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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의 삶을 살아야겠다

by 김성훈



이제는 가족들에게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요즘 들어 더 자주 생각한다.

지난달, 둘째 아들 생일날 반포 한강변레스토랑에서 가족들과 저녁을 먹던 자리에서

큰아들에게 “뭐든 하려면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도록 해라”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은 평생 아버지로서 해온 당연한 충고였지만, 돌아온 대답은 예상과 달랐다.

“아버지, 저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어요. 도대체 제가 뭘 안 한다고 매번 그렇게 말씀하세요?”

그 말에 순간 당황했고, 아내와 둘째 아들 며느리들도 서로 눈치를 보며 조용히 분위기를 살폈다.

원래는 응원하려고 한 이야기였는데, 아들에게는 잔소리였고 시대착오적인 이야기로 들렸던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앞으로는 말을 조심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그 뒤로도 비슷한 말을 몇 번이나 더 하고 말았다.


우리 세대는 베이비부머 세대로 산업화 시대를 살았다. 80~90년대에는 직장도 많았고, 건설·제조업 현장에서는 인력이 모자랄 정도였고, 부동산·주식·청약을 통해 노력만 하면 자산을 마련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 나라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니 집값도 자연스럽게 올랐고, 월급을 조금씩 모아도 내 집 마련이 가능했다.

그 시대를 살아온 나는 지금도 그 기준으로 세상을 보고, 내 경험을 자식에게 전하려고 한다.

그 마음 자체는 틀리지 않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아내도 항상 말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클럽 다니며 사고 치는 사람들도 많다는데, 우리 아들들은 손주들과 정말 성실하게 잘 살고 있어요.”

그 말이 사실이다. 큰아들은 내곡동에, 둘째는 분당에 살면서 두 집 모두 손주가 있고, 가족의 생일이면 항상 여덟 명이 모여 저녁을 먹는 화목한 집안이다.

아들 며느리 모두 손주들을 키우며 건전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나는 그저 내가 살아온 기준만 내세워 “열심히 해라, 최선을 다 해라”라는 말을 반복해 왔던 것이다. 그러니 아들 입장에서는 기운 빠질 만도 하다.



세대가 다른 만큼 관점도 다르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까지 겪으며 가난 속에서 대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시절을 살았다. 우리 아버지는 집에서는 근엄하시고, 자식들과 자주 대화할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가난한 시절 가장으로서 집안의 짐을 지고 산 분이었다.

반면 우리는 산업화 시대의 성장과 기회를 몸으로 경험하며 살았다. 회사 다닐 때는 업무와 프로젝트를 통해 인맥도 많아지고, 기회도 많았다. 지금 돌아보면 참 운이 좋은 세대를 산 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레 자식들에게도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하게 되었고, 그것이 잔소리로 들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는 우리가 살던 시대와는 많이 다르다.

국가 경제는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고, 아파트 값은 몇십 년 사이 어마어마하게 올랐으며, 월급을 모아 집을 산다는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글로벌 기업들이 승자독식 구조로 시장을 독점하고,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AI·반도체·바이오 같은 초격차 산업이 미래를 이끈다.

우리는 스마트폰이 없던 시대에서 스마트폰과 함께 성장했지만, 젊은 세대는 스마트폰과 함께 태어났고 세상을 보는 방식 자체가 우리들과는 다르다.

그러니 내가 살아온 경험을 그대로 들이대면 당연히 공감이 되지 않는다.



기술의 발전이 기성세대에 주는 ‘불편한 편리함’

지난달 집에서 최근 타던 차를 같은 메이커의 전기차로 바꾸면서 출고 사무실에서 설명을 들었을 때, 1시간 넘게 앱 설치, 로그인, 비밀번호 설정을 해야 했다. 그때 출고 담당자가 말했다.

“같은 연령대 분들은 설명을 듣다가 그냥 포기하고 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스마트 폰으로 잘하시니 정말 다행입니다”

웃으면서 들었지만, 마음 한편이 씁쓸했다.

나름 스마트기기를 제법 다룬다고 생각했지만, 기술 속도는 이미 따라가기 벅찰 만큼 빨랐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 설명하자 아내는 가만히 듣고는 말했다.

“나는 이 차 안 몰아요. 너무 복잡해서 운전할 엄두가 나질 않네요.” 그날 이후로 아내는 차 운전을 그만두었다.

기술의 편리함이 아내에겐 불편함이 되었다.

요즘은 은행 업무를 보는 것부터 열차표를 사는 것까지 이제는 모두 스마트폰으로 해야 하는 세상이다.

대면 서비스가 줄어들고, 편리함이 오히려 우리 같은 시니어에게는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그렇기에 젊은 세대의 노력과 어려움을 우리가 정확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세상이 너무 빨라졌고, 그 속도를 매일 감당하며 살아가는 것이 요즘 세대다.



결국 문제는 ‘말의 온도’였다.

나는 나름대로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한 말인데, 그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말보다 행동, 조언보다 태도, 잔소리보다 공감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스스로 느낀다.

가족은 가까운 만큼 상처도 크게 받을 수 있다.

은퇴 후 가족과 평온하게 지내려면 서로의 삶을 존중하고, 욕심을 내려놓고, 선을 넘지 않고, 말의 무게를 조절해야 한다.

은퇴 후 삶에서 중요한 것은 건강, 시간 활용, 자기 계발도 있지만, 무엇보다 가족과의 관계를 지키는 일이다.

가족이 불편해하면 아무것도 의미가 없다.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의 아버지로 살아야겠다.

이제 나는 ‘가르치려는 아버지’보다는

‘조용히 지켜봐 주는 아버지’,

‘필요할 때 힘이 되어주는 아버지’,

‘한 걸음 물러서는 어른’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투를 낮추고, 눈높이를 낮추고, 미소를 띠고, 공손하게 대하며, 젊은 세대의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세대 차이는 당연한 것이고,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은 윗세대가 먼저 해야 할 일이다.

그렇게 한다면 나는 가족에게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 내가 살아야 할 가장 현명한 시니어의 삶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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