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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건물주.." 초고를 마치며

by 김성훈


지난달 가까운 지인의 결혼식에서 오래전 잠시 인사를 나누었던 출판사 사장님을 다시 만났다. 작년, 그날 결혼하는 지인의 책을 출간하기 위해 함께 갔을 때 뵈었던 분이었다. 당시 그는 내게 원고가 완성되면 출판사로 보내달라고 했고, 나는 그 말을 막연히 기억 속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1년 만에 다시 만난 자리에서 사장님이 대뜸, “쓰고 계신 원고가 어느 정도 되었으면 보내 주세요.”라고 말했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이제 막 초고를 마친 상태에서 퇴고를 시작하려던 참인데, 원고를 달라고 하다니. 마치 초등학생 시절, 숙제를 덜 했는데 선생님이 숙제를 내놓으라고 할 때의 당혹스러움이 떠올랐다.


출판사 사장은 내 글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나의 캐릭터와 콘텐츠 때문이라고 했다. 강남 건물주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경험을 직접 기록한 책은 거의 없다고 했다. 대부분 건물주가 아닌 사람들이 이론적 접근을 하며 건물주 되는 법을 이야기했지만, 실제 강남 건물주가 된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책 제목까지 추천해 주었다.


"강남 건물주가 얘기하는 진짜 강남 건물주 되기"


그 말을 듣자마자, 머릿속에 20여 년 전 처음 건물주가 되기로 결심했던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엔지니어의 사고방식, 그리고 글쓰기

나는 플랜트 건설 현장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며, 현장 소장으로서 국내외에서 수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플랜트 건설 과정은 글쓰기와 닮아 있다.


건설 계획 = 글쓰기 계획.

공사를 시작하기 전, 전체적인 계획을 세우듯이 글을 쓰기 전에도 큰 틀을 잡아야 한다.


주요 공정표 = 목차 작성.

프로젝트의 주요 공정이 정해지듯이, 글을 쓸 때도 주요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부 공정 = 챕터별 전개.

단계별 공사를 진행하듯이, 글도 한 챕터씩 완성해 나간다.


시운전 및 준공 = 퇴고 및 원고 완성.

플랜트 공장은 모든 공정을 마치고 시운전을 거쳐 최종 준공을 한다. 글쓰기도 초고를 완성한 후 퇴고를 반복하며 다듬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출판사 사장은 원고가 완벽하게 다듬어지기 전에 보내도 된다고 했다. “출판사에서는 작가님의 원고를 받아 대폭 수정할 예정이니 그냥 넘겨보세요.”라고 지인도 말을 거들었다.


그러나 내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완벽하게 설계된 플랜트 공장이 준공되기도 전에 제품을 먼저 달라”는 말과 같았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퇴고의 과정이다.

나는 처음부터 완벽한 원고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썼다. 억지로 글을 짜내려 하면 오히려 막히기 마련이다. 글쓰기는 초고를 쓰고, 퇴고를 반복하며 다듬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초고를 완성한 후에는 시간을 두고 숙성의 과정이 필요하다. 글을 다 쓰자마자 수정하려 하면, 처음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같은 글을 다시 보면 새로운 시각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부족한 점이 보이고,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내거나 보완할 수 있다.


글을 다듬을 때는 단순한 문장 수정이 아니라, 전체적인 짜임새와 흐름을 점검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어떤 글쓴이는 초고를 그대로 완성된 원고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일 가능성이 크다. 좋은 글이 되려면 수차례 퇴고를 거쳐야 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조차 “글은 고치고 또 고쳐야 한다.”라고 했다. 완벽한 글은 단번에 나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출판사와 함께 수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과정이라 해도, 초고 상태에서 원고를 넘기는 것은 내게 마치 맨몸을 보여주는 것 같은 어색함을 느끼게 했다.


완벽함을 향한 집착과 엔지니어의 직업병

이러한 생각이 드는 것은 결국 나의 직업병 때문일지도 모른다. 플랜트 건설은 철저한 설계도면과 계획에 따라 완벽하게 준공해야 한다. 건설이 끝난 후에야 제품이 생산될 수 있는 것처럼, 내 글도 완벽하게 다듬은 후에야 비로소 책으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글쓰기는 공장 건설과는 다르다. 완성된 후에도 퇴고와 수정이 계속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사고방식은 한 번 완성된 것은 완벽해야 한다는 원칙에 묶여 있다.


나는 지금 초고를 마쳤다. 그러나 몇 번의 퇴고가 필요할지는 나도 모른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내 성향상, 몇 번이고 수정하며 글을 다듬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된 원고를 완성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시간 부자’라고 생각하며, 글을 고치고 또 고치면서 완벽한 원고를 만들 것이다.

그리고 내 마음이 충분히 인정할 때, 비로소 출판사에 원고를 넘길 것이다.


이것이 강남 건물주가 된 한 엔지니어의 글쓰기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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