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리니 삼총사

수블라키&기로스&무사카, 산토리니 - 그리스

by 스토리텔러

먹는 게 남는 거 #3


뭉치면 그 진가를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다. 혼자서는 평범하지만 뭉치면 대단한 완전체가 되는 사람들. 사람과 마찬가지로 요리 또한 그러하다. 지중해의 작은 섬 산토리니에서 먹은 세 가지 음식처럼 말이다. 세 음식을 동시에 먹은 건 아니다. 그러나 이 음식들을 먹었던 세 가지 추억들이 하나가 될 때, 산토리니에 대한 사랑이 더욱 커져가는 것을 느낀다.


첫 번째는 기로스다. 그리스식 샌드위치라고 보면 된다. 다만 조금 더 무겁고, 두툼하고, 풍부한 맛을 자랑한다. 엄청 배고프지도 않고 배부를 때, 혹은 야식이 당길 때 한 잔의 맥주와 걸치면 위장을 완벽하게 만족시켜준다. 늦은 밤 산토리니에 도착한 나를 가장 먼저 반겨준 음식이기도 하다. 한국어로 된 메뉴판과 '안녕하세요'를 말하는 가게 주인 덕분에 더 친숙하게 다가왔다.


기로.JPG 척 봐도 한 입에 넣기 힘든 비주얼


어떻게 보면 산토리니 사람들의 일상을 상징하는 음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다가왔다. 바에 앉아서 맥주와 기로스를 먹으며 TV를 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한국의 치킨이 떠오른 것이다.


다음은 무사카라는 음식이다. 가지 혐오자였던 나를 가지 요리의 길로 인도해준 고맙고도 귀중한 존재다. 사실 처음에는 재료에 가지가 들어가는지도 몰랐다. 화산섬을 들르느라 체력이 고갈된 상태에서 먹어서 그런지 그냥 음식 자체를 맛있게 먹었다. 가지처럼 보이는 재료가 있기는 했지만, 그것이 가지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가지라고 인식 못 했다. 만약 가지라는 것을 이미 알았다면 이 사랑스러운 음식을 제대로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인식이라는 것을 이렇게 중요하다.


무사카.JPG 입에서 사르르 녹는 무사카, 그리스의 라자냐라고 할 수 있다


이 무사카를 먹은 뒤로, 어떤 음식이든 비위가 상하지만 않는다면 시도해보는 도전 정신이 생겼다. 음식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그렇다. 시도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주는 즐거움을 평생 모른 채 살아가야 하니까.


마지막으로는 수블라키라는 음식이다. 글의 첫 부분에서도 소개했지만,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그냥 평범한, 특출 날 것 없는 요리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아 마을에서 노을을 바라보며 먹은 수블라키는 정말 환상적인 요리였다. 사실 맛보다는 시각적인 요소 때문에 그 순간을 더 멋지게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시각적 요소 역시 식사의 일부. 괜히 뷰가 멋있는 곳에서 먹는 음식이 기분 상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게 아니다.


수불레.JPG 꼬치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은 호불호 없이 좋아할 것 같다


꼬치와 감자튀김과 파프리카를 머금고, 마무리로 그리스산 올리브 오일에 빵을 살짝 찍어먹으면 저녁 식사의 완성이다. 분명 바다와 관련 없는 재료들인데, 신기하게 바다향이 난다. 그저 기분 탓이라고만 믿고 싶지는 않은 추억이다.


기로스, 무사카, 그리고 수블라키는 생긴 것만 보면 서양의 전형적인 요리들이다. 실제로 그리스의 전형적인 요리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산토리니의 향이 묻어난다. 왜 그런 걸까. 해안가에서 불어오는 소금기 절인 바람이 묻어서일까. 바다 하면 해산물 요리가 떠오르는 기본적인 상식을 깨트려버린 이 세 음식들을 잊을 수 없다. 한국에 와서 한 번도 다시 못 먹어봐서 향수가 더 짙은 걸지도 모른다. 다시 한번 산토리니로 돌아가 이 음식들을 맛볼 날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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