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명절 분위기, 내가 먼저 변하자'는 생각
얼마 전 은퇴한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뜻밖의 말을 들었다.
"이번 명절엔 여행을 갈 거야. 그래서 아예 오지 말라고 했어."
순간 귀를 의심했다. 명절에 가족들과 만나지 않는다니?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변화가 점점 퍼지고 있다. 나도 60대 후반이다. 우리 세대는 전통적인 명절 문화를 고수하며 살아왔다.
명절이 다가오면 며칠 전부터 장을 보고, 고기와 과일, 채소를 준비하고, 전을 부치고, 떡국을 끓였다. 명절 당일에는 온 가족이 모여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가족들이 떠난 뒤 남은 건 온몸을 짓누르는 피로뿐이었다. 며칠 동안 파스를 붙이고 끙끙 앓아야 했다.
"이게 누구를 위한 명절인가?"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명절은 가족이 함께하는 즐거운 시간이 되어야 하는데, 누군가는 매번 희생해야 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었다.
가족을 위한 명절이란 무엇인가
어릴 적 명절은 특별했다. 모처럼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고 정을 나누는 날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먹을 게 부족한 시절도 아니고, 일상에서도 가족끼리 충분히 만날 수 있다.
그런데도 명절이 다가오면 여전히 "누가 음식을 준비할지", "어디에서 모일지" 등을 고민해야 했다. 어느 날, 명절을 보내고 온 아들 부부가 우리 집에 들렀을 때였다.
아들이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나는 단번에 눈치챘다.
"명절 때문에 다퉜구나."
며느리는 시댁에서 신경을 썼을 것이고, 아들은 처가에서 눈치를 봤겠지. 우리 때도 그랬다. 하지만 그때는 그게 당연한 일이라 여겼다.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고, 명절이 부부싸움의 원인이 되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둘째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며느리들도 명절이 지나고 나면 한동안 피곤해했다. 예전의 우리 어머니처럼, 우리 아내처럼 그렇게.
명절이 다가오면 아들 내외도, 둘째 아들도, 며느리도, 심지어 나도 긴장을 하게 됐다. 그러면 부모가 먼저 변해야 하지 않을까?
새로운 명절, 새로운 방식
우선 형제들과의 명절 모임 장소를 바꿔 변화를 주었다. 명절 음식 준비를 간소화하고, 며느리들에게 부담을 덜어주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몇 년을 해봤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었다.
누군가는 부엌에서 바쁘고, 누군가는 대화에 끼지 못했다. 설거지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아내와 상의한 끝에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기로 했다.
"명절 당일에는 각자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명절 다음날에는 가족여행을 떠나자."
이 의견을 가족 단체 카톡방에 올렸더니 반응이 예상보다 좋았다. 형제들도 찬성했고, 아들 내외도 흔쾌히 동의했다.
"명절을 음식 준비로 보내느니, 여행을 가면서 더 좋은 추억을 만드는 게 낫겠다."
몇 년 전 추석부터 이 방식을 실천했다. 명절에는 예약한 장소에서 형제 가족들이 모여 점심을 함께 먹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명절 다음날, 우리 가족만의 여행을 떠났다.
여행지에서 다 같이 사진을 찍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돌아오는 길에 아들이 말했다.
"아빠, 다음 명절엔 어디로 가요?"
그 말이 그렇게 기분 좋을 수 없었다.
명절, 부담이 아니라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
올해 설날도 마찬가지다. 각자 가져올 음식을 카톡방에서 정했고, 우리가 충북 보은의 에어비앤비 펜션을 예약했다. 명절이 다가와도 예전처럼 부담스럽지 않다. 오히려 기대되는 시간이다.
이제 명절은 ‘가족이 함께하는 편안한 시간’ 이 되었다.
명절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날이다. 하지만 그 방식은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한다. 전통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전통이 누군가에게 부담이 된다면 바뀌어야 한다.
가족들이 힘들어하지 않고,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 변화를, 부모 세대가 먼저 시작해야 한다.
"부모가 먼저 변하면, 가족도 행복해진다."
이제 나는 그렇게 명절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