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편서정: 지구의 편에 서기 위한 정치 <제37화>
이제 이 연재를 마무리할 차례이다. 그동안 살펴본 논의들은 결국 하나의 물음으로 집약된다. 지속 가능한 발전이 단지 현상유지의 다른 이름으로 머문다면, 그것은 더 이상 발전이라 부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개념이 진정 살아 있는 힘을 가지려면, 현상유지를 넘어서는 긴장과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지속 가능한 발전’의 의미가 점차 현상 타파의 방향으로 급진화되어 가는 경우일 것이다.
존 드라이젝(John S. Dryzek) 등의 연구에 따르면, 선진공업국 가운데 이러한 급진화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라는 독일이다. 개량주의와 급진주의 사이에 형성된 ‘건설적 긴장관계’가 바로 그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는 것이다.
드라이젝 등의 분석에 따르면,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 걸쳐 독일에서는 약한 수준의 지속 가능한 발전론, 즉 ‘생태적 근대화론’이 정책 전문가들 사이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경제적으로도 이익이 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정부와 산업계 역시 스스로를 생태적 근대화의 주체로 자처하게 되었다. 실제로 독일 정부는 순환경제, 에너지, 기후변화 등의 정책 영역에서 기술혁신에 중점을 둔 생태적 근대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동시에 녹색당은 점차 정치적 존재감을 키워 갔고, 1998년에는 사민당과의 ‘적록 연립정권’이 탄생했다. 이를 계기로 생태적 근대화 노선은 제도화·안정화의 단계로 진입하며 한층 가속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온건 좌파의 ‘그린화’도 진전되었다. 고용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던 사회민주당조차 ‘환경 투자는 경제적으로도 유리하다’는 생태적 근대화 노선에 동조하게 되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에는 원전 추진파였던 사민당 내부에서도 탈원전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한편 녹색당은 급진적 노선을 완화하고, 생태적 근대화라는 개량주의 노선을 공식 노선으로 채택했다. 이런 현실주의 노선을 취한 녹색당이 연립정권에 참여하게 되면서 생태적 근대화는 정부의 핵심 의제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 시기에는 탈원전, 재생에너지 확산, 탄소세 도입 등 정치경제 구조의 전환을 촉진할 만한 중요한 정책 변화가 이루어졌다. 다만 그 과정에서 녹색당도 적잖은 타협을 강요받았다. 산업계를 설득하기 위해 기존의 ‘즉각 탈원전’ 방침은 ‘원전 가동 연한 제한’으로 수정되었고, 탄소세의 세입 중 상당 부분은 기업의 사회보장 부담을 완화하는 데 사용되었다. 또 에너지 다소비 산업에는 초기 단계에서 세제상 우대조치가 취해졌다.
한편 이 시기의 독일 환경운동은 세 가지 특징을 보였다. 첫째는 운동의 제도화와 전문화이다. 이는 녹색당의 정치적 성공으로 가속화되었다. 새로운 사회운동의 정치적 수용체로 등장한 녹색당은 지방정치에서 세력을 넓혀가다 1980년대에는 연방의회에 진출했고, 1990년대 후반에는 사민당 주도의 연립정권에도 참여했다. 녹색당의 성공은 곧 생태적 이슈가 제도권 안에 편입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에 따라 환경운동의 초점은 점차 시위와 항의에서 정책제안과 협력으로 옮겨갔고, 정부나 기업과의 공동 프로젝트가 환경단체의 주요 활동이 되었다. 많은 단체는 이러한 제도화가 환경적 가치를 정책 결정에 반영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둘째는 급진적 환경운동에 대한 정부의 소극적 배제이다. 독일 정부는 한편으로 온건한 환경단체의 생태적 근대화 노선을 수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급진적 단체는 정책결정 과정에서 배제했다. 예를 들어 탈원전 합의 과정에서는 전력회사와 경제관료가 중심이 되었고, 환경성이나 환경운동단체는 직접 관여하지 못했다. 특히 BBU(Bundesverband Bürgerinitiativen Umweltschutz, 전국환경보호시민운동연합)와 같은 급진적 단체는 완전히 배제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배제는 역설적으로 독일 시민사회를 ‘생태적으로 급진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제도에 완전히 흡수되지 않은 급진적 운동은 제도 밖에서 ‘생태적 공공권(ecological public sphere)’을 형성하며, 정부의 생태적 근대화 정책을 비판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이 공공권은 국가의 정당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더 깊은 개혁을 요구하는 힘의 원천이 되었다. 이렇게 제도화된 개량주의와 그것을 비판하는 급진주의가 동시에 활성화된 독일 사회에서는, 양자 사이의 긴장이 지속 가능한 발전이 형식적 수사에 그치지 않도록 견제하는 역할을 했다.
