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아름다움과 야성이 공존하는 도시, 부다페스트. 헝가리의 수도이자 "동쪽의 파리"라 불리는 이곳은 다뉴브 강을 중심으로 부다(Buda)와 페스트(Pest) 두 지역이 나뉘어 있으며, 웅장한 건축물과 깊은 역사가 어우러진 곳이다. 나에겐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지만, 부다페스트는 여전히 낯설고도 매력적인 도시다.
십오 년 전 회사의 업무 출장으로 처음 왔던 부다페스트, 그리고 코로나 이후 아내와 같이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를 잇는 패키지여행으로 다시 찾았던 곳. 그리고 이번에는 아내와 여동생 내외와 함께 비엔나 여행 후 닷새간 머물며 도시의 매력을 돌아보는 여행을 하였다.
부다페스트 여행에서 인상적인 순간들을 정리해 본다.
낭만과 비극이 공존하는 도시, 글루미 선데이와 군델 레스토랑을 찾았다.
부다페스트를 떠올릴 때 나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다. 바로 감명 깊게 봤던 영화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
1933년, 2차 대전 당시 헝가리 작곡가 레조 세레스가 헝가리 시인 라즐로 자보의 시 ‘세상이 끝나가네’에 곡을 붙여 만든 이 노래는 유럽 전역에서 많은 청년들의 자살을 불러일으켜 '헝가리 자살 노래'라는 별명이 붙었다. 영화 글루미 선데이는 이 노래를 배경으로 삼아한 레스토랑을 둘러싼 삼각관계와 전쟁의 비극을 풀어낸 작품이다.
이 영화 속 레스토랑이 바로 군델(Gundel) 레스토랑이다. 1894년, 카로이 군델이 설립한 이곳은 전통적인 헝가리 요리를 고급스럽게 선보이며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빌 클린턴, 반기문, 루치아노 파바로티, 앤젤리나 졸리 등 세계적인 유명인사들이 다녀간 곳이기도 하다.
군델 레스토랑의 분위기는 고풍스럽고 우아했다. 헝가리 대표 졸라(Zsolnay) 도자기와 은식기가 어우러진 고급스러움 속에서 헝가리 음식을 즐기는 경험은 부다페스트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다.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던 순간은, 우리가 앉은자리 앞에서 바이올린과 현악 5중주로 ‘글루미 선데이’를 연주해 주던 시간이었다.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간 듯한 느낌이었다.
부다페스트의 랜드마크, 역사의 흔적을 따라 여행을 하였다.
부다페스트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건축미를 자랑하는 도시다. 닷새간 머물며 도시 곳곳을 누비며 그 아름다움을 직접 눈으로 담았다.
부다 성 왕궁(Buda Castle)
부다 지역의 중심이자 부다페스트의 대표적인 역사 유적. 왕궁과 박물관이 자리한 이곳에서는 다뉴브 강과 페스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저녁 무렵 방문하면 황금빛 석양이 도시를 물들이며 잊지 못할 풍경을 선사했다.
체인 브리지(Chain Bridge)
부다와 페스트를 연결하는 가장 상징적인 다리. 밤이 되면 조명이 켜지면서 더욱 운치 있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다뉴브 강 위로 반짝이는 불빛들은 마치 별이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세체니 온천(Széchenyi Thermal Bath)
유럽 최대 규모의 온천 중 하나로, 야외 온천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여유를 즐기는 경험이 특별했다. 역사적인 건물에서 천천히 피어오르는 수증기 속에서, 여행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낼 수 있었다.
어부의 요새(Fisherman’s Bastion)
마치 동화 속 성채 같은 독특한 건축물. 전망대에 올라서면 부다페스트의 아름다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찍은 사진은 그 어떤 엽서보다도 멋진 장면을 담고 있었다.
성 이슈트반 대성당(St. Stephen’s Basilica)
웅장한 규모와 섬세한 건축미를 자랑하는 헝가리 최대 성당. 성당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쏟아지는 햇살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맥도널드, 뉴가티역의 특별한 공간을 구경하였다.
부다페스트에서 놓칠 수 없는 또 하나의 명소가 있다. 바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맥도널드’라 불리는 뉴가티역 맥도널드(McDonald’s Nyugati).
뉴가티역은 1877년, 프랑스의 구스타프 에펠 회사가 설계한 건축물로, 에펠탑을 디자인한 바로 그 회사에서 만든 기차역이다. 역사적인 건축물 안에 자리한 맥도널드는 마치 고풍스러운 유럽의 카페를 연상케 했다. 일반적인 패스트푸드점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우아한 분위기 속에서 브런치 식사를 하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
부다페스트에서 보낸 닷새는, 잊지 못할 순간들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부다페스트는 또 한 번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역사의 아픔과 낭만이 공존하는 이곳에서, 아름다운 건축물과 음악, 중세 유럽의 궁전 같은 카페, 온천과 미식, 그리고 영화 같은 순간들을 경험했다.
헝가리는 한국처럼 빠르게 변하지 않지만, 그만큼 전통의 멋을 간직한 곳이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의 클래식한 분위기, 세월이 스며든 멋진 세계최고의 맥도널드 매장, 다뉴브 강변의 낭만적인 야경까지. 부다페스트는 ‘동유럽의 보석’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도시였다.
다음에 또다시 찾게 된다면, 또 어떤 새로운 매력에 빠지게 될까. 부다페스트에서의 닷새는 여행온 우리들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