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신호를 읽었더라면
얼마 전 새로운 대화창이 열렸다.
카톡 친구지만 단 한 번도 서로에게 말을 걸지 않는,
그런 사람이 카톡을 울렸다.
"00! 잘 사나? 서랍 정리를 하다가 니 편지와 클림트 책갈피를 보고 생각이 나 안부 전한다."
이렇게 시작된 메시지는 늘 건강하라는 바람과 염려로 끝이 났다.
여러 번 나누지 않고 한 번에 통으로 보내온 메시지.
답은 필요 없다는 듯이, 답이 있든 없든 기다리지 않겠다는 듯이 단호한 '늘 건강하기 바란다'로 끝난 문장.
그 말에 나는 냉큼 답을 했다. 어제도 연락한 듯 낄낄대며, 무심하게.
아마 그도 그런 답을 기다렸으리라.
그때는 꽤나 낭만이 있던 시절이었네요.. 라며 옛날 일은 다 잊고 산다는 듯,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는 듯, 남의 일처럼 던진 답에 우리의 대화는 잠시 이어졌고,
언제 고향에 내려올 일이 있으면 꼭 연락하라는 당부와 꼭 그리하겠다는 답으로 대화창이 닫혔다.
그는 이제 오십 줄에 들어선 중년의 아저씨이며, 한 집안의 어깨 무거운 가장이 돼 있었다.
그의 말로는 낭만 없이 살아가는 직장인이며 (안정적인) 생활인이다.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
나 역시 오십 줄을 바라보는 중년이며 나를 먹여 살리는 가장이다.
이렇게 같이 나이 들어가는 처지가 됐지만
그 옛날에 그는 나에게 하늘 같은 선배였다.
그래서 어렵고 불편한 선배.
학사조교와 근로학생.
내가 하는 일은 복사를 하거나 전화를 받거나 청소를 하거나 그냥 자리를 지키는 일이 다였다.
커봐야 5평 남짓한 사무실, 사선으로 나란히 놓인 각자의 책상에 앉아
나인투식스를 찍으며 하루를 보내는 일이란,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못할 짓인데, 그땐 탈없이 그렇게 1년을 잘 보냈다.
6개월로 시작했다가 반년을 연장해 1년을 꼬박 채웠다.
그가 보낸 두 통의 편지가 내 책상 서랍에도 있다.
20세기의 끝자락이던 해, 내 생일에 쓴 편지글에는 정성을 다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 마음이 어떤 건지 알 수 없었다.
하긴 그땐 몰랐을 수밖에 없지, 그때 쓰인 편지를 21세기가 시작되고도 10년이나 지난 뒤에 받았으니까.
그때 편지를 쓴 마음은 뭐였을까, 쓰고도 보내지 못한 마음은 무엇이었고,
보내지 못한 편지를 그렇게 오래 버리지 못한 마음은 뭐였을까.
그러다가 10년이 훌쩍 지나 나에게 건넨 그 마음은 또 무엇이었을까..
*5년 전 발행하지 않았던 서랍 속의 글이다.
시간이 더 지나고 보니
버리지 못한 마음이 뭐였는지는 이제 알겠다.
어떤 한 시절에 대한 애정 같은 게 아니었을까, 그리움 같은.
아름다운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