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조바심이 문제였다.

by 김성훈


십 년 전, 양평 용문산의 아랫동네에 옛 직장 선배가 세컨드하우스를 마련했다는 소식에 모임을 하는 다섯 가족 부부가 집들이를 갔었다.

왼편으로는 용문산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집 앞에는 맑은 시냇물이 굽이쳐 흐르고, 그 너머로 곰산이 자리한 배산임수의 지형. 물 흐르는 개천가 언덕 위에 계단처럼 지어진 테라스하우스였다.

탁 트인 테라스에 서서 새파란 하늘과 용문산 계곡을 바라보면서 아내가 말했다.

“우리도 이런 집 하나 있으면 좋겠어요.”

이틀 뒤, 우리는 선배 집 옆 동의 2층 테라스하우스를 계약했다. 그렇게 시작된 용문 세컨드하우스 생활이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명절이면 가족들이 모였고, 여름이면 석양이 길게 드리워진 테라스에서 고기를 구웠고, 가을이면 단풍빛이 거실 안까지 물들었다. 겨울에 눈이 오면 용문산과 곰산이 온통 하얗게 덮여 세상이 고요해졌다. 그 아침의 포근함은 서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옛날 어릴 때 눈 온 날 아침의 눈부신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중국에서 일할 때 서울에 오면, 아내는 늘 양평에 가자고 했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용문산과 시냇물 풍광은 내 마음을 밝게 활력을 주었다. 코로나로 중국 사업을 접고 귀국한 뒤, 용문집은 나만의 아지트가 되었다. 지인들과 친구들을 불러 바비큐와 맥주를 나누고, 테라스에 앉아 인생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집은 점점 ‘나만의 공간’이 되어갔다. 가족들의 발길은 뜸해졌고, 2021년 이후 용문집은 자연스럽게 나의 서재로 변했다. 읽는 책 대부분을 그곳으로 옮기고, 테라스 쪽 거실에 책상을 놓았다. 계절과 상관없이 책을 읽고 글을 쓰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처음에는 밤늦도록 글감을 정리하고, 독서 노트를 만들고, 문장을 필사하며 새벽까지 앉아 글을 쓰기도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조금씩 달라졌다. 서울에서 바인더와 자료, 필기구를 잔뜩 챙겨 가지만 가방은 열지도 않고 소파에 앉아 TV를 보다가 돌아오는 날이 늘어났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단순했다.

나는 ‘글을 쓰겠다’는 결심은 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다. 그리고 한 번에 완성하려 했다. 완벽한 원고를 머릿속에 그려놓고,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면 스스로 실망했다. 써놓은 글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다음부터는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잘 써야 한다’는 조급한 생각이 오히려 글쓰기를 멈추게 했다.

글은 완성보다 루틴이 먼저였다.

‘일단 써보는 것’이 먼저였다. 초고는 부족해도 된다. 저장해 두고, 고치고 또 고치면 된다.

거창한 주제보다 내 삶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 그 안에서 메시지 하나를 정리하면 글은 살아난다. 그런데 나는 자꾸만 거창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올해, 나는 하루의 루틴을 바꾸었다.

글을 쓴다고 가던 용문집 대신 집 근처 서초삼산문화센터 도서실을 이용하기로 했다.

옆에 있는 구민체육센터 헬스장도 등록도 했다.

나이가 들수록 체력이 곧 생활의 집중력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용문집에는 소파와 TV가 있었지만, 도서관에는 조용한 책상과 집중만이 있다.

서초삼산문화센터는 하루에 4시간, 구민체육센터는 3시간. 하루 7시간 무료 주차. 도서관은 하루 1,500원, 헬스장은 한 달 28,000원. 이 시설에 더 좋은 조건은 없다. 최고의 가성비라고 생각을 한다.

매일 헬스장에서 운동을 2시간 하고, 도서관에서 4시간 글을 쓴다.

요즘 하루 한 꼭지씩 글을 써기로 마음을 먹고 그렇게 이행하고 있다.


투입 시간이 아니라 산출로 목표를 세웠다. “세 시간 쓰겠다”가 아니라 “세 페이지 쓰겠다.” 다짐도 했다.

글의 아이디어는 쓰다 보면 나온다.

누구나 직접 써보지 않은 생각은 다 그럴듯해 보일 뿐이다.

요즘 매일 도서관에서 글을 쓰다 보면 피로감이 온다. 때로는 내가 바보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 감정이야말로 진짜로 몰입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글쓰기를 퍼즐을 맞추듯, 한 조각씩 이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글의 구조가 보인다.

글쓰기는 연속되는 연습이다. 쓴 글은 고치고 또 고치면 된다. 초고가 대단한 사람은 없다. 차이는 퇴고의 횟수뿐이다.


좋은 글은 쉽고, 빠르고, 정확하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문장은 단어의 나열이 아니라, 의미의 전달이어야 한다. 조급함을 버리고, 꾸준히 써야 한다.

글쓰기는 마라톤과 같다.

나는 은퇴 후 글을 쓰겠다고 회사생활을 하면서 20여 년 전부터 글감을 모았다.

은퇴 후 중앙대 글쓰기 과정도 마쳤다. 작년 초에는 평소 아는 출판사 사장님과 약속도 했다.

전체글의 목차도 짜고, 방향도 정했다. 그런데 일 년이 지나도 마무리를 못 했다.



이제는 알았다. 문제는 글쓰기 재능이 아니라 루틴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은퇴 후 글쓰기는 나이와 무관하다.

"닳아 없어지는 것이 녹슬어 없어지는 것보다 낫다"는 소크라테스의 원숙한 철학은 70세 이후에 이루어졌다.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벽화를 완성한 것은 90세 때였다.

대문호 괴테는 대작 "파우스트"를 60세에 시작하여 82세에 완성했다.

요즘같이 신중년 시대인 지금, 내 나이가 몇 살인지가 중요하지 않다.

모지스 할머니는 75세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101세까지 많은 그림을 그린 할머니 화가다.


인생에 있어서 늦은 때는 없다.

바로 지금이 시작하기 딱 좋은 시간이다.

지금이 남은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순간이니까 무엇이든지 시작하기 딱 좋은 시간인 것이다.


올해 들어 나는 계획을 세웠다.

헬스장에서 2시간 운동하고, 문화센터 도서관에서 하루 한 꼭지씩 반드시 쓰겠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끈기 없이는 놀라운 성공도 없다.

세상은 인내하는 사람에게 기회를 준다.

몇 년간 미루어왔던 글쓰기 버킷리스트도 이제는 약속을 지키고 싶다.

주변 지인들과 가족들에게 했던 말처럼,

올해는 반드시 내 이름이 박힌 책 한 권을 완성하겠다.


은퇴 후 용문집에서 시작한 글쓰기는, 올해 하루의 루틴으로 새로 시작한 문화센터 도서관에서 완성되기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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