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다녔던 직장을 퇴직하고 어느덧 만 나이로 60을 넘기고 나니, 어느 순간부터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에게는 그렇게 중요해 보였던 일상들이 사실은 스쳐 지나가는 삶의 일부였다는 걸 알게 되었고, 무관심하게 지나쳤던 것들이 오히려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무엇인가를 가져야만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욕망도 어느새 반쯤으로 줄어든 느낌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는 60세를 넘긴 노인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환갑은 장수한 어른을 위한 큰 잔치였고,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는 일에도 큰 부담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100세 시대다. 중년이 된 자녀와 부모가 함께 늙어가는 시대다. 부모는 자녀에게 투자하느라 못 살고, 자녀는 부모를 부양하느라 또 못 사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렇기에 지금의 60세 이후는 더 이상 ‘쉼’의 시간이 아니다.
계속해서 경제활동과 사회활동을 이어가며 나이 들어야 하는 시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마음속에 하나의 로망이 생긴다. 중년 이후에도 운(運)이 잘 풀리는 삶을 살 수는 없을까.
은퇴는 직업에서 물러나는 일이지, 인생에서 물러나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은퇴를 앞두고도, 혹은 은퇴를 하고 나서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깊이 고민하지 못한다.
시간은 많아졌지만 방향 없는 자유는 오히려 불안이 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은퇴 후 중년은 위기가 아니라 또 하나의 기회이며,
행복보다 의미를 추구하면 결국 두 가지를 함께 얻을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인생에는 흔히 ‘대기만성형’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초년에는 빛을 보지 못했지만 중년 이후 성공과 함께 삶이 윤택해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때를 기다리며 숱한 좌절과 실패를 견뎌냈고, 결국 삶의 후반부에 더 단단한 모습으로 서게 되었다.
중년 이후 운(運)이 잘 풀리는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된 삶의 태도가 있다.
그들은 먼저 평정심을 잘 유지한다.
옛말에 ‘소년등과일불행’이라는 말이 있다. 젊은 나이에 출세하면 오히려 불행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요즘 인생은 일모작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모작, 삼모작의 시대다. 초반이 좋았다고 끝까지 잘된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인생 말미까지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그들은 말의 힘을 본능적으로 안다. 긍정적인 언어는 신선한 산소처럼 나와 타인을 살리고, 무심코 내뱉은 부정적인 말은 결국 관계와 운을 해친다.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사실을 몸으로 알고 산다.
삶의 태도는 이타적이다.
이타적이라는 것은 나의 소중한 것을 기꺼이 내어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초년에는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선의와 배려, 기부는 인간관계의 장기 투자다. 대기만성형 사람들은 이타성의 본질을 정확히 알고 있다.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풀었을 때, 그것은 언젠가 반드시 돌아온다.
그들은 젊은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
젊음은 그 자체로 에너지다. 중년 이후 잘되는 사람들은 젊은이들의 도전정신과 신선한 아이디어를 높이 평가한다. 연륜과 패기가 만날 때, 그 시너지는 생각보다 크다.
또 하나 공통점은 독서를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독서는 모르는 지식을 찾아 연결하는 작업이다. 사람과 사람, 과거와 미래, 오늘과 내일을 잇는 과정이다. 무지는 인간에게 가장 큰 고통이지만, 독서는 그 무지를 깨뜨려 삶의 지도를 손에 쥐게 해 준다.
변화에 대한 태도도 다르다.
중년 이후 운이 잘 풀리는 사람들은 변화를 쉽게 받아들인다. 세상은 늘 변하고 인생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러나 변화에 주체적으로 대면할 때, 인생은 다시 내가 계획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중년 이후의 삶에서 부부관계는 다시 정비되어야 한다.
