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낭비하고 있었다

by 김성훈



2주 전,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지인들과의 점심 모임에 다녀왔다.

그날은 평소 모임 멤버들 외에도 옛 직장에서 함께 근무했던 한 선배와 함께하는 자리였다.


오랜만에 만난 선배와 점심을 함께하며 지나온 세월의 이야기와 지인들과의 근황을 나누다 보니 두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예전 직장 시절의 일들도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함께 일하며 보냈던 시간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선배는 휴대폰을 꺼내 일정표를 확인하며 말했다.

“이제 20분쯤 뒤에는 일어나야겠네.”

식당에서 지하철역까지 걸리는 시간과 지하철로 다음 목적지까지 가는 이동시간이 일정표에 적혀 있었다.


우리는 궁금해졌다. 혹시 특별한 약속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선배는 웃으며 말했다.

“특별한 약속은 아니고. 매일 해야 할 일들을 시간으로 정리해 두고 적어놓는 거야.”


선배가 보여준 휴대폰 메모장에는 그날 해야 할 일과 약속들이 시간대별로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지난 한 주의 일정들이 오전과 오후 시간별로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하루의 일정이 마치 일기처럼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선배는 이렇게 설명했다.

“나이가 들면 해야 할 일들을 기억하고 지내기가 쉽지 않아. 자꾸 잊어버리기도 하고 놓치는 일도 생기지. 그래서 전날 미리 다음 날 해야 할 일들을 시간대별로 메모해 두는 거야. 그렇게 하면 머릿속이 한 번 더 정리가 되고 하루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그리고 무엇보다 좋다는 점은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일상의 루틴으로 하루 시간을 계획해 두면 지루하게 흘러가는 시간이 줄어들고, 젊은 시절처럼 활기차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선배는 그렇게 몇 년째 하루 일정표를 작성하며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현직에서 은퇴한 지 십여 년도 더 지난 지금도 선배의 하루는 놀라울 만큼 촘촘하게 채워져 있었다.

예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업무와 관련된 계획을 세우고 진행을 하던 시절이 연상되는 그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나는 선배의 일정표를 읽어 보며 하루의 시간관리를 멋지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선배처럼 시간을 가장 잘 사용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시간을 가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은퇴 후 하루가 길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직장을 다닐 때는 출근과 업무, 약속과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하루의 구조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은퇴를 하면 그 구조가 사라지면서 시간의 흐름이 모호해진다.

또한 직장 중심의 인간관계가 줄어들면서 활동의 빈도도 낮아지고, 하루를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막막해지기도 한다.


준비가 부족하면 하루가 길게 느껴지고, 저녁이 되면 “오늘은 무엇을 했지?” 하는 허전함과 후회가 남기도 하는데 그날 선배의 메모에 적힌 일정표는 하루의 시간을 내가 만들어간다는 자신감으로 가득한 모습이었다.



결국 은퇴 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을 스스로 설계하는 능력이다.

하루의 일정을 시간대별로 메모해 두는 작은 습관만으로도 삶의 흐름이 달라질 수 있다. 아침 산책, 운동, 독서, 사람과의 만남, 취미활동 같은 작은 일들도 계획 속에 넣어 두면 하루가 훨씬 또렷해진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채우느냐에 따라 하루의 밀도와 삶의 깊이는 달라진다.

시간은 우리가 가진 가장 귀중한 자원이다.

돈을 잃으면 다시 벌 수 있지만, 시간을 잃으면 영원히 되찾을 수 없는 것이다.

그날 선배가 보여준 휴대폰 속 일정표는 단순한 메모가 아니었다.

그것은 은퇴 이후에도 삶을 활기차게 살아가는 시간 관리의 지혜였고, 하루를 의미 있게 살아가는 하나의 삶의 방식이었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은퇴 후의 시간은 길어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채울지 계획하지 않을 때 비로소 길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은퇴 후에 종종 이렇게 말한다.

“하루가 왜 이렇게 긴지 모르겠다.”

그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직장을 다닐 때는 하루의 구조가 분명했다.

출근 시간이 있었고, 해야 할 일이 있었고, 함께 일하는 동료가 있었다. 그러나 은퇴를 하면 그 구조가 갑자기 사라진다.

일과 구조가 사라지면 시간의 흐름도 불명확해진다.

직장 중심의 관계가 줄어들고 활동의 빈도도 줄어든다. 그러다 보면 하루가 공허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해지기도 한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다 보면 저녁이 되었을 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늘 하루… 나는 무엇을 했지? 또 이렇게 하루가 지나갔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후회가 반복되면서 하루가 더 길게 느껴진다.


