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막 시작할 때였다. 매일 사무실에 출근은 하는데 별로 할 일이 없었다. 그때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글이 잘 쓰는 글인지도 모른 채 무작정 블로그를 시작했다. 하루에 한 개씩 글을 써보자. 그땐 내가 했던 프로젝트 사례와 방법론, 결과물 중심으로 글을 썼다. 처음 쓰다 보니 블로그 하나를 쓰는데 5시간씩 걸렸다. 아무것도 모르니 이 글이 좋은지 나쁜지도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했다. 그렇게 꾸준하게 쓰다 보니 좋게 봐주신 분이 다가와 글을 쓰는 방법과 구조를 알려줬다.
내 글을 읽다 보면 느끼시겠지만 내 글엔 틀이 있다. 한 문단은 8개 문장을 기준으로 하며 5줄 내외로 구성한다. 또 한 문단에는 하나의 색깔만 입힌다. 문장은 주어 + 목적어 + 동사로 구성한 단문 위주로 사용한다. 무조건 능동형으로 쓰며, 가능한 주어를 꼭 넣는다. 등등 소소하지만 가능한 꼭 지키는 틀 말이다. 그분께 배운 거다. 코로나동안 사무실에 칩거하면서 이 틀에 맞춰 글을 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어느정도 연습하니 이젠 편하게 써도 자연스럽게 틀 안에서 놀더라.
문제는 글의 느낌이었다. 그냥 방법론과 결과물 같은 걸 나열하는 글을 쓰고 싶지가 않았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이 책의 키워드들이 나를 유혹했다. ‘내 생각’, ‘내 관점’, 이걸 수익화하는 퍼스널 브랜딩이라니!!!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어떤 책일까?’ 생각과 함께 목차와 저자가 쓴 intro를 훑었다. 책 안엔 ‘퍼스널 브랜딩 뿐만 아니라 기억되는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을 대상’이라는 글이 있었다. 더 이상 뭐가 더 필요한가? 단 한 단어만이라도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계산대로 향했다.
책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아니 훨씬 크게 충족했다. 가장 크게 다가온 내용은 이 책에 소개하는 ‘일러스트레이터B 님의 블로그 사례’와 이에 대한 저자의 코멘트였다. B님의 블로그 사례가 몇 개 있었지만 그 중 하나를 여기에 옮겨 적는다.
일러스트레이터B 님의 블로그
내가 먼저 주문했는데, 옆자리 메뉴가 먼저 나왔다. 이해는 된다. 내 메뉴는 조리 시간이 긴 것이었고, 옆 사람은 간단한 메뉴였으니 ... 그런데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갑자기 얼마 전 일이 생각난다. 지금과 비슷한 상황. 웹 소설의 표지 의뢰가 들어왔고 몇 시간 뒤 간단한 로고 제작 문의가 들어왔다. 로고 제작은 가안을 잡아서 보내왔길래 빠르게 작업을 마 칠 수 있을 것 같아 그 작업부터 했다. 그리고 별생각 없이 인스타그램에 올렸는데, 웹 소설 표지를 의뢰한 분의 불평 섞인 메시지가 날아왔다. 분명히 내 앞에 밀린 의뢰가 하나도 없다고 했는데, 왜 다른 것이 먼저 처리가 되었느냐는 내용. 답을 하면서도 억울했다. 기일 내에만 완성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죄송하다는 메시지는 보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화가 났다. 그런데 지금 옆자리 메뉴가 먼저 나온 것을 보니 의뢰자의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하다. 역시 사람은 ユ 상황에 처해봐야 해. 파스타 집에 와서 반성하고 간다.
이 글에 대해 저자는 전문적으로 보이진 않지만 본인의 경험을 직업적 관점으로 풀었다고 말했다. 스토리가 있다고. '아, 일러스트레이터는 세상을 이렇게 바라보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일침을 날리는 글을 썼다. “퍼스널 브랜딩에서의 매력은 수치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퍼스널 브랜딩의 목적은 '입체적인 나'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입체적인 나를 구성하는 가장 확실한 길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기록해 나가는 것이지요. 나만의 시각 말입니다. 이것이 앞서 말한 '관점의 전문성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브랜딩을 위한 내 글을 어떤 컨셉으로 써야 할지 감이 왔다. 그제서야 용기내서 브런치를 시작했다. 내 브런치엔 진솔한 내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프로젝트를 하면서 느꼈던 느낌, 프로젝트에 접근하는 나의 시각과 고민들, 고객과 나눴던 대화, 내 이야기와 고객의 이야기 그리고 사람냄새 나는 우리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서 이런 효과가 있었어 같이 뭔가 ‘내일을 알리는 글’이 아닌 그냥 내 이야기 말이다. 내 경험을 담담하게 풀어나가는 글을 쓰고 싶다.