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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건물주가 얘기하는 강남 건물주 되기(3)

by 김성훈

조기 경제 교육의 힘, 신문 배달·우유 배달로 깨달은 돈의 가치


어린 시절, 돈의 가치와 실물 경제를 직접 몸으로 깨닫는 일은 쉽지 않다. 학교에서 배우는 이론적인 내용이 머릿속에 자리 잡기 전에, 현실 세계에서 적은 금액이라도 직접 손에 쥐어 보는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아마 그 의미를 절실히 알 것이다. 나는 중학생 시절부터 새벽마다 일찍 일어나 신문을 배달하거나, 이른 아침에 우유를 배달하면서 자연스레 돈과 노동의 가치를 배웠다.

처음에는 단순히 용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아르바이트였다. 친구들은 늦잠을 자거나 주말이면 놀러 다닐 때, 나는 아침 공기를 마시며 어두운 골목길을 누볐다. 물론 몸은 힘들었고, 때로는 추운 날씨나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에도 어김없이 일어나야 했다. 하지만 매달 받는 몇천 원, 혹은 만 원 남짓의 배달 수입이 주는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돈을 손에 쥐면, ‘이것이 바로 내가 직접 번 돈이구나’ 하는 자긍심이 마음 깊이 새겨졌다.


신문 배달이 가르쳐준 ‘새벽의 가치’

신문 배달을 하려면 사람들보다 조금 더 일찍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대부분이 잠들어 있는 시간에 일어나야 하고, 늘 같은 시각에 신문을 챙겨 각 가정의 문 앞까지 배달해야 한다. 이 어린 학생에게 상당히 큰 부담이었지만, 그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책임감과 시간 관리의 중요성을 체득을 했다.

어느 날은 늦잠을 자서 아슬아슬하게 신문을 전달했던 기억도 난다. 평소보다 10분만 늦어도 몇 집의 독자는 불편해하며 항의 전화를 걸어오곤 했다. 그때마다 “이건 단순히 내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반드시 필요한 서비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문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정해진 시간’에 신문이 도착하지 않으면 그만큼의 불편이 생긴다는 점이, 서둘러 일어나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되었다.

신문 배달이 끝나고 학교에 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늘 몹시 피곤했지만 동시에 작은 성취감에 젖어 있었다. “오늘도 무사히 신문을 다 배달했다. 이제 내가 받을 돈은 허투루 쓸 수 없겠지.” 이런 마음가짐은 훗날 내가 어떤 일을 맡아도 마감 기한과 정확성을 소중히 여기게 만들었고, 힘든 일을 견디는 끈기도 길러주었다.


우유 배달이 알려준 ‘작은 돈의 무게’

신문 배달 못지않게 기억에 남는 일은 우유 배달입니다. 신문 배달이 주로 새벽 시간대에 이루어졌다면, 우유 배달은 조금 더 이른 시간이거나 아침 해가 막 떠오르기 전이었습니다. 신문 배달이 “책임을 다하는 습관”을 가르쳐줬다면, 우유 배달은 돈의 가치와 세밀한 소통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

우유의 경우, 몇 개의 가정을 세트로 묶어 일정 기간 동안 배달해 주고, 한 달 혹은 2주에 한 번씩 정산을 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여기에는 단순 배달만 있는 게 아니라, 우유가 변질되거나 문제가 생길 경우에는 직접 교환해야 했고, 어떤 집은 일정 기간 우유 배달을 중지해 달라고 요청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노트에 꼼꼼히 기록해 두지 않으면 나중에 정산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거나, 배달 실수로 인해 불만이 접수되기도 했다.

한 번은 내가 무심코 기록을 제대로 남기지 않았다가, 해당 가정에 우유를 중지해야 하는 날에도 그대로 우유를 놓고 와서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 몇 병의 우유값은 결국 내가 물어내야 했다. 어른들에게는 얼마 안 되는 돈일 수 있어도, 학생이던 내게는 꽤나 큰 타격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돈을 번다는 것은 단순히 노력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꼼꼼함과 정확함도 필수”임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스스로 버는 돈이 주는 만족감

신문과 우유 배달로 벌어들인 돈은 결코 많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직접 땀 흘려서 번 돈이라는 점이 무엇보다 특별했다. 친구들은 용돈을 부모에게서 자연스럽게 받곤 했지만, 나는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기보다 스스로 일해 소득을 창출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 과정을 통해 작은 돈에도 감사하는 마음, 절약 습관이 몸에 배었다.

예컨대, 우유 배달로 받은 돈으로 과자 한 봉지를 사 먹을 때도 그 과자가 결코 ‘백 원짜리’나 ‘이백 원짜리’가 아니라, 여러 시간의 노동을 통한 결과물로 여겨졌습니다. 그 인식이 결국 대학에 진학해 아르바이트나 저축을 할 때도 신중함을 잃지 않도록 해주었다. “내 노동의 대가로 모은 돈인데, 함부로 날려서는 안 된다.”라는 생각이 늘 깔려 있었던 것이다.