우리가 진정으로 소유하는 것은 시간뿐이다.

가진 것이 달리 아무것도 없는 이에게도 시간은 있는 것이다.

은퇴 후 하루가 길게 느껴지는 이유는 결국 일상의 루틴과 자기 역할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루를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시간은 무겁고 길게 흘러간다.

그러나 은퇴 후 하루를 잘 보내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선배와 같이 자기만의 시간표를 만드는 것이다.

건강을 위한 운동, 지식을 쌓는 독서와 글쓰기, 즐거움을 주는 취미, 사람을 만나는 사회관계, 그리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작은 재능 봉사.

이같이 할 일들을 메모해 균형을 이루면 하루는 훨씬 의미 있게 채워진다.

다만 너무 빡빡하게 채울 필요는 없다.

계획은 세우되 오늘을 여유롭게 즐기는 마음으로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루 24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부자에게도, 가난한 사람에게도, 젊은이에게도, 노인에게도 하루는 똑같이 스물네 시간이다.

하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모두 다르다.

어떤 사람은 같은 시간에 만 원을 벌고, 어떤 사람은 같은 시간에 천만 원의 가치를 만든다.

이 차이는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을 바라보는 생각과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내가 읽은 자기 계발서와 내 주변에 성공한 사람들의 삶을 찾아보면 공통된 습관이 있다.

첫째, 계획을 세워 시간을 관리한다.

둘째, 메모를 습관처럼 사용한다.

셋째,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한다.

시간 관리의 핵심은 거창한 기술이 아니라 작은 습관에 있다.


그래서 나는 선배의 하루 일정표를 보고 난 후 시간 일정표를 짜기 위한 내 나름대로 세 가지 기준을 생각해 보았다.

첫째, 아침에 일어나면 그날 해야 할 일 여섯 가지를 정하고 우선순위를 세운다.

둘째,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 하나에 집중한다. 여러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은 효율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더 비효율적이다.

셋째, 쓸데없는 일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것이 가장 어렵다. 쓸데없는 일이 대개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하고 맞이하는 은퇴는 시간을 잃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새로 받는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스스로가 시간을 통제해야 하는 삶으로의 전환이기도 하다.

그래서 하루를 계획할 때는 너무 촘촘하게 채우기보다는 조금은 느슨한 틀을 만드는 것이 좋다. 하루를 오전·오후·저녁으로 나누고, 일주일 단위로 운동이나 독서, 약속 같은 큰 틀을 정해 놓는 것이다.

잠자는 시간과 쉬는 시간도 일정표에 적어 놓는 것이 좋다. 그래야 휴식도 의미 있는 시간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쯤 자신의 시간을 돌아보는 것도 필요하다.

“나는 지금 시간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삶의 방향은 조금씩 달라진다.


하루는 86,400초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 모두에게 똑같이 86,400초가 배달되었다.

이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인생은 공평하지 않다. 왜냐하면 하루를 사용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토머스 에디슨은 이렇게 말했다.

“변명 중에서도 가장 어리석은 변명은 ‘시간이 없어서’라는 변명이다.”


시간은 늘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가 다를 뿐이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시간을 더 소중하게 느낀다.

특히 노년이 되면 그 마음은 더 절실해진다. 젊은 시절에는 시간이 무한히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세월이 무척 빠르게 흘러간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래서 인생 후반부에는 시간을 주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루의 8시간은 일을 하며 소득을 만드는 시간으로, 또 다른 8시간은 나 자신을 위한 시간으로, 그리고 남은 시간은 휴식과 잠으로 채우는 삶으로.


젊은 시절 앞만 보고 달려왔던 시간을 보상받듯, 이제는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쓰는 것이다. 새로운 취미를 시작해도 좋고, 자신이 가진 지식과 경험을 통해 사회와 다시 연결되어도 좋다.

그렇게 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시간은 우리를 떠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시간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날 점심 모임이 끝나고 선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식당을 나서면서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했다.

“시간은 그냥 흘러가게 두면 금방 사라져. 그래서 나는 시간을 적어 놓고 살기로 했어.”


그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하루는 모두에게 같지만, 인생은 같지 않다.

결국 은퇴 후의 인생의 차이는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는가에서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오늘 하루, 나는 이 시간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고 내 삶의 속도와 맞는 편안한 일정표 시간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어제는 내 삶의 역사였고, 내일은 알 수 없는 기다림이 있지만 오늘 하루는 나에게 주어진 선물이라 생각하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야겠다.

작가의 이전글논두렁 정기를 타고 태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