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by 김성훈



내일모레면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인 설날이다. 음력 정월 초하루, 구정이자 원단(元旦). 한 해의 첫날을 뜻하는 날이다.

중국은 양력 1월 1일을 ‘원단’, 음력 1월 1일을 ‘춘절’로 구분해 지낸다. 원단(元旦)은 현대적·간소한 축하, 춘절(春節)은 전통적·가족 중심의 명절로 성격이 우리와는 다르게 음력설을 지낸다.


우리에게 설날은 가장 큰 명절로, 가족과 조상을 기리고 새해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날이다. 차례와 성묘로 조상을 기리고,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며 덕담과 세뱃돈을 주고받는다. 떡국을 먹으며 한 살을 더 먹는 의미를 되새기고, 윷놀이와 연날리기, 제기차기를 하며 기족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보낸다. 예전에는 설날 아침 복조리를 걸어 복을 기원하고, 호랑이 그림을 붙여 액운을 막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설날은 조금 다르다.

난생처음 형제 가족이 모두 모이지 않고, 각자 가족들끼리 보내는 설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며칠째 마음이 뒤숭숭하다.

어린 시절 나는 할머니와 부모님이 계시는 대가족 집안에서 자랐다. 할머니와 부모님, 친척들이 며칠 전부터 분주하게 명절 준비를 했다.

설빔을 입고 친척 집을 오가며 세배를 드리고 덕담을 나누며 새해를 시작했다. 그 풍경은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삶이었고, 당연한 명절의 모습이었다.


세월이 흘러서도 지난해 설날까지 우리 삼 형제 가족은 늘 함께 모였다. 부모님 생전에는 대구 부모님 댁에서 형제 가족이 모였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형님 집에서 설을 보냈다.

자식들이 결혼하고 손주, 며느리까지 모이면 20여 명이 되어 형님집에서 명절을 보내기에는 조금 불편함이 있었다. 그래서 십여 년 전부터는 서울과 대구의 중간쯤인 충주 수안보와 월악산 인근의 넓은 펜션을 얻어 어머니를 모시고 설과 추석 두 명절을 가족들이 모여 함께 보냈다.



대구 형님 집이 아닌 펜션에서 모이게 되자 가장 먼저 형수가 반겼다. 결혼 후 맏며느리로 명절과 매년 네 번의 기제사를 지내며 음식 준비와 형제 가족들의 잠자리까지 챙기느라 늘 수고가 많았다.

그런데 십여 년 전부터는 삼 형제가 명절 음식 준비를 각자 분담해 가져오고, 잠자리는 펜션을 이용하니 형수의 얼굴과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좋아라 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렇게 설날과 추석을 보내다가 5년 전 어머니께서 88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이후에도 형님과 형제 가족들이 함께 월악산과 수안보 펜션에서 만나 명절을 보냈다. 그러나 20명이 함께 지낼 수 있는 펜션을 예약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대부분 15명 내외만 가능해 지난 추석에는 경기도 여주 신륵사 인근 펜션에서 명절을 보냈다. 형님 부부만 대구에서 여주까지 올라오고, 나와 막내 동생 가족, 우리 아들 둘과 형님 아들 딸은 서울에 있으니 여주가 오히려 편리하기도 했다.


지난해 가을 추석 모임에서 형님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명절마다 다 같이 모이는 것이 이동도 불편하고 건강에도 무리가 된다며, 설과 추석 중 한 번만 다 같이 모이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건강이 예전 같지 않다고도 했다. 우리는 상의 끝에 설날은 각자가 가족들과 보내고, 추석에는 지금처럼 모두 모이기로 했다.


그런데 그 말을 꺼냈던 형님이 지난해 12월 말, 급성 폐렴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70대 중반까지 등산도 다니며 건강하게 지냈는데, 오랜 세월의 음주가 결국 문제였다고 했다. 나는 40대 초반의 장조카와 함께 장례를 치르며 형님이 지내오던 집안 제사에 대해 하나씩 이야기해 주고, 형수와도 상의했다.



그리고 이번 설날이 다가온 것이다.

부모님도 안 계시고, 형님도 안 계신 첫 설날이다. 둘째인 내가 이제 집안의 연장자가 되었다.

예전에는 명절날 참석과 경제적 지원만 하면 되었지만, 이제는 형제와 일가친척의 대소사를 챙기고 연락해야 한다. 조카와 아들들에게 명절과 제사에 대해 하나씩 설명해주어야 한다.