경제 신문 한 장이 달라 보였던 이유

이런 아르바이트 경험이 쌓이다 보니 자연스레 경제 관련 기사를 자주 찾게 되었다. ‘내가 배달하는 신문의 경제 면에는 어떤 내용이 실릴까?’, ‘우유 배달로 버는 돈을 조금 더 불릴 방법은 없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던 것이다. 처음에는 어렵게만 보였던 경제 용어나 지표가, 노동을 통해 번 돈을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쓰고 모을지를 고민하게 하면서 조금씩 내 삶에 밀접하게 다가왔었다.

나중에 또래 친구들을 보니,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은 친구들은 돈을 벌어본 경험이 없다 보니 집에서 받는 용돈이 전부였다. 그렇다 보니 “이번 달 용돈이 부족해” 하면 부모님께 손을 벌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물론 그걸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는 노동을 통해 돈을 번 경험 덕분에 ‘부족하다면 내가 더 벌어야지’ 하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갖출 수 있었다.


작은 땀방울이 만든 평생 자산

신문 배달과 우유 배달은 학창 시절의 한 에피소드로 끝나지 않고, 내 삶 전반에 걸쳐 실천적 학습으로 남았다. 단순히 돈을 번다는 차원을 넘어, 그 과정에서 습득한 습관과 태도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규칙적인 생활 습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야 하고, 시간에 맞춰 배달을 마쳐야 했다. 이는 회사나 사회생활을 할 때 기한과 약속을 철저히 지키는 기본자세를 길러주었다.

책임감과 정확성

배달 업무는 실수가 곧 불만이나 환불로 이어졌다. 우유를 놓고 와야 할 집에 놓지 않는다든가, 신문을 늦게 배달한다든가 하면 즉시 문제가 생겼다. 이 때문에 꼼꼼하게 체크하고 기록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훗날 재테크나 부동산 계약 등을 할 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작은 돈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한 달간 모은 돈으로 적은 금액이라도 예금을 든다거나, 용돈을 허투루 쓰지 않고 필요한 곳에만 지출하는 버릇은 그 당시부터 이어져 온 것이다. 결국 이는 종잣돈 마련과 투자 습관 형성에 중요한 기틀이 되었다.


어른이 되어 깨닫는 조기 경제 교육의 의미

세상을 살면서 “돈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맞는 말이다. 돈이 인생의 전부가 될 수는 없지만, 어린 시절부터 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개인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가장 좋은 교육 방법 중 하나가 직접 적은 금액이라도 벌어보는 경험이라고 확신한다.

대학에 진학해서 혹은 사회에 진출해서 처음으로 월급이나 보수를 받을 때, 주변에는 그 돈을 흥청망청 쓰다가 뼈아픈 후회를 하는 이들도 많다. 처음으로 한 번에 큰돈을 손에 쥐어본 적이 없다 보니, 돈의 무서움이나 가치, 그리고 그것이 빨리 소진된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 일찍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어본 사람은 ‘버는 것은 쉽지 않고, 쓰는 것은 한순간’이라는 사실을 체득했기에, 비교적 안정적으로 돈을 다뤄나갈 확률이 높습니다.


작은 경험이 만드는 큰 차이

어려운 집안 형편 탓에 시작한 신문 배달과 우유 배달은, 내게 조기 경제 교육의 장을 열어 주는 귀중한 경험이었다. 또래들이 부모의 용돈에 의존할 때, 나는 직접 돈을 벌어보면서 작더라도 경제적인 독립심을 키워나갔다. 그 과정에서 언제나 노력이 선행되어야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 돈에는 마땅한 목적과 소비 계획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오늘날까지 이어진 이 습관들은 내가 자립적으로 살아가는 데 큰 밑거름이 되어 주었다. 다들 간단해 보이는 배달 일이지만, 이 안에는 삶의 여러 지혜들이 녹아 있다. 예를 들면, “정해진 시간에 해야 하는 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 “작은 돈이라도 허투루 다루면 결국 큰 손실로 이어진다” 같은 교훈이 그렇다. 이것이 바로 신문 배달과 우유 배달이 내게 선물해 준 진정한 의미였다.

조기 경제 교육이라는 말은 어쩌면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거창한 교재나 복잡한 강의보다, 직접 몸으로 부딪치고 경험을 쌓으면서 터득하는 작은 실천들이야말로 평생 자산이 된다. 어린 시절의 나 역시 ‘이 일이 내 미래를 어떻게 바꿀까?’를 미리 예견하지는 못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작은 시작이야말로 내 인생을 다른 방향으로 이끈 터닝 포인트였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있다면, 혹시 아직 직접 돈을 벌어본 적이 없거나 자녀에게 경제관념을 심어주고 싶다면, 배달 일 같은 작은 아르바이트라도 직접 해보길 권해드리고 싶다. 몸은 고단할지라도, 그 과정을 통해 얻게 될 돈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는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신문 배달과 우유 배달이 주었던 한 달 몇 만 원의 수입은 시간이 흘러 강남 건물주라는 거대한 꿈을 향해 내딛는 초석이 되었다. 결코 크지 않던 금액이었지만, 그 뒤에 스며 있는 노동의 소중함과 성실함의 가치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자양분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조기 경제 교육의 진정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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