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불씨, 결심으로 피어나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의 중요성
어린 시절의 기억은 대체로 가난 때문에 불안했다. 무엇보다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장면은, 부모님이 돈이 부족해 새벽 일찍부터 이웃집을 찾아다니며 몇천 원, 몇만 원이라도 꾸어오려 애쓰시던 모습이었다. 자식들을 먹이고 가르치려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치는 ‘돈 부족’이라는 장애물을 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쌀 값과 연탄 살 돈이 부족해서, 아침 일찍 동네에 살던 먼 친척집 문을 두드리며 “한 달 뒤에 꼭 갚을 테니 조금만 빌려 달라”라고 부탁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은 지금도 내 가슴을 저릿하게 만든다.
한 집에 자녀가 여섯 명이다 보니, 아침부터 분주하게 밥을 챙겨야 했고, 학교에 보낼 육성회나 급식비까지 마련해야 했다. 부모님은 늘 쩔쩔매는 기색이었고, 심지어 누군가는 “저 집은 맨날 빚져 사네”라는 뒷말을 하기도 했다. 그런 시선이 부끄럽기도 하고, 무엇보다 부모님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가장 괴로웠다.
그런 환경에서, 내 마음 한편에 ‘부자가 되고 싶다’는 불씨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 이런 말을 가르쳐 준 것도 아니고, 특별한 책에서 영감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매일 같이 반복되던 부모님의 고생과 그로 인한 가정의 어려움을 지켜보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언젠간 내가 이 상황을 바꿔야 한다”는 작은 다짐이 자라난 것이다.
부모님의 힘겨운 삶, 돈 부족이 불러온 불안
아침이면 어머니는 나보다 훨씬 먼저 일어났다. 이유는 늘 같았다. 전날 빌린 돈을 다시 돌려주기 위해, 아니면 오늘 쓸 생활비를 다시 빌리기 위해, 이웃에게 십 원이라도 더 손을 벌려야 했기 때문이다. 때론 운이 좋아 친구분이나 친척에게 조금만 빌리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그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때로는 문전박대를 당하고, 때로는 서운한 말에 울컥하면서도, 마지못해 고개를 숙이고 돌아서던 부모님을 떠올리면, 내 마음도 같이 축 처졌다.
이웃에 돈을 빌리러 다니는 행위 자체가 부끄럽다기보다, 그렇게 간절히 빌리고 나서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 모습을 보며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빌리고 빚지며 살아야 하나’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어머니는 늘 내게 “미안하다, 형편이 이래서 너희들이 불편해도 좀 참아주렴”이라고 말씀하셨지만, 난 오히려 내가 돈을 벌어서 이 상황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나는 할 수 있다’라는 어린 마음의 다짐
그렇다고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중학생이었던 내가 무슨 대단한 돈벌이를 하겠는가. 다만, 그 상황을 매일같이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큰 어려움이었고, 동시에 ‘내가 어른이 돼서 꼭 부모님을 편하게 해 드려야지’라는 마음이 점점 굳어졌다. 중학생이었지만, ‘나는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결정에 이미 확신이 있었다. 왜냐하면 가난이 우리 가족을 이렇게 힘들게 만들고, 부모님을 이웃에게 고개 숙이게 만든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가슴 아프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중학생 치고는 어른스러운 결심이라 주변에서 놀라울 수 있지만, 사실 어린 마음은 때론 더 단순하고 직관적이기에, 환경에서 오는 압박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그에 대한 방어 기제를 세우는 데 탁월하다. 내게는 그것이 **‘언젠가 부자가 되어 이런 문제를 다 해결하겠다’**는 일종의 자기 암시가 되었다. 그리고 그 암시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힘을 얻어 “나는 반드시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발전했다.
‘할 수 있다’라는 믿음이 준 긍정적 변화
그저 “부자가 되겠다”는 마음가짐 하나가 무슨 대단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싶겠지만, 실제로 내 일상에는 작은 긍정의 바람이 불었다. 학업 의욕 상승
“공부를 잘하면 나중에 돈도 잘 벌 수 있지 않을까?”라는 단순한 결론에 도달했다. 그전까진 공부를 그리 열심히 하지 않았는데, 부모님을 돕고 싶은 동기가 생기니까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었다.
물론 ‘공부만이 답은 아니다’라는 걸 나중에 깨달았지만, 최소한 중학생 시절에는 학습에 집중하고 뭔가를 배우려는 태도가 생겨 난 점이 큰 자산이 되었다.
작은 아르바이트의 시작
용돈이 필요했을 때, 그냥 부모님께 손을 벌리는 대신, 동네 어른들의 심부름을 해서라도 돈을 벌어봤다. 그 과정에서 돈의 가치를 몸소 체득했고, “내가 열심히 하면 정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을 얻었다.
더 큰 꿈 설계
“난 부자가 되어야 해”라는 생각은 어쩌면 막연했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이웃의 부잣집을 보거나 라디오에서 듣곤 하는 성공 스토리를 들으며, 그것들을 내 일로 상상할 수 있게 됐다.
만약 그런 믿음이 없었다면, ‘저건 남의 이야기일 뿐, 우리와는 상관없어’라고 치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있으니, 남들의 성공 사례가 곧 내 비전이 됐다.
