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편서정: 지구의 편에 서기 위한 정치 <제38화>
브런치북 연재 『지구의 편에 서기 위한 정치』는 사유의 여정이자 하나의 고백이었다. 브룬트란트 보고서에서 출발해 지속 가능한 발전의 이념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좇는 동안, 필자는 여러 번 멈추어 서야 했다. 발전이란 무엇이며, ‘지속 가능성’이란 과연 누구를 위한 약속인가. 이 질문들은 단지 환경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그 자체의 의미를 다시 묻는 일이었다.
필자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하나의 종착점이 아니라, 여전히 미완의 대화로 이해하고 싶다. 허먼 E. 데일리(Herman E. Daly)의 정상 상태 경제론이 제시하듯, 우리는 지구의 수용 능력 안에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정치의 현실은 그 단순한 이치를 끊임없이 유예시킨다. 그래도 필자는 희망의 근거를 찾는다. 독일과 유럽의 정책 실험들, 시민사회의 새로운 연대, 그리고 젊은 세대의 언어 속에서. 그 모든 것이 이 책을 쓰게 한 동력이었다.
이 연재는 필자가 일본의 한 대학에서 진행한 「환경정치론」 강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 강의 내용을 정리‧보완해 일본어로 발표한 원저를 토대로, 한국어로 다시 생각하고 다시 써 내려간 것이다. 동시에 이 연재는, 필자보다 앞서 환경문제를 고민해 온 서구와 일본 연구자들의 오랜 축적 위에 세워진, 한국 출신 연구자의 사유의 기록이자 작은 발언이기도 하다. 브런치북의 형식상 원저와는 달리 모든 출전을 일일이 밝히지 못했음을 양해해 주시길 바란다. 다만 그들의 성찰이 없었다면 이 글의 어느 문장도 존재할 수 없었다는 점만은 분명히 밝혀 두고 싶다.
브런치북 연재를 쓰며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이자,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구의 편에 선다’는 말은 결코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편에 선다는 뜻이기도 하고, 곧 나 자신의 편에 선다는 말이기도 하다. 오늘의 밥상과 내일의 선택 속에서 다시 확인하는 정치적 위치와 방향 감각. 다섯 달 남짓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여정에 함께해 준 브런치스토리의 작가이자 독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기후변화 때문일까. 아직 후덥지근함이 가시지 않은 2025년 가을의 어느 날.
『지편서정』 연재를 마치며 ─ 소나리우스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