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는 이방인으로 하루를 건너고 있을 당신에게

에트랑제 통신 No.3

by 완서담필


계절의 이음새가 유독 거칠게 삐걱거리는 때입니다. 마치 오래된 문이 제 경첩의 무게를 더는 견디지 못하듯, 시간은 제 속도를 잃고 날들은 서로에게 매끄럽게 닿지 못한 채 어긋나 있습니다. 그 틈새를 통과한 당신의 오늘은 어떤 빛깔이었는지요. 혹은 빛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옅지만, 분명 사라지지는 않은 무엇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동유럽에서 남미로, 그리고 저 멀리 중동에서뿐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땅에서도 사람을 더욱 이방인으로 만드는 일들이 쉼 없이 이어집니다. 익숙하다고 믿어왔던 질서와 언어들이 하루아침에 낯설게 변형되는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는 세상의 중심에서 조금씩 밀려나 있는 듯한 감각을 느낍니다.


어쩌면 세상은 처음부터 이토록 위태로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불안이 일상의 소음에 가려 잠시 잊혀 있었을 뿐, 이제야 날이 선 얼굴을 드러내고 있는 것인지도요. 그러나 그 연원을 따져볼 겨를도 없이, 쏟아지는 소식들은 우리가 머물고 있는 이곳에서조차 자꾸만 겉돌게 만듭니다.


저는 오늘도 읽다 만 책장을 덮듯이 하루를 접어 두었습니다. 이곳의 겨울은 날씨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자꾸만 말을 아끼는 쪽으로 기웁니다. 내뱉는 숨결마다 하얀 침묵이 서리고, 생각들은 문장이 되기보다는 마음속에 머물러 고여 있습니다. 소란스러운 결심이나 성급한 희망보다, 사태를 똑바로 바라보는 차분한 응시가 더 어울리는 계절인 듯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스름한 저녁의 텅 빈 방 안에서, “아, 참 춥구나”라는 말 한마디를 혼잣말처럼 내려놓고는, 오늘이라는 시간을 내일이라는 이름으로 또 넘겨 봅니다. ‘살아냈다’는 다소 의욕적인 말보다는, 그저 주어진 자리를 비우지 않고 묵묵히 지켰다는 표현이 지금의 저와, 어쩌면 당신에게도 더 정직한 고백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하루처럼 보였을지라도, 그 자리에 계속 머물렀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작은 저항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대의 오늘이 어떤 모양이었는지,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 저는 굳이 묻지 않겠습니다. 다만 조금은 버거웠을지도 모른다는 제 짐작을, 겨울 해가 낮은 각도로 남겨놓은 길고 옅은 그림자처럼 이 편지의 여백에 살며시 두어 봅니다. 설명하려 애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억지로 표정을 다듬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말해지지 않은 것들 역시 충분히 존재할 자격이 있으니까요.


‘버틴다’는 말이 어느 날은 ‘살아간다’는 말보다 더 정확해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런 날에는 삶의 이유를 캐묻지 않아도 괜찮다고, 목적 없는 하루 역시 하루로서 존중받아야 한다고 요즘의 저는 자주 생각합니다. 어쩌면 에트랑제로서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낯선 세계를 향한 가장 조용한 버팀이자 저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마지막 보루가 있다면, 그것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이렇게 자리를 비우지 않는 태도일지도요.


세상이 낯설어질수록, 역설적으로 이방인 아닌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체온이 더욱 절실해집니다. 각자의 섬에서 말없이 불을 지키고 있을 당신과 나, 그리고 이름 모를 수많은 이방인들이 나누는 무언의 온기만이 이 서늘한 시대를 견디게 하는 마지막 땔감은 아닐까 생각해보는 밤입니다. 큰 연대가 아니어도 좋고, 거창한 구호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서로가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을 희미하게나마 감지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하루를 더 건널 힘을 얻곤 하니까요.


이 편지에 굳이 답장을 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다만 이 문장들이 당신의 가슴 속 어딘가에 잠시 내려앉아, 차가운 손을 덥히는 작은 온기 한 점으로 머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읽히고 잊히더라도, 그 짧은 머묾만으로도 이 편지는 제 역할을 다한 셈이겠지요.


날이 쉽게 풀릴 기색은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부디 이 계절의 끝자락까지, 제 자리를 비우지 않은 채 하루를 건너가시기를 바랍니다. 에트랑제로서 그 자리를 지키는 일이 때로는 버티는 일이 되고, 또 때로는 저항이 되기도 하니까요. 당신이 견뎌낸 하루하루가 비록 기록되지 않더라도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이 먼 자리에서나마 믿어봅니다.


이 편지를 쓰는 저 또한,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채 계절을 건너는 사람입니다. 그곳이 어디이든 그곳에 머물고 있으나 그곳의 사람이 되지는 못한 채, 늘 반 발짝 비껴 선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같은 경계 위에 서 있는 당신에게 이 안부를 건넬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방인은, 다른 이방인의 기척을 유독 먼저 알아보니까요.


그러니 이 글을, 낯선 세계의 가장자리에서 또 다른 이방인이 남겨둔 짧은 흔적쯤으로 받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늘을 건너온 에트랑제가, 또 다른 에트랑제일지도 모를 당신의 오늘을, 에트랑제의 감성으로 헤아려 본 기록으로 말입니다.


그럼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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