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자산으로 삼다, 부족한 환경을 동력으로 만든 마음가짐
나는 베이비부머 세대로서 경제개발과 산업화가 한창이던 시절, 지방의 큰 도시에서 자랐다. 우리 집은 부유하진 않았지만 정직하고 단단한 가풍이 있었다. 아버지는 시청의 하급 공무원으로 근무하셨고, 어머니는 섬유공장에서 일하며 할머니와 함께 6남매를 키우셨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었지만, 부모님은 단 한 번도 자식들에게 가난을 이유로 주눅 들게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정직하게 살고, 검소함을 미덕으로 삼는 모습을 몸소 보여주셨다.
어린 시절, 우리는 한 방에서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잠을 청했다. 방바닥에 줄 맞춰 누워 있으면 몸을 돌릴 때조차 조심해야 했다. 주말이면 어머니가 공장에서 가져온 천 조각들로 옷을 수선하시고, 아버지는 오래된 구두를 닦으며 새것처럼 아껴 신으셨다. 어릴 적엔 이런 모습이 당연한 줄 알았지만, 자라면서 깨달았다.
우리 부모님은 가난 속에서도 ‘체면과 신뢰’를 지키며 사셨다. 동네에서도 우리 집은 정직하고 성실한 가정으로 통했다. 그것이 나에게 가장 큰 자산이 되었다.
그 시절 가난은 우리 가족에게도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지만, 부모님은 결코 비관하거나 남을 원망하는 법이 없으셨다. 아버지는 월급이 많지 않았지만, 정직함과 성실함을 지키며 한 푼이라도 아껴 우리 형제들을 키우셨다. 어머니는 공장에서 힘든 일을 하면서 작은 소득을 보태셨다. 나는 가난을 불평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이 환경을 벗어날 수 있을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같은 동네 부자인 친구의 집에는 우리 집에서는 볼 수 없던 커다란 소파와 냉장고, 그리고 책장이 있었다. 처음엔 부러웠지만, 집에 돌아와 부모님을 보며 생각이 달라졌다. 우리 집은 비록 작고 소박했지만, 그 안에 깃든 부모님의 헌신과 따뜻함은 그 어떤 것보다 소중했다. 부자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부자가 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때 어렴풋이 깨달았다.
어머니는 늘 “돈은 벌기도 어렵지만 쓰기는 너무 쉽다.”라고 말씀하셨다. 용돈을 조금 받을 때면 언제나 “꼭 필요한 곳에 써라.”라고 하셨고, 나도 자연스럽게 돈을 아끼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어린 시절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가난은 내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환경일 뿐, 그 누구도 가난을 좋아해서 스스로 선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환경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각자에게 달려 있다. 나는 이왕 가난하다면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더 많이 배우고 더 크게 행동해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남들이 갖추고 태어난 것이 있다면, 나는 없는 대신에 남다른 노력과 집념으로 채워야 한다는 각오를 했었다. 부모님이 해줄 수 없는 부분은 내가 스스로 해내야 한다는 간절함이 더 높은 도약을 준비하게 해 주었다.
가난 속에서 싹튼 ‘왜 우리 집은 가난하지?’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사람은 자신이 처한 한계를 스스로 만든다고 한다. ‘나는 돈이 없으니까 못해’, ‘가정 형편이 어려우니 좋은 교육은 사치야’라고 쉽게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가 “너는 안 돼”라고 말하면 오히려 “왜 난 안 돼?”라고 되묻고 싶었다.
세상은 늘 약자에겐 기회가 적다고 말하지만, 그 말이 맞다면 ‘기회가 적을 뿐이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비록 기회가 적더라도 오히려 그 기회를 잡기 위해 더 발 벗고 나선다면, 분명 성공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다고 믿었다.
‘가난하니까 어쩔 수 없다’고 주저앉는 대신, “그래도 난 해볼 가치가 있다”는 마음가짐이 결국 새로운 길을 열어 주었다.
가난, 그 자체를 인생의 스승으로 돌이켜 보면, 부족한 환경은 나에게 단순한 약점이 아니었다. 오히려 가난한 시간이 있었기에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들 수 있었다고 확신을 한다.
어린 시절 나의 환경이 풍족했다면 아마 절반 정도만 노력하고 안주했을 수도 있다. 자칫 허투루 쓸 뻔한 돈과 시간을 보다 소중하게 쓰게 되었다.
어린 시절 겪었던 어려운 상황에서의 적은 실패는 크게 의미가 없으므로 빨리 회복할 수 있었다. 우리 부모님은 작은 수입에도 크게 감사했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더 진심으로 도와주곤 하였다. 이런 과정이 나를 만들었고, 이는 훗날 살아가면서 본격적으로 재테크와 부동산 투자를 할 때 강력한 나의 무기가 되었다. “가난이 나를 가르쳤다”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환경이 나를 붙들었던 것이 아니라 되려 더 멀리 나아갈 수 있게 추진력을 준 셈이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처한 환경을 선택할 수 없다. 하지만 환경을 해석하고, 그 안에서 무엇을 배우며, 어떤 길을 택할지는 우리의 몫인 것이다. 그리고 내가 직접 선택한 길에서 얻은 성과는 두 배, 세 배의 기쁨으로 돌아온다.
가난은 분명 누구도 마주하고 싶지 않은 힘겨운 현실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부족한 환경을 ‘더 넓은 세상으로 가기 위한 디딤돌’로 삼을 수 있었다. 그 가난은 단순한 불행이 아니라 오히려 인생에 있어 강력한 동력이 되었다. “나는 가난하기 때문에 할 수 없어”가 아니라, “나는 가난하기 때문에 더 간절히, 더 치열하게 노력해야 해”라는 마음가짐으로 변화시키는 순간,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은 무한대로 열리는 것이다.
가난을 자산으로 삼는 것은 결코 말처럼 쉽지는 않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체력이 필요하고, 주변의 차가운 시선과도 맞서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몸에 배는 절약 정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 작은 것에도 감사를 느끼는 겸손은 돈이나 어떤 재화와도 바꿀 수 없는 가치이다.
결국, 가난을 단순히 인생의 걸림돌로만 여긴다면 발전은 멈춘다. 그러나 가난을 통해 내가 더 멀리 달릴 이유를 찾을 수 있다면, 그 순간부터 가난은 가장 훌륭한 인생의 스승이 되어 준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부디 가난이나 부족함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그 믿음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 언젠가 스스로에게 “그래, 가난했기에 더 단단해질 수 있었어”라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