결심은 불씨가 되어 행동으로 이어진다
‘할 수 있다’는 믿음만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믿지 않는 사람과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믿음은 곧 결심이 되고, 결심은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새벽 하루의 시작
나는 가난을 벗어나고자 조금 일찍부터 용돈을 버는 신문 배달 등을 시작했다. “내가 이 돈을 벌어 부모님께 보태드려야지”라는 목표가 있었기에, 새벽에 일어나는 것도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부정적 상황에 대한 반발심
때로 주변 어른들이 “집이 가난한데 네가 할 수 있는 게 뭐 있니?”라고 말할 때, 오히려 더 큰 반발심이 생겼다. “그래서 내가 더 악착같이 해낼 거야”라는 식의 오기가 생겨, 어떤 어려움에도 쉽게 주저앉지 않았다.
작은 결과라도 성취감으로 연결
시간이 지나 “조금이라도 집안 형편이 나아졌다”, “오늘은 부모님이 돈을 빌리러 다니지 않으셨다” 같은 작은 변화도 나에게는 큰 성취감이 되었다. 이것들이 쌓이며 ‘난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을 더욱 굳건히 해주었다.
부모님의 어려움을 보며 배운 책임의식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단지 ‘돈이 없어서 힘들다’는 사실만을 배운 것이 아니다. 그분들이 가정의 살림을 책임지고, 우리가 어렵지 않도록 동분서주하는 태도에서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과 인생의 무게를 깨달았다. “가난 때문에 부모님이 고개 숙이는 일이 이젠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나를 더 적극적으로 노력하게 만들었다.
고마움과 미안함
어머니가 “오늘은 빌리러 다니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네”라며 안도하실 때, 나는 감사함과 미안함이 교차했다. “왜 내가 빨리 커서 이 부담을 덜어드리지 못했나” 하는 죄책감도 들었다.
하지만 이 감정이 스스로를 연민하기보다는 “더 빨리 성장해야겠다”는 에너지로 바뀌었다.
가족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돈을 구하지 못해 걱정하던 부모님의 얼굴이 떠오르면 “내가 언젠가는 이 모든 빚더미와 근심을 몰아낼 거야. 우리 가족이 두 번 다시 이런 고민 안 해도 되도록 만들어줄 거야”라는 결심이 가슴에 불을 붙였다.
그 결심이야말로, 내가 부자로 가는 긴 여정에서 한 번도 포기하지 않게 해 준 가장 강력한 동력이었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이 만들어낸 긍정의 불씨
이처럼 어린 시절의 가난과 부모님의 고생은, 내게 ‘내가 커서 모든 걸 바꿀 수 있다’는 강한 메시지를 심어주었다. 이는 단순한 희망 고문이 아니라 실제 행동의 원동력이 되었고, 후에 내가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었던 근간이 되었다.
심리적 강인함
경제적 어려움을 어릴 때부터 몸소 경험했기에, 조금 힘든 일이 생겨도 그걸 ‘인생의 당연한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대응하려고 했다. 실패 한두 번에 무너질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체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래를 내다보는 습관
돈이 없어 하루하루 근근이 버티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나는 늘 “내가 어른이 됐을 때 상황은 어떨까?”를 상상했다. 그 미래가 지금보다 나아지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자연스레 고민하게 되었다.
이 같은 습관이 추후에 부동산 투자나 재테크 등에서 큰 힘이 됐다. ‘지금의 상황’만을 보는 게 아니라, ‘몇 년 뒤 흐름’과 ‘내가 해낼 수 있는 가능성’을 함께 그려보게 된 것이다.
마음속 불씨가 인생을 뒤흔들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돈을 구하러 이웃집을 전전하는 장면은 당시엔 나에겐 참으로 힘들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때의 경험이야말로, 내가 스스로에게 “절대 지지 말자”, “반드시 이 상황을 바꿀 거야”라고 외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가난 때문에 창피하고 힘든 순간이 많았지만, 덕분에 난 ‘무조건 할 수 있다’는 믿음을 키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작은 불씨가 되어, 점점 더 큰 불길로 인생 전반을 살아가는 긍정적 에너지가 되었다.
강남 건물주로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고, 중간중간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수, 좌절이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마음 깊숙이 자리한 “난 이겨낼 수 있다. 왜냐하면 지금의 이 어려움보다 더 힘든 순간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니까”라는 믿음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으며, “중학생의 낙관이나 자기 암시가 얼마나 큰 힘이 되겠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의 여러 국면에서 무너지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일찍이 세웠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그 확신이, 어린 시절 부모님의 힘겨운 모습이나 가난이라는 현실에서 비롯된 경우가 의외로 많다.
결국, 어려운 환경을 보며 다짐했던 ‘할 수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내 인생을 성공으로 이끈 핵심적인 자산이었다. 진정한 의미에서 강남 건물주 부자가 되고 싶은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바로 자신 안에 자리한 가능성을 의심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은 부족해 보여도, 내 노력과 의지가 있다면 나는 반드시 해낼 수 있다”는 믿음, 이것이야말로 미래를 결정짓는 가장 소중한 불씨이자, 흔들리지 않는 인생의 기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