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낙방은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무슨 일을 계기로 그런 마음을 먹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아이의 꿈을 응원한다.
지원했던 모든 학교에서 떨어졌다.
재수생의 길..
울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울지도 않고 다음 플랜을 짜고 있다.
두려움과 불안한 마음으로.
아이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짠하다.
첫 시련...일까.
이모 손에 자랐던 내가 그 갚음을 하는 건지
나는 언니의 둘째 아이를 산후조리원에서 나오자마자 같이 돌봤다.
유난히 엄마 손을 타는 첫째를 케어하느라 유난히 순한 (생존본능이었을까) 둘째는 나를 잘 따랐다.
나에게 안겨서 수월하게 잠들었고, 커서도 그랬다.
밥 먹다가 똥 닦이고, 똥 닦이고 밥 먹는 일이 아무렇지 않았다.
더러 똥오줌이 손에 묻어도 뭐, 별 게 아니었다.
그 아이가 이제 성인이 됐는데, 그 첫걸음이 재수생, 뭔가 입시 실패생이라니...
그런 이름을 붙여주기 싫었다.
고1에 닥친 코로나19 팬데믹에 희생당한 세대라고 할까, 일상의 질서가 무너졌지 않았나.
그 시기를 잘 보냈어야 했는데, 한 번 무너진 일상이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밤과 낮이 바뀌었고, 출석에 대한 엄격함도 희미해졌고, 교실 수업의 필요성도 옅어졌다.
한번 미끄러진 성적은 점점 패배감이 쌓이면서 역시 회복되지 않았고,
그 사이 맛본 유튜브와 온갖 OTT, SNS는 얼마나 속수무책으로 달았나.
그러다가 문득 정신이 들어 불안하고 우울해지면 잠으로 도망갔다.
그런 날의 반복, 코로나19 팬데믹을 너 혼자만 겪었냐, 묻는다면 답할 도리는 없지만
그 일상의 무너짐이 아이에게 큰 흔적을 남겼다.
-예체능 입시를 본 아이들에게 왜 평가지를 주지 않는가.
어떤 점이 약하고 어떤 점이 강점인지 알아야 다음 스텝을 밟을 수 있지 않나.
아이들은 내가 왜 떨어졌는지 이유도 모른 채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답이 딱 떨어지는 수학 시험 문제가 아니지 않나,
내 보기에도 얼토당토않은 원서비에
심사위원의 자리에 앉아 심사비를 받으면서,
왜 심사평은 없는가.
적어도 그들이 그 자리에 앉아 아이들이 꿈꾸는,
스스로 의심하며 불안해하는 아이들의 재능에 점수 따위를 매기는 자리에 앉았으면,
열과 성을 다해 심사평을 해야지 않나.
온갖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석에 앉은 사람들이 때론 하나마나한 말을 쏟아내더라도,
저 정도 평은 나도 하겠다는 심사평을 쏟아내더라도
그래도 적어도 그들은 성의를 보이지 않나.
체크리스트에 틱틱, 브이자만 치면 다인가, 그걸로 끝인가.
예체능 꿈나무를 키우고 싶은, 응원하는 마음으로 앉았으면 적어도 그래야 하지 않나.
학교 시스템이라고 어쩔 수 없다고 하는 게 아니라, 왜 학교시스템이 그 모양이냐고
바꾸자고 말해야 맞는 게 아닌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라며 막막한 얼굴을 하고 앉은 아이에게 내가 할 말이 없었다.
'작가'를 꿈꾸는, 십 수년째 꿈나무인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서, 여기저기 리뷰를 청하지 않나.
그 마음을 너무 알겠어서, 그 꿈을 꾸는 일이 얼마나 마음을 쪼는 일인지 알겠어서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나는 너를, 응원한다.
그 많은 실기시험을 치르느라 너무너무 고생했고, 대견하다 말해주고 싶다.
이미지 하나를 보여주고 1분 안에 기승전결이 갖춰진 이야기를 말하라는 시험은 대체 뭘 평가하기 위함인가.
그래도 위로가 되는 건,
그 많은 실패와 좌절이..창작자가 되려는 아니 이미 창작 중인 너에게는 어떻게든 쓰이게 될 거라는 거,
그게 다 너의 밑천이 될 거라 생각하면,
힘든 고개 넘기가 조금은 수월해질 것이다.
수험번호 900, 계속 가 보아라!
** 2년 전 써 두고 발행하지 않았던 글이다.
수험번호 900은 그 후, 재수를 거쳐 원하는 학교는 아니었지만 원하는 학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여전히 그 꿈을 무럭무럭 키우고 있다.
....나는, 꿈을 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