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 마을, 산토리니 - 그리스
어릴 때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정말 재밌게 읽었다. 제우스, 헤라클레스, 테세우스, 오디세우스 등 여러 영웅들의 이야기에 빠져들었고, 당시의 배경을 상상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 그랬기 때문에 실사화된 영화들인 트로이라는 영화를 보며 열광했던 기억도 있다. 그러나 그 어떤 미디어들도 피라 마을 앞바다에서 바라본 산토리니 섬만큼 신화시대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건 없었다.
이 앞에서 나는 메넬라우스가 되기도 했고, 오디세우스가 되기도 했다. 거대한 선단을 이끌고 섬으로 된 폴리스에 막 도착한 사람의 마음을 완전하게 공감할 수 있었다. (나는 보통 이런 경험들을 두고 절대로 '완전하게'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피라 마을의 항구에서 화산섬으로 가는 배를 타면 언덕 위에 있는 피라 마을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배가 점점 멀어져 가면 그 광경은 더욱 아름다워진다. 검은색 암벽 위에 있는 순백의 건물들이 작은 점이 되면서 대조를 이루는데, 마치 거대한 모형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신화라는 단어에서 오는 거대한 이미지가 있다. 이때 본 것들은 그 이미지에 정확히 부합되는 것들이었고, 그랬기에 내가 신화시대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했다고 느끼는 것이다. 거대한 하늘, 거대한 바다, 거대한 암벽, 그리고 그 위에 있는 작은 마을들이 마치 신화시대를 살던 사람들의 상대적 '작음'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들이 중심 되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감정이 내게 전해져 오는 듯했다. 그리고 그때, 나 자신이 세상 속에서 한없이 작은 존재라는 걸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