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전, 부동산 매매계약을 맺었을 때만 해도 중도금과 잔금만 제때 치르면 문제 될 게 없으리라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 간단해 보이던 믿음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순간이 있었다. 매도인은 계약금을 받은 뒤, 돌연 중도금 지급일에 "나는 그런 계약을 한 적이없다"라며 꼿꼿이 발뺌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짧고 단순한 소송 하나로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소송은 끝내기까지 열두 건으로 늘어났다.
소송을 하면서 알았다. 이미 몇 차례 계약을 하고 난 뒤 트집을 잡아 계약금만 편취하는 상습범이 있다는 소문이 부동산 주변에 나돌고 있었는데. 그 상습범이 내가 계약한 이 매도인이었다. 주변 부동산들은 다들 알았지만, 나는 몰랐다. 그런 사람을 만난 내 불운에 자책하기도 했다.
부동산 거래는 계약금, 중도금, 그리고 잔금 순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계약금만 주고받은 단계에서는 법적인 보호가 거의 미비하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중도금까지 받은 상태에서 거래를 파기해야 비로소 사기죄로 다툴 수 있으니, 이 점을 교묘히 악용해 매도인은 계약금을 포기하게끔 온갖 술수를 부렸다. 나는 계약 시 지불한 큰돈을 포기할 수 없어, 법정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변호사를 선임해 본 이들은 알 것이다. 법정 용어와 절차가 얼마나 어려운지, 또 소송이 시작되면 변호사 비용이며 소송인지대, 성공보수까지 줄줄이 돈이 든다는 걸. 나는 소송 하나를 끝내기도 전에 다음 소송이 시작되어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소송을 중도에 포기해 버리면 모든 손해는 내 몫이 된다. 적잖은 금액을 계약금으로 지불한 기억이 소송을 이어가게 하였다.
소송을 하면서, 매도인은 공탁된 중도금과 잔금마저 찾아가 놓고 등기를 넘겨주지 않았다. 그래서 부동산 등기이전 청구 소송을 시작했고, 그 뒤로 연이은 열한 건의 소송이 더 이어졌다. 등기우편물이 매일같이 집으로 날아왔다. 우편물만 봐도 진저리가 났다. 정신과 체력이 모두 빠져나가던 그 시기를 생각하면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그때 변호사의 말 한마디가 지금도 생각이 난다. “지금까지 매도인이 이런 식으로 계약 파기를 유도해 여러 피해자에게서 계약금을 우습게 챙겨 갔는데, 선생님께서는 한 번도 물러서지 않으니 매도인이 당황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새삼 억울함과 분노가 교차했었다. ‘그래, 이대로 물러날 수야 없다.’ 마음을 다잡았고, 그 후 2년 반 만에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재판부는 패소한 매도인이 모든 소송 비용과 변호사 비용을 물어주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그 돈을 받으려면 또 다른 소송을 해야만 했다. 이미 더 이상 싸울 기력도, 감정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 정도로 모든 게 마무리된 것만 해도 다행한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소송이란 늪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는 결코 도중에 발을 뺄 수가 없다. 세상을 살면서 “법원, 언론, 병원은 가능한 한 멀리하라”는 말이 있는데, 그 뜻을 실감했다.
그리고 마지막 어 했던 변호사의 말이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법을 지키면 변호사며 판사들은 할 일이 없어요. 결국 누군가 죄짓고 분쟁을 일으켜야 법원과 변호사 업계가 돌아간다는 게 씁쓸하죠.”
요즘도 가끔 집에 날아오는 등기 우편물에 놀라던 버릇은 여전히 남았다. 열두 번의 소송 도중에 그 낯선 우편물이 어찌나 두렵게 느껴졌든지. 막상 해결이 됐어도 지난 기억은 그대로 지워지지 않는 게 인생이라는 걸 또 한 번 깨달았다.
부동산 거래는 수억에서 수십억까지 오가는 개인으론 큰돈이 오가는 일이다. 이를 악용하는 ‘사기꾼’이 늘 도사리고 있으니, 누구라도 조심해야만 한다. 이걸 다 겪고 나니,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했을까 억울하기도 하지만, 상대를 잘못 만나면 결국 법 앞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내 경험은 ‘미친개에게 물린 셈 치자’며 잊어버리기엔 너무 커다란 교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