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치는 사람들은 처음 만나면 서로의 구력을 묻곤 한다. "머리 올리신 지 얼마나 되셨나요?" 이런 질문에 나는 늘 멋쩍게 "7~8년 됐습니다"라고 답하곤 한다. 실제로 골프채를 잡은 지는 30년이 되어가지만, 스코어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괜히 겸손한 척 말을 아끼지만, 속으로는 “싱글 골프”라는 꿈을 이루고 싶다는 목표가 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생전에 “세상에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 가지가 골프, 부인, 자식”이라고 했다. 심판도 없고 움직이지도 않는 공을 치는 쉬운듯한 운동인데, 공이 마음먹은 대로 날아가지 않을 때가 태반이다. 스트레스가 쌓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골프가 매력적이다. 골프는 완벽을 꿈꾸면서도 결코 완벽할 수 없는 스포츠다.
골프를 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꾼다. 18홀 기준 파 72에서 9타 이하를 더하는, 이른바 ‘싱글’ 스코어를 말이다. 그러나 이는 결코 쉬운 목표가 아니다. 연습장에 자주 들러 구슬땀을 흘리고, 주말 라운딩에서 열심히 공을 쳐봐도, 마음처럼 잘되지 않는다.
한 번은 용인인근에서 라운딩을 마친 뒤, 캐디가 건넨 스코어카드에 내 점수가 77로 기록된 적이 있다. 잘못 기록한 스코어였다. 내 생각으로는 85~87타 정도라고 여겼는데, 알고 보니 캐디가 그날의 좋은 분위기를 맞춰주느라 점수를 줄였다는 것이다. 웃어 넘기 긴 했지만, 씁쓸함이 남았다. 진짜 내 실력으로 기록한 싱글 스코어를 내려면 더 많이 연습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골프에서는 “하루 연습을 쉬면 내가 알고, 이틀을 쉬면 캐디가 알며, 사흘을 쉬면 동반자가 안다”는 말이 있다. 꾸준한 연습과 집중이 필수라는 뜻이다. 그렇지만 골프는 단순히 공을 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골프의 18홀은 인생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초반에는 기세 좋게 잘 나가다가도 중반에서 벙커나 해저드에 빠지면 흐름이 무너지고, 후반에는 만회하려다가 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골프처럼 인생도 중요한 것은 끝까지 자신의 흐름을 유지하며 최선을 다하는 데 있다.
골프는 실력만큼이나 에티켓을 지키야 하는 스포츠다. 동반자가 퍼팅을 할 때는 숨소리조차 조심해야 하고, 상대가 멋진 샷을 했을 땐 아낌없이 칭찬을 건네야 한다. 심지어 샷이 엉망진창이더라도 웃으며 라운드를 이어가야 한다.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와 배려를 잃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골프가 가르쳐주는 진정한 가치다.
이렇게 골프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사업에서는 협상의 시간이 되기도 하고, 가족들과는 유대를 다지는 시간이 된다. 가끔씩 스코어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도 있지만, 진정한 골프의 매력은 함께 걸으며 자연과 어우러지고, 상대를 배려하며 즐기는 데 있다.
주말마다 ‘명랑 골프’를 즐기며 싱글을 기록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진정한 싱글 골프는 자신의 실력으로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골프의 어려움은 통계로도 나타난다. 우리나라 골프 인구는 약 450만 명, 그중 100타 언저리 치는 사람은 절반에 달한다. 또, 소위 주말 골프들의 ‘꿈의 스코어인 90타’를 기록하는 사람은 약 25만 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만큼 골프는 어려운 운동이다. 특히 18홀 동안 108번의 번뇌를 겪으며 10.8cm의 작은 홀컵을 겨냥할 때, 탄식과 환희가 교차하는 순간을 경험한다. 이는 골프가 단순히 운동을 넘어 정신력을 겸비한 심리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프는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다. 노년기에도 라운딩을 나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스포츠이며, 세상에 같은 코스는 하나도 없다. 그렇기에 골프는 더욱 특별하다. 각기 다른 코스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우리 인생과도 닮았다. 삶에서 홀인원의 행운을 꿈꾸듯, 우리는 매 라운드에서 최선을 다하며 그린 위를 걷는다.
미국의 세계적 골프 코치 레드베트에게 한 기자가 “타이거 우즈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타이거 우즈보다 더 많이 연습하는 선수가 있다면 그 선수가 타이거 우즈를 이길 것입니다.” 이는 골프뿐만 아니라 인생에도 적용되는 불변의 진리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꾸준히, 성실히, 진심으로 임하는 사람이 결국에는 정상에 오른다.
‘진정한 싱글 골프’는 결코 쉬운 목표가 아니다. 하지만 그 도전을 위해 흘리는 땀방울 속에서 골프의 진정한 재미와 인생의 깊이를 깨닫게 된다.
드라이버가 흔들려도, 어프로치가 짧아도 괜찮다. 다음 샷으로 만회하면 된다. 골프는 기록이 아니라 과정에서 의미를 찾는 운동이다.
요즘도 싱글 골프를 꿈꾸며 그린 위를 걷는 우리들은 이미 인생의 챔피언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