셋째는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연구조직의 등장이다. 예컨대 ‘생태연구기관간 작업부회(The Working Group of Ecological Research Institutes)’에는 약 80개의 비정부 연구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1977년에 설립된 응용생태연구소(The Institute for Applied Ecology)는 정부나 기업 측 전문가에 맞서는 연구를 수행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부퍼탈 기후·환경·에너지연구소(Wuppertal Institute for Climate, Environment, and Energy)와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Potsdam Institute for Climate Research) 등은 정부와 산업계의 공식 입장을 검증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기관들은 시민사회 내부의 생태적 공공권을 유지·활성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독일의 지속 가능한 발전이 급진적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기여하고 있다.
요컨대 독일에서는 한편으로 정부 주도의 ‘약한 지속가능발전’이 추진되고, 다른 한편으로 시민사회의 급진적 생태운동도 여전히 활발하다. 이러한 현상은 다른 선진공업국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양상이다. 예를 들어, 환경선진국으로 알려진 노르웨이의 경우 정부가 주도한 생태적 근대화가 너무 성공적으로 제도화되어 대부분의 환경단체가 정부의 노선을 따르고 그 내부에 포섭되었다. 정부 보조금이나 자문위원직과 맞바꾸는 형태로 환경 NGO들은 더 이상 ‘비정부적’이라 부르기 어려운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그 결과 환경 가치가 주로 경제적 이익의 관점에서 논의되고, 산업계에 불리한 대책은 도입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노르웨이의 지속가능발전이 약한 수준에 머무는 이유다.
반면 영국에서는 전통적으로 폐쇄적인 정책 결정 구조와 1980년대 이래 지배적인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생태적 근대화의 진전을 가로막았다. 1990년대 노동당 정권기에는 정부의 관심이 높아졌으나, 정치의 체질은 여전했다. 교통정책의 초점은 도로 건설에 머물렀고, 부처 간의 이해 다툼으로 정책 통합은 진전되지 않았다. 환경적 지속가능성은 우선적인 의제로 부상하지 못했고, 환경운동단체 역시 정책결정에서 배제되었다. 게다가 정부는 정보공개나 시민참여에도 소극적이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일부 개선 조짐이 보였지만, 기후변화 등 일부 분야를 제외하면 영국의 생태적 근대화는 여타 유럽 국가들보다 뒤처져 있었다.
미국의 사정은 더욱 복잡하다. 미국은 정부의 경제 개입을 꺼리는 정치문화를 지닌 나라다. 따라서 환경규제는 경제활동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인식되기 쉽다. 기후변화 정책만 보아도, “온난화 대책은 경제성장을 저해한다”는 프로파간다가 여전히 강력하다. 이러한 정치문화는 환경과 경제의 양립 가능성 자체를 인정하기 어렵게 만든다. 게다가 다원주의 정치체제 아래에서는 조직력과 자금력에서 우위에 있는 생산자 이익집단이 정책결정의 승자가 되기 쉽다. 미국의 환경운동이 약한 것은 아니지만, 산업계의 로비력은 그것을 압도한다. 공해반대운동이나 환경정의를 요구하는 운동이 곳곳에서 일어나지만 대체로 지역적이고 분산적이다. 지속가능발전에 적극적인 주(州)도 있으나, 연방정부의 입장은 여전히 에너지 산업을 비롯한 산업계의 영향력에 크게 좌우된다. 그 결과 미국에서는 ‘약한 수준의 지속가능발전’조차 활성화되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결국 지속 가능한 발전은 완성된 체제가 아니라, 끊임없이 갱신되어야 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개량주의와 급진주의, 제도와 운동, 기술과 가치가 서로를 긴장시키며 밀고 당길 때, 그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 역시 생기를 얻는다. 독일의 경험은 그 사실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환경정책이 정치의 중심에 서기까지 수많은 타협과 후퇴가 있었지만, 그 속에서도 시민사회는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지속 가능한 발전이 살아 있는 개념으로 남으려면, 현상유지를 넘어서는 긴장과 실천이 필요하다. 지속 가능한 발전의 생명선은 바로 그 긴장 속에서, 여전히 미완의 미래를 향해 뛰어 가는 것에 있다.
이제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과연 그러한 긴장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적어도 독일이 보여준 그 건설적 긴장관계의 수준만큼은 유지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 연재의 마지막 글이 될 다음 글에서는, 그동안 『지편서정』을 써 오며 느낀 필자의 짧은 소회를 전하고자 합니다. 그 글을 끝으로 『지편서정』의 연재를 마무리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