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20년 2월 20일, 중국 중경에서 서울 집으로 돌아왔다.
구정 설날을 맞아 열흘 일정으로 잠시 쉬러 온 귀국이었다. 중국에서 15년째 주재근무와 개인 사업을 병행하며 건설 일을 하고 있었고, 다니던 회사를 퇴사한 뒤에는 중국 건설업체와 합작사업(J.V)을 하며 바쁘게 현장을 오가며 일을 하던 때였다.
구정을 보내고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 준비 중이던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진행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서울에 온 지 일주일쯤 지났을 무렵,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 소식이 연일 뉴스에 나왔다.
춘절을 맞아 대이동 하던 중국 전역이 혼란에 빠졌고, 내가 머물던 중경 역시 우한과 멀지 않은 지역이라 확산 속도가 빠르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열흘이 지나 중국으로 돌아가려던 일정은 미뤄졌고, 3월이 되자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도시별 이동금지, 아파트 봉쇄, 외국인 입국 시 3주 격리 조치까지 발표되었다.
기다리면 잠잠해질 줄 알았던 상황은 여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대도시는 계속 봉쇄되었고, 이동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결국 9월, 중국의 사업 파트너에게 연락해 숙소에 남아 있던 짐을 한국으로 보내고 사업을 정리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렇게 2005년부터 시작된 중국에서의 생활은,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15년 만에 마무리되었다. 귀국이었지만, 준비되지 않은 귀국이었다.
예순을 넘긴 나이에도 중국에서 건설사업을 하며 서울·중경·상해·천진을 오가고, 일주일에 다섯 번 이상 비행기를 타던 생활에서 갑자기 집에 머무는 삶으로 바뀌자, 나도 가족도 적잖이 당황했다.
이전에는 가장이 집에 오면 며칠 머물다 다시 중국으로 떠나는 생활 패턴이었는데, 몇 달째 집에 있으니 일상이 흔들렸다. 식사부터 외출, 이동까지 내가 걸림돌이 되는 느낌도 들었다. 나 역시 집에만 있으니 갑갑했고, 가족들도 불편함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집 안에 머무르기보다, 집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만들기로 했다.
경북 구미 진평동 건물 1층에 있던 미장원을 내보내고, 둘째 아들과 함께 프랜차이즈 커피점을 하기로 커피점 본사와 계약을 했다. 한 달간 서울과 구미를 오가며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해 커피숍을 열었다. 뒤이어 이태원 건물 3·4층을 프랜차이즈 북카페로 바꾸기 위해 북카페 본사와 계약하고, 두 달 동안 내부 공사를 직접 관리해서 또 하나의 멋진 북카페를 완성했다. 그렇게 일을 만들어 석 달은 다시 ‘일하는 사람’으로 지냈다.
서울에 머물게 되면서,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 지인들의 모임에도 나가기 시작했다. 골프 모임, 둘레길 걷기 모임, 예전 회사 OB모임에도 정기적으로 참석했다.
중국 주재근무로 중단했던 대학원에도 재입학해 세 학기를 수업하고 졸업했다. 동문 세미나와 골프 모임을 통해 새로운 인연도 이어졌다.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던 버킷리스트도 하나씩 실천했다.
은퇴 후 글쓰기, 그리고 ‘내 이름이 박힌 책 한 권 출간하기’. 중앙대 글쓰기 과정을 수료하고 브런치에 작가란을 만들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평일에는 도서관을 자주 찾아 책을 읽고 글을 썼고, 서점에서 사 모은 책은 이제 평생 다 읽지 못할 만큼 쌓였다.
지인들이랑 한 달에 닷새 이상 둘레길을 걷고, 하루만 보 걷기를 꾸준히 했다. 유튜브로 요리를 배워 아내에게 음식 시식을 시켜주었고, 스마트폰 사용법을 익혀 키오스크 주문, 앱을 통한 국내외 직구, 커피와 음식 배달, 영화 예매, 항공권 예약까지 직접 하게 되었다.
양평 용문에 있는 테라스 하우스는 책 읽고 글 쓰는 나만의 아지트가 되어, 혼자만의 피난처로 자주 찾는 공간이 되었다.
서초동 44평 아파트 인테리어도 비용을 줄이기 위해 직접 관리했다. 바닥, 벽지, 화장실 위생기, 싱크대, 전기 공사를 작업자와 자재를 직접 구해 진행했고, 수천만 원을 절약했다.
작년 여름 무더위 속에서 나만큼 고생한 사람도 드물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만큼의 보람도 있었다.
8년째 토요일이면 모든 일을 내려놓고 손주들과 하루를 보냈다. 그 시간은 무엇보다 즐겁고 행복했다.
브런치와 블로그에 올린 글은 두 곳 모두 팔로워 1,000명을 넘겼다. 감사한 일이다.
스마트폰의 다양한 기능을 활용해 아내와 자유여행으로 유럽의 프랑스 이태리 오스트리아 폴한드 헝가리 여섯 나라를 둘이서 다녀왔고, 알래스카 크루즈 여행도 했다.
가족 모두를 데리고 코타키나발루와 세부 자유여행도 다녀왔다. 은퇴 후에도 일 년에 여섯 번 정도 해외여행을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오랜 해외 생활 덕분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퇴자의 삶은 어딘가 허전했다.