부모님과 우리 세대까지는 사촌, 육촌, 팔촌까지 집안 대소사에 연락하고 만남을 가졌지만, 장조카와 우리 집 아들 둘은 사촌까지만 알고 그 외 친척들은 모른 채 살아왔다. 우리는 부모를 섬기는 마지막 세대이고, 자식들과는 각자도생 하는 첫 세대라는 생각이 든다.


세월이 바뀌며 명절의 모습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현대 사회의 명절 풍습은 전통적인 ‘조상 공경·가족 화합’의 분위기는 유지하면서도, 도시화·산업화로 인한 생활 패턴 변화에 맞춰 ‘휴식·소통·여행’ 중심으로 유연하게 변형된 모습으로 바뀌어 간다.

전통적으로 설날에는 차례·세배·떡국 같은 의례가 핵심이었으나, 요즘에는 차례상 간소화와 비대면 인사가 늘어나는 등 모이는 형태가 줄어들어가고 있다.

예전보다 차례를 간소화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모든 음식을 정성껏 준비하기보다는 간단하게 몇 가지 기본 음식으로 대체하는 경향이 있다.


세배 대신 문자나 SNS를 통해 덕담을 나누는 경우가 많아지고. 직접 만나기 힘든 가족들이 디지털 소통으로 하기도 한다.

예전같이 가족들이 함께 모여 윷놀이 게임을 하는 대신, 개별적으로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로 인해 가족 간의 상호작용이 줄어드는 단점이 따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 형제 가족들은 매년 함께 모여 이틀을 펜션에서 보내며 제사와 세배, 덕담을 나누고 윷놀이로 웃음을 나누었다.

그래서 이번 설날이 더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진다.

평생 처음으로 우리 가족들만의 설날을 보낸다고 생각하니, 지금까지 살아오며 보냈던 수많은 설날의 풍경이 떠올라 마음이 복잡해졌다.

아내는 내 마음을 눈치채고 혼자라도 대구 형님 집에 가서 장조카와 제사를 지내고 오라고 했다. 그러나 설날에 아들 둘과 며느리, 손주들이 우리 집에 오는데 나만 대구에 내려가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나도 이제 분가해 제사를 지내며 조상이 되어가는 과정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이런 명절을 처음 맞이하니, 얼마 전 형제들이 각자 명절을 보낸다고 얘기를 한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그 친구도 몇 해 전부터 형님의 제안으로 명절은 각자 지낸다고 했다. 친구도 명절에 가족들만 보내게 된 게 처음이라 다니던 절의 주지 스님에게 물어보았더니, 스님께서 각자가 간단히 음식을 준비해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것도 좋은 예라고 했다 한다. 부모님과 조상님의 기일에는 형님 집에 모이고, 설날 아침에는 각자의 집에서 조상님께 절을 드린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아내에게 말했다. 설날 아침 떡국과 간단한 음식을 준비해 아들, 며느리, 손주까지 전 가족이 함께 조상을 기리는 절을 하자고. 아내는 수긍하며 그렇게 하자고 했다.



해외 근무를 했던 몇 해를 제외하면 평생 명절이면 부모님과 형님 집에서 보냈던 설날이었다.

아내도 결혼 후 40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았던 설날 일정이 처음으로 달라지는 것이다. 아내도 속으로는 낯설었을 것이다.


이제는 예전과는 달라진 명절 속에서도 가족과 마음이 닿는 시간을 만들고, 각자의 시간을 존중하며 유연하게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다. 직접 만나지 못해도 영상통화와 메시지로 덕담을 나누고, 과식과 스트레스를 줄이며 건강하게 보내는 명절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장거리 귀향 대신 마음으로 부모님과 조상님을 기리며 각자의 자리에서 뜻깊게 보내면 가족의 유대는 이어질 것이다.

같이 모여 하루를 보내던 예전과는 달라 서운함이 생길 수 있지만, 모든 것은 가족 간의 합의와 배려 속에서 이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도 이제 세상의 변화와 함께 명절을 지내는 생각도 바꾸어야 한다.

내가 아무것도 바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내 생각의 변화에서 가장 힘든 것은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가지고 있던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부모님과 형님이 있을 때 명절을 지내던 과거의 명절 분위기에 내가 집착하는 것은 새로운 것을 낯선 것과 불편한 것으로 받아들인 것일 수도 있다.

결국 가족들과의 명절 모임에 변화보다는 동일힐 방법에 의존하게 되었던 게 내 생각이었다. 이번 설날을 앞두고 새삼 깨닫는다.


이번 설날에는 형제 가족들에게 명절의 짧은 메시지를 보내야겠다

“즐겁고 행복한 설날이 되세요”,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이와 같은 인사말로 따뜻한 명절 덕담을 보내고 조상님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되새기며, 형제 가족들 모두가 의미 있게 보내는 명절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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