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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지독하다, 지독해."

by 김성훈


지난 연말, 매년 하는 부부동반 저녁 모임에서 서울대병원 의사인 선배 지인이 내게 말했다.

"참 지독하다, 지독해."


옆에 있던 아내와 같이 자리한 지인부부께서도 귀를 기울였다.

무슨 이야기인가 싶었지만, 그 선배는 내 카톡 글을 언급하고 있었다.


나는 12년 넘게,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마다 카톡 글을 써서 지인들에게 보내왔다. 5~6년 전에도 같은 의사 선배지인이 묻곤 했다.

"어떻게 그렇게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글을 쓰냐? 정말 대단하다."


그런데 이제는 감탄을 넘어 "지독하다"는 표현이 나왔다.


아내도 그 말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12년을 지켜봤으니까. 어제 낮에도 아내가 내게 말했다.

"그때 그런 얘기를 듣고도 여전히 그렇게 카톡 글을 보내요?"


하지만 내게 아침 카톡 글쓰기는 단순한 습관이 아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출발 신호이자, 삶의 일부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개근의 생활

나는 초등학교 졸업식 때 6년 개근상을 받을 줄 알았다. 그런데 2학년 때 실수로 중간반 수업 시간을 착각해 오후반에 등교를 하는 실수로 개근상을 놓쳤다. 그때의 실망감 때문인지,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개근상을 받았다.


대학에는 개근상이 없었지만, 있었더라면 아마도 받았을 것이다.

회사 생활 30여 년 동안도 단 한 번도 결근하지 않았다.

감기에 걸려 밤새 앓다가도 아침이 되면 출근했다. 아내가 말려도 듣지 않았다.


이런 성향이 내 글쓰기에도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문학이 길러준 사고의 깊이

중학생 시절, 어느 날 아버지께서 한국 문학전집 20권을 사주셨다.

이광수의 흙, 김동인의 젊은 그들, 채만식의 탁류,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등을 그때 밤새워 가며 읽었다.


고등학생 때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같은 러시아 문학에 푹 빠졌다. 그때 읽었던 작품들은 내 사고의 깊이를 키우고,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 주었다.


덕분에 글을 쓸 때도 주제와 문맥이 풍부해졌고, 이는 내 아침 카톡 글쓰기의 바탕이 되었다.


카톡 글쓰기의 시작, 그리고 12년의 이어짐

카톡 글쓰기는 십이 년 전 해외 근무지에서 두 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려고 시작했다. 처음엔 가족을 위한 글이었지만, 점점 주변 지인들에게도 보내게 되었다.


지금은 매일 아침 80여 명에게 글을 보낸다. 한때 많을 때는 200여 명에게 보내는데, 전송하는 데만 30분 이상 걸릴 때도 있었다.


습관이 된 글쓰기는 해외 근무지에서도, 국내외 출장 중에도 단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유럽 여행 중에도, 알래스카 크루즈에서도, 어디서든 글을 꼭 써서 보냈다.


매일 밤마다 내일 보낼 글을 준비해 놓고 자는 것이 나의 루틴이 되었다. 십여 년 넘게 스마트폰으로만 글을 써서 이제는 노트북 자판보다 더 익숙해졌다. 언제 어디서나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스마트폰은 내게 최고의 글쓰기 도구다.


지독하게 써온 글, 그리고 새로운 시작

매일 아침 카톡 글을 받아본 지인들은 말한다.

"요즘 글이 더 깊어지고 좋아졌어."


그 말을 들을 때마다, 12년간의 스마트폰 카톡 글쓰기가 헛되지 않았음을 느낀다.


이제는 그동안 쓴 글들을 모으고 정리하고 있다. 아내는 여전히 "지독하다"라고 하지만, 나는 묵묵히 내 글을 쓰고 전송하고 모은다.

한 달 전부터는 브런치 스토리에도 올리고, 프린트해서 바인더로 정리하고 있다.


이 스마트폰 카톡 글쓰기가 언제 끝날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나는 여전히 글을 쓸 것이다.

그것이 나의 하루이고, 내가 요즘 나아가는 마음의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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