 여성, 유색인종으로 민주주의는 그 고려의 범위를 점차 넓혀 왔다. 그러나 그 고려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인간’이었다. 고대 아테네의 직접민주정으로부터 현대의 대의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 숙의민주주의에 이르기까지, 모든 민주주의는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간의 민주주의였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시야를 동물·식물·자연·생태계 등 인간 이외의 존재로까지 확장하려는 것이 바로 바이오크라시 이론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바이오크라시에서 주요한 행위자는 여전히 인간이다. 왜냐하면 인간 이외의 존재는 인간의 언어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이해관계는 인간이 그것을 이해하고, 인간이 대신 말해 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이 과연 인간 이외의 존재의 이해관계를 ‘이해’할 수 있을까?


바이오크라시론에 따르면, 인간은 인간의 언어적 발화를 거치지 않더라도 다른 존재들의 이해관계를 느끼고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은 어머니는 그 아이가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를 즉시 알아차릴 수 있다. 시들기 시작한 잎이나 붉게 물든 바다를 보면, 사람은 그 광경이 뜻하는 바를 직감적으로 이해한다. 이처럼 인간은 언어로 말하지 못하는 존재의 ‘목소리 없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목소리가 호소하는 이해관계를 감지하여, 인간의 민주주의라는 장 안에서 그것을 대변할 수 있다.


바이오크라시론은 아직 태동기 단계에 있는 이론이다. 인간이 비인간 존재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다는 주장,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과 제도적 타당성을 둘러싸고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바이오크라시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생태적으로 계몽된 인간, 즉 ‘생태시민(eco-citizen)’의 존재가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앞 장에서 본 바와 같이, 생태시민은 생명권 평등주의에 입각해 인간중심적 세계관을 재검토하려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생태시민은 인간 이외의 존재가 지닌 고유한 가치를 인식하고, 그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기 위해 행동하는 존재이다.


환경적 지속가능성과 민주주의는 양립 가능한가? 지금까지 세 차례에 걸친 논의를 통해 보았듯이, 이 물음에 대한 논쟁은 민주주의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민주주의 한계론자들은 환경적 지속가능성과 민주주의 체제 사이에 필연적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 주장이 타당하다면, 같은 논리는 비민주적 체제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그러나 이 논쟁 속에서도 민주주의가 지닌 내적 잠재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비민주적 체제와 달리, 민주주의에는 복잡한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메커니즘과 유연성이 존재한다. 이의 제기의 자유, 광범한 참여, 알 권리의 보장, 그리고 정부의 설명책임이 그것이다. 물론 이러한 요소들이 때로는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해치는 방향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환경주의자이든 개발주의자이든 정치적으로 동등한 권리를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 동일한 요소들이야말로 위험을 감지하고, 환경적 지속가능성이라는 공공선을 지키는 데 불가결한 장치이기도 하다.


다음 글에서는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언설에 내포된 현상유지적 모티브, 개량주의적 모티브, 그리고 변혁지향적 모티브를 구분하고, 각각이 지닌 정치적 함의에 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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