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어떤 꿈을 꾸고 있든, 절대 포기하지 마시라.

by 김성훈


어제 오후, 아내와 함께 신림동에 있는 전기조명 전문점을 찾았다. 30년 넘게 인연을 이어온 선배 부부의 가게다. 다음 달에 큰아들이 이사할 우리 아파트에 들어갈 전기재료와 조명기구를 구입할 겸, 오랜만에 얼굴을 보러 간 길이었다. 오후 늦은 시간이라 매장은 조용했고, 선배 부부는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아내는 가는 길에 카페에 들러 시원한 아이스크림 음료를 사들고 갔고, 그런 세심한 마음은 늘 선배 부부의 미소를 이끌어냈다.

우리는 광양제철소에서 함께 일하던 인연으로 지금껏 인생의 사계절을 함께 걸어왔다. 한 부서에서 근무하던 다섯 집안이 부부 동반 모임을 만든 지 어느덧 30년이 훌쩍 넘었다. 그중 가장 연장자인 선배의 자녀는 이미 40대 후반이고 손자는 군 복무 중이니, 세월이 얼마나 빠른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모두가 60대 후반에서 70대 중반의 실버 세대가 되었지만, 그 시절 우리가 함께 나눈 시간들은 여전히 따뜻하게 마음을 데운다.


나는 그 모임의 막내였고, 20대 후반의 풋풋한 신입사원으로 근무지 인근도시 순천의 단칸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당시 나에게 네 선배 부부들은 회사 일이든 가정 일이든 언제나 따뜻한 조언자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신혼의 갈등부터 육아의 어려움까지, 선배 부부들의 삶에서 배운 것이 참 많았다. 그렇게 다섯 집은 서로의 자녀교육, 이직, 사업, 집 문제까지 속속들이 공유하며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인연으로 지내왔다.

90년대 광양제철소의 준공 이후, 우리는 서울로 속속 복귀했고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나는 S그룹으로 이직했고, 선배들은 건축설계사무소를 열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그렇게 각자의 일을 하면서도, 우리는 분기마다 모여 여행을 다니고 삶을 나누며 우정을 이어갔다.



삶을 돌이켜보면, 2, 30대의 젊은 날에서 6,70대의 노년으로 접어들기까지 각자의 인생 여정은 사뭇 달랐지만, 함께 보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북돋우며 성장해 왔다. 광양제철 근무할때 순천의 15평 임대 아파트에 입주하던 날의 설렘,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반도체 실리콘 웨이퍼 공장 건설을 위해 미국과 합작했던 도전, 하안동의 33평 아파트에 처음으로 내 소유의 집에 입주했을 때의 벅찬 감정까지, 이 모든 경험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큰아들이 최근 내곡동 아파트를 매도하고 우리 부부의 소유인 서초동 아파트로 이사 오기로 하면서, 지난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이사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 결혼 후 10년 간 10번 넘게 이사를 다닌 우리 세대와는 다른 삶이다. 우리는 산업화와 도시화라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이사하며 자산을 키워나갔다. 반면 아들 세대는 안정된 주거를 기반으로 삶의 질을 중요시하는 시대를 살아간다.


결혼 전, 아내를 향해 약속한 꿈이 있었다. “우리 둘이 결혼하면 20층 높이의 건물주는 되게 해 줄게.” 그렇게 설계 전공을 살려 SM빌딩이라는 이름으로 투시도 그림을 만들어 아내에게 선물했다. 그 그림은 아래의 사진에서 처럼 아직도 아내가 간직하고 있고, 40년이 흐른 지금, 우리 부부 명의로 된 건물 세 채의 층수를 합치면 20층이 된다. 꿈은 그렇게 현실이 되었다. 단지 운만 따랐던 게 아니다. 60세 은퇴 후 강남 건물주가 되겠다고 결심한 후, 종잣돈 마련, 주식과 부동산 투자, 부동산 대학원 졸업까지, 나는 그 길을 치열하게 준비해 왔다.

16년의 해외 근무 경험은 자금 마련에 큰 도움이 되었다. 내 인생의 화양연화(花樣年華)는 바로 그 시기였다. 현장과 해외를 오가며 고생도 많았지만, 그 시간들이 오늘날의 강남 건물주라는 결과를 낳은 밑거름이 되었다. 세상은 생각한 대로 살아지는 것이라 믿는다. 진심으로 원하고 준비하며 생각하는 대로 인생을 설계하면, 언젠가 반드시 현실이 된다.



신림동 선배의 가게에서 선배 부인이 내게 한마디 던졌다. “정화 아빠는 보통의 사람이 아니에요.” 나는 웃으며 답했다. “아닙니다, 세금 내느라 바쁜 보통의 사람입니다.” 요즘은 자산으로 인한 각종 세금과 규제가 머리를 아프게 하지만, 선배는 농담조로 말했다. “나도 머리 좀 아프도록 세금 좀 내봤으면 좋겠다.” 웃음 속에 서로의 삶을 응원하는 따뜻함이 느껴졌다.

그 시절 단칸방에서 시작한 우리 부부가 이제 강남 건물주의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에 선배 부부는 놀라워했고, 아마도 그런 맥락에서 ‘보통이 아니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호히 말하고 싶다. 누구나 간절히 꿈꾸고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그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며칠 전, 정 작가를 만났다. 최근 2년 연속 출간한 책이 연말에 출판협회가 수여하는 '평론가 상'을 받았지만 판매는 저조하다고 속상해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책상 앞에 제목보다 먼저 ‘10만 권 팔리는 책을 쓰자’라고 써붙여요. 목표는 크게 잡아야 몸과 마음이 크게 움직입니다.” 그에게 던진 말이지만, 사실은 나 자신에게도 늘 하는 다짐이다.

노년에도 꿈은 있다. 나이는 단지 숫자일 뿐이다. 생각이 젊으면 언제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배움과 도전의 끈을 놓지 않는 삶은 육체의 병도 마음의 병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다. 2030대에 꿈도 없이 사는 젊은이는 ‘젊은 노인’이지만, 6070대에도 청춘의 심장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진짜 청춘이다.

아내는 가끔 나를 보고 “참 지독한 사람”이라 말한다. 담배, 술, 심지어 커피 한 잔도 입에 대지 않고, 마음먹은 건 끝내 해내고야 마는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미안하면서도 고맙다. 그런 나와 평생을 함께 하며 힘들었을지 모르지만, 그만큼 우리 부부는 누구보다 열심히, 누구보다 즐겁게 살아왔다. 여행 하나를 가더라도 언제나 ‘비즈니스 클래스’로 아내를 배려했다. 그것이 내 방식의 사랑이고, 감사의 표현이었다.

삶은 생각한 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지금 여러분이 어떤 삶을 살고 있든, 어떤 꿈을 꾸고 있든, 절대 포기하지 마시라. 생각이 현실을 만든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생각대로 살아온 사람으로, 지금은 강남 건물주가 되었다.



“꿈은, 준비한 자에게 현실이 됩니다.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생각의 깊이가 당신의 나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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