사소한 이야기라도 자주 나누고 “고마워”, “수고했어” 같은 말을 아끼지 않는다. 함께할 시간을 만들고, 새로운 취미를 함께 시작하며, 서로의 개인 시간도 존중한다. 감정이 격해질 때는 잠시 멈추고, 문제를 지적하기보다 해결 방법을 함께 찾는다. 과거의 실수를 반복해 꺼내지 않는다.
가족과의 관계 역시 중요하다.
은퇴 후에는 말투를 바꾸고,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고, “나는”으로 시작해 구체적으로 부탁하며, 고맙다는 말과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서로 다른 시선을 인정하고, 감정을 먼저 나누려는 노력이 쌓이면 집 안의 분위기는 분명히 달라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마음을 다스릴 줄 안다.
읽고, 쓰고, 걷는다. 책을 통해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자신의 관심사를 탐구하며 새로운 취미를 찾는다. 혼자서도 충분히 잘 지낼 수 있는 시간을 만든다. 혼자 있는 시간이 외롭지 않은 사람은 어떤 관계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요즘은 중년 이후가 제2의 인생이라 불릴 만큼 오래 사는 시대다. 저물어가는 태양만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기에는 인생이 너무 허무하다. 무병장수를 꿈꾸던 진시황도 세월의 흐름은 막지 못했다. 우리는 100세 시대의 삶에 대해 배운 적이 없다. 그러나 준비하지 않는다면 인생의 절반은 방향 없이 흘러가 버릴지도 모른다.
아직 직장을 다닐 때는 남은 시간이 많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은퇴 후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하지만 회사를 다닐 때부터 인생 2막을 준비해야 한다.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고, 가능하면 재취업도 고려하라는 선배들의 조언은 모두 경험에서 나온 말이다. 적성보다 지속 가능성을 따지고,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은퇴 후에는 젊은 사람들에게는 지혜로운 어른으로, 힘들 때 언제든 찾아와 의논할 수 있는 중년으로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계발을 멈추지 말아야 하고, 이웃과의 소통, 세대 간 소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에게도 아직 꿈꾸는 버킷리스트가 있다.
"내 이름이 박힌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는 것, 그리고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석 달 살기를 하며 해발 1800미터 초록의 필드에서 골프를 치는 것. 지나온 시간보다 여생이 더 짧다는 생각이 들 때면 조급함도 살짝 스친다. 하지만 이루지 못한 버킷리스트는 오늘을 살아갈 힘이 된다.
60이 넘었어도, 청년 때나 지금이나, 앞으로의 노년의 시간에서도 나는 여전히 기대와 꿈을 품고 살고 있다. 소파에만 앉아 있지 말고 끊임없이 움직여야겠다.
"누워 있으면 죽고, 걸으면 산다(누죽걸 사)"는 말처럼, 하루에 하나씩 즐거운 소일거리를 만들면 하루가 즐거워지고 마음 건강은 배가된다.
될 수 있으면 젊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젊은 기운이 삶에 유입되도록 해야 한다. 성격은 느긋하게, 태도는 여유 있게 가져야 한다. 조급한 사람은 늘 손해 보고 세상을 먼저 떠난다. 좋은 책을 가까이하면 마음이 풍요로워지고 교양이 쌓이며 품위 있는 중년이 된다.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며 대우를 바라지 말자. 어제와 오늘이 다른 세상이다. 나이가 들수록 몸가짐에 조심하고, 매일 몸을 깨끗이 해야 사람들에게 외면받지 않는다.
병을 두려워 피하지 말고, 무병을 과시하지도 말자. 지혜로운 사람과 어울려야 삶도 지혜로워진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 얼마나 가치 있게 살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 세상을 떠날 때 내가 가져갈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결국 중년 이후의 슬기로운 삶은 관계 맺기를 잘하기 위한 끊임없는 학습과 실천의 과정이다.
은퇴는 끝이 아니라, 인생의 또 다른 계절이 시작되는 문턱이다.
중년 이후의 운(運)은 우연이 아니라, 오늘의 태도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