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행여 마주쳐도 인사는 하지 말아요
오평에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
여자. 혼자. 원룸 = 경계심
이런 등식이 머리에서 맴돌 때였다.
1. 엘리베이터는 절대 혼자 탄다.
2.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면 자연스럽게 원래 그러는 듯 비상계단으로 향하고
3. 내가 기다리는데 누군가가 온다면 재빨리 닫힘 버튼을 누르거나
뭔가를 깜빡한 듯 다시 건물을 나간다.
나름의 엘리베이터 탑승 수칙을 고수하던 때였는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방심하는 사이 일은 벌어졌다.
닫힘 버튼을 누르려는 찰나,
번개 같은 이가 열림 버튼을 누르며 사뿐히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것이다.
'아.뿔.싸.'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고, 눌러져 있는 7층 버튼을 의미심장하게 보던 남자는 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안녕하세요. 7층 사시나 봐요?"
남자는 다른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나는 당황했고,
굳은 얼굴의 나를 본 남자는 얼굴빛이 바뀌더니 시선을 거뒀다.
우리는 그렇게 7층까지 침묵을 지켰다.
-7층입니다!
경쾌한 알림 소리.
남자가 먼저 내렸고 내가 주춤하는 사이,
남자가 고개를 홱 돌리며 말했다.
"저, 나쁜 사람 아니에요."
그러더니 들어갔다. 바로 내 옆방으로.
그는 내 옆방 남자였다.
그를 나쁜 사람으로 오해한 건 아니었고, 외면하고 싶었던 데는 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원룸에 살아봤다면 알겠지만, 여긴 층간 소음보다 벽간 소음이 더 힘들다.
이른 아침이면 드르르..휴대폰 진동 알람, 깊은 밤이면 탁, 하고 스위치를 내리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니까.
그러니 한 사람이 살면서 육체를 튕겨서 낼 수 있는 온갖 소리들도 종종 들을 수 있다.
내가 소머즈 (아, 연식 나온다) 라서가 아니라 여기가 원룸 이어서다.
기침소리, 재채기 소리, 방귀 소리, 코 고는 소리, 누군가와 통화하는 소리..
일면식이 있는 사람이 그 소리를 내겠거니 생각하면 영, 마음이 좋지 않다.
아니 반대로 얼굴만 아는 타인이 나의 은밀한(?) 소리를 벽 너머에서 다 듣고 있다고 생각하면
내 방에서 기침도, 재채기도, 방귀도...조심하게 된다.
같은 이유로 내 방에서 심야 통화와 긴 통화를 하지 않은지 오래됐다.
그래서다.
행여 마주쳐도 인사는 하지 말자는 것은, 이웃이지만 얼굴을 트고 살고 싶지 않은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방귀를 트고, 화장실을 터야 하는 건물 구조 때문이다.
서로 얼굴은 모른 채로 여야만 그 모든 소리들을 들려주고 들어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어폰을 끼지 않고 스피커로 마음껏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삶,
한밤중에 아끼는 사람과 길고 긴 통화를 할 수 있는 삶,
누구의 잠을 방해할까 조바심 내지 않아도 되는 삶...
소리를 내어도 되는 일상이, 누구에게는 한없이 하찮은 문제일지 모르나 (한때 나도 그랬지만)
또 다른 누구에게는 한없이 절실한 일상이다.
'모든 사람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최소한의 기준을 충족시키는 적절한 주거지 및 정주환경에 거주할 수 있는 권리',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 중 하나인 주거권을 나도, 우리도 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