그래서 나는 ‘슬기로운 은퇴 생활의 기술’, 지속 가능한 루틴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루틴이 있다는 것은 인생 2막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사소하더라도 지속 가능한 것이 중요하다.
인간에게 일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일은 생명수이자 삶의 리듬이다.
올해 들어 나는 세 가지 루틴을 만들었다.
헬스클럽 운동, 도서관에서 책 읽고 글쓰기, 하루 한 꼭지 글 쓰기.
이 세 가지를 한 달 넘게 지켜오고 있다.
오전에는 집안일과 개인 일을 보고, 점심은 가족과 천천히 먹는다. 오후에는 문화센터 도서관에서 네 시간, 구민체육센터 헬스클럽에서 세 시간 운동을 한다.
약속은 이 루틴을 침범하지 않게 잡는다. 그렇게 지내면 밤에 잠도 잘 온다.
은퇴자의 하루는 ‘일’이 아니라 ‘삶의 리듬’으로 계획해야 한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중국에서 귀국 후 은퇴를 하고 나서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시간이 보내는 방식이었다.
한창 일을 하던 젊을 때의 하루는 늘 ‘일’ 중심이었다. 출근 시간에 맞춰 일어나고, 회의와 보고에 하루가 지나갔으며, 저녁이 되면 그날의 피로를 견디는 것이 전부였다. 시간은 내가 다루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밀어붙이는 존재였다.
그러나 은퇴 후의 하루는 달라졌다.
이제 시간은 더 이상 ‘일의 단위’가 아니라, 삶의 리듬이 되었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느냐보다, 어떤 흐름으로 반복하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된 것은 수면과 기상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잠을 줄이는 것이 부지런함처럼 여겨지던 때도 있었다. 밤늦게까지 일하고, 새벽같이 일어나는 것이 능력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다.
그러나 지금은 안다. 하루를 제대로 지내기 위해서는 먼저 잘 자고, 같은 시간에 일어나는 것이 기본이라는 것을. 7시간 이상의 수면, 일정한 기상 시간은 하루 전체의 균형을 잡아주는 중심이었다.
몸을 움직이는 일도 마찬가지다.
현역 시절에는 ‘운동해야지’라는 생각만 있었지, 꾸준히 실천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은퇴 후에는 매일 걷기를 하고, 가볍게 숨이 차는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생활 속에 넣었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았다. 중요한 것은 매일 몸을 쓰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운동을 하니 몸의 움직임이 가벼워졌고, 하루의 리듬이 자연스럽게 살아났다.
식사 역시 건강과 함께 하는 과정이었다.
예전에는 약속과 회식에 맞춰 끼니를 해결했다면, 이제는 가족과 함께 채소와 단백질 위주의 식단을 정해 규칙적으로 먹는다. 건강한 식사는 특별한 결심이 아니라, 반복되는 습관이 되어야 오래간다는 것도 그제야 깨달았다.
아침 시간은 일부러 조용하게 지내도록 배치했다.
책 읽기, 글쓰기, 잠깐의 SNS 소통 등 시간을 아침에 배치했다. 하루가 시작되기 전, 생각을 정리하는 이 시간이 은퇴 후 삶의 중심이 되었다. 예전에는 늘 급하게 흘려보내던 시간인데, 지금은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계획 속에 넣었다.
은퇴하면 인간관계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고들 말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정말 그렇게 된다.
그래서 친구들과의 만남, 동호회, 모임 시간을 일부러 일정에 넣었다. 사람과의 대화, 웃음, 안부 인사는 삶의 활기를 유지해 주는 중요한 요소였다.
나는 은퇴 후에도 스스로에게 작은 ‘출근’을 만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로 가는 행동을 반복하기로 루틴을 만들었다. 꼭 회사가 아니어도 좋았다. 도서관, 헬스장, 둘레길, 나만의 아지트. 이 반복이 하루를 느슨하게 풀어지지 않는 시간으로 만들었다.
다이어리는 여전히 내 일상과 함께 했다.
운동, 식사, 독서, 글쓰기 같은 일들을 언제 할지 미리 적어두고, 가능하면 지키려고 했다. 계획은 나를 압박하는 도구가 아니라, 하루를 흘려보내지 않게 해주는 약속이었다.
그리고 나만의 아지트 공간과 버킷리스트를 만들었다.
큰 꿈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작은 목표를 세우고, 한 단계씩 실행하는 과정 자체가 동기였다. 오늘 할 수 있는 일 하나, 이번 달에 해볼 일 하나가 은퇴 후의 삶을 앞으로 움직이게 했다.
돌이켜보면, 은퇴 후 하루 루틴의 핵심은 거창한 계획이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언제나 지속 가능성이었다.
작아도 좋으니, 오래 할 수 있는 것. 하루 이틀 반짝하고 끝나는 다짐이 아니라, 조용히 반복되는 습관.
이제 나는 시간을 ‘일’로 채우지 않는다.
시간을 삶의 리듬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 리듬 속에서 하루는 다시 의미를 얻고, 은퇴 후의 삶은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다.
이와 같이 하루의 루틴을 꾸준히 유지하면, 인생 2막은 다시 멋진 인생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한다면, 지속 가능한 루틴이 답이다.
지금 나는 이 세 가지 루틴으로 하루를 채우며 살아가고 있다. 하루가 일상이 되고, 일상이 쌓여 삶이 되는 지금, 이 루틴이면 충분히 행복한 인생 2막이라 생각하면서 은퇴 후의 삶을 단단하게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