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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건물주가 얘기하는 강남 건물주 되기

by 김성훈



어린 시절의 다짐, 넉넉지 않았던 집안에서 싹튼 ‘부자가 되겠다’는 열망


어린 시절, 나에게는 그저 ‘넉넉하지 않은 환경’이 일상이었다. 부모님과 할머니, 그리고 6남매가 함께 생활했던 우리 집은 항상 분주했고, 먹을거리부터 입을 거리까지 부족함이 느껴지는 날이 많았다. 그 시절에는 이웃집과 반찬을 나눠 먹거나, 형제끼리 헌 옷을 물려 입는 일이 너무나 당연했다. 나라 전체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기에, 우리 집만 힘든 줄 알면서도 어쩐지 가슴 한구석은 허전함을 떨칠 수 없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의 일이었다. 중학교에 다니던 나는 친구들과 함께 동네 부잣집으로 알려진 한 선배의 집에 놀러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2층짜리 주택을 보고, 내부가 얼마나 화려하고 깔끔할 수 있는지를 직접 체험했다. 넓디넓은 거실이며 반짝이는 가구들, 심지어 집 한편에 자리한 소파와 커피테이블까지도 내겐 새로운 세상이었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구나. 부자들은 이렇게 사는구나.’ 어린 마음에 그 모든 것이 놀랍고 신기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은 내 인생에 큰 자극이 되었다.

그날 집에 돌아오면서 나는 ‘나도 언젠가는 이런 집에서 살아보고 싶다. 꼭 부자가 되고 싶다.’라는 굳은 다짐을 마음 깊이 새기게 되었다. 그 다짐은 단순히 화려한 집을 갖겠다는 욕망을 넘어, 내가 속한 이 불안정한 환경을 벗어나 가족에게도 안락한 생활을 선물하고 싶다는 강한 열망으로 커졌다.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그 다짐만큼은 나에게 크나큰 목표가 되어 이후의 삶 전체에 걸쳐 나를 움직이는 동력이 되었다.


물론 꿈이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다짐은 때론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해 작은 선택과 행동 하나하나를 바꾸어 놓는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나는 다른 친구들이 유행하는 옷이나 가요 프로그램에 관심을 쏟을 때, 경제신문이나 시사 잡지를 읽으려고 노력했다. 가족 중에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돈’과 ‘경제’에 대한 호기심을 느끼고, 그 분야를 공부해야만 나의 꿈을 실현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 무렵 친구들은 주말이면 놀러 가거나 게임을 즐겼지만, 나는 종종 아르바이트를 찾아 나섰다. 신문 배달을 하며 새벽 공기를 마시고, 우유 배달을 하며 아침 해를 보는 것이 익숙해졌다. 그 과정에서 ‘한 푼을 벌기 위해선 한 시간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몸으로 터득했다. 하루하루 쌓이는 작은 돈과, 그 돈을 보관하는 은행 통장 하나가 주는 묘한 성취감은 결코 작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 경제 관련 과목을 배울 때면 평소 쌓아둔 지식을 바탕으로 더 적극적으로 공부하게 되었다. 교과서에 등장하는 기초 경제 용어들 인플레이션, 금리, 환율이 살아 숨 쉬는 현실 세계의 개념임을 실감할 수 있었고, 가난한 현실에서 벗어나 부자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런 기초 이론부터 잘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한편으로는, ‘과연 내가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지금처럼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내가, 부모님에게 손 벌리지 않고도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하지만 마음속에 타오르는 불씨는 쉬이 꺼지지 않았다. 이왕이면 가장 어렵다는 도전을 하겠다는 오기가 생겼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배워서 더 잘 준비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러다 보니 학교 도서관이나 시립 도서관에 가서 부자들의 성공 스토리를 읽곤 했다. 그중에는 큰 사업을 시작해 성공한 사람, 작은 투자부터 착실히 시작해 부를 일군 사람, 스스로 아이디어를 개발해 혁신을 일으킨 사람이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끊임없는 자기 계발과 실천’이었다.


그렇게 책을 읽으며 자연스레 체득한 사실이 있다면,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남과 다른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일한 환경 속에서, 같은 시기를 살면서도 누군가는 부를 이루고 누군가는 이루지 못한다. 그 차이는 자본금의 출발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빨리 움직이고, 더 많이 찾아다니며, 보다 넓은 세계를 탐색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돌아간다는 데 있었다.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이들이라면, 적극적으로 지식과 정보를 얻고자 노력해야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어린 시절부터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넉넉하지 않았던 환경’은 오히려 나에게 ‘부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을 키워준 고마운 디딤돌이었다. 그 덕분에 나는 타인의 눈치를 보기보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그러면 떠오르는 답은 분명했다. ‘더 많이 배우고, 더 성실히 일하고, 반드시 부자가 되겠다는 목표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물론 당시에는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다. 신문 배달을 끝내고 학교에 가면 졸음이 쏟아지기 일쑤였고, 친구들이 주말마다 놀러 다닐 때 나는 시간을 쪼개 아르바이트를 하곤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지금의 고생이 미래에는 나를 빛나게 해 줄 것이다’라는 믿음이 마음 한구석을 지켜주었다.

그 믿음이 쌓이고 쌓여 조금씩 결실을 맺게 된 순간들을 회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최초로 내 이름으로 된 은행 통장에 일정 금액 이상이 모였을 때’다. 어릴 적에는 몇 천 원, 몇 만 원 단위도 큰돈이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는 제법 쏠쏠한 금액이 모여 있었다. 물론 부모님의 도움 없이 내가 직접 모은 돈이라는 점이 더 큰 자부심으로 다가왔다. 그 돈을 밑천 삼아 대학 시절에는 학비의 일부를 스스로 부담하기도 했다.

어쩌면 사람들은 가정 형편이 어렵고, 주변 환경이 녹록지 않으면 대부분 포기하거나 체념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오히려 ‘나중에라도 꼭 환경을 바꿔놓겠다’는 의지가 생기면 다른 누구보다 거침없이 노력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자리 잡은 ‘부자가 되겠다’는 다짐은 단순한 동경이나 욕심이 아니라, 내 삶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추동력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이것이 훗날 ‘강남 건물주’가 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비록 그 시절에는 돈을 어떻게 모아야 건물을 살 수 있는지, 어떤 부동산이 가치가 높은지, 부자가 도기 위해서는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 같은 구체적인 정보는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는 할 수 있다. 언젠간 꼭 해내겠다’는 진심 어린 마음가짐과 ‘가난을 자산으로 삼아 더 열심히 배우고 부딪치겠다’는 태도였다.

어린 시절의 다짐은 이렇게 내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성인이 되어 사회에 진출할 때, 또 회사에서 일하면서 재테크를 본격적으로 고민할 때마다 변함없이 나를 이끌어준 신념이었다. 그리고 그 신념이야말로 성공을 이루기 위해 가장 먼저 갖춰야 할, 무너지지 않는 토대였다. 어린 시절 홀로 품었던 그 작은 약속이 결국 내 미래를 바꾸었고, 넉넉지 않았던 환경이 어느새 든든한 발판이 되어 주었다.


지금도 종종 그 시절을 떠올리면 어린 나에게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은 힘들어도, 꿈은 꿀 수 있었고, 그 꿈은 나를 움직이는 동력이 되어 마침내 부의 로드맵을 펼칠 수 있게 해 주었다. ‘넉넉지 않았던 집안’은 나에게 ‘언젠가 꼭 부자가 되겠다’는 불타는 의지를 안겨주었고, 그 의지가 없었다면 오늘의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가난한 환경이 나를 위축시키지 않고, 오히려 내 삶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열망’ '부자가 되겠다는 간절함'덕분이었다. 누군가에게 어린 시절의 다짐은 한때의 환상으로 그칠 수 있지만, 나에게는 오랜 시간 곁에서 함께한 평생의 친구였다. 어떤 결핍이나 어려움도 ‘부자가 되겠다’는 강렬한 열망 앞